갤러리 라메르, '야촌민화 연대기전' 展
중국 현지 답사후 3년여만에 완성한
대작 '영락궁 조원도' 공개
윤화백 특유의 장쾌한 스케일과 필치
'민화는 모사냐, 창작이냐'의
해묵은 논란에 작품 완성도로 해답 제시
야촌(野村) 윤인수 화백의 작품을 보면 '대한민국 민화'의 '길'이 보인다.
윤 화백은 전통물감으로 채색돼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심장생도' 등의 전통민화는 물론 '꽃병' 시리즈 등을 비롯한 독장척인 착작 세계를 펼쳐온 '민화 1세대 작가'다.
1978년부터 민화 작업에 매달려온 윤 화백은 그동안 무려 15회 이상 되는 개인전과 200여개에 이르는 단체전에 작을 출품하며 21세기 접어들어 일기 시작한 '민화 열풍'에도 큰 기여를 했다.
최근 종로구 인사동 '라메르갤러리'에서 윤 화백이 6년만에 연 개인전 '야촌 연대기 -상상의 벽을 넘다' 전에 장장 가로 1800cm, 높이 110cm의 대작 '영락궁 조원도'가 선보여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영락궁 조원도(永樂宮 朝元圖)' 는 민화에 대한 서양화 화단이 제기하고 있는 '민화는 모사냐, 창작이냐' 의 해묵은 논란에 '해답'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영락궁은 중국 산서성 예성현에 있는 도교사원이다. 서기 1247년부터 100여년에 걸쳐 완공된 영락궁 각 전각 내부에는 원대의 도교 벽화들이 보존돼 있고, 조원도는 삼청전에 그려져 있는 벽화다.
총 면적이 403.3㎡에 달하는 조원도에는 286명의 중국 신화 및 전설속 주인공과 여러 선인들이 등장한다.
윤 화백이 갤러리 라메르에서 선보이는 이번 작품은 5분의 1정도로 규모를 축소하기는 했지만 100여년에 걸쳐 수십여명의 화공이 완성됐다는 이 품을 불과 몇년만에 한폭의 파노라마로 재현해낸 것이다.
작품 제작 경위에 대해 윤 화백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19년 '월간 민화'가 마련한 해외민화 학술답사에서 처음 접한 영락궁 벽화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벽 전체가 다 그림으로 채워져 있는데 그 웅장함에 압도 당했습니다. 민화를 하는 사람이라면 영락궁 벽화에 대해 꼭 알아야 되겠다 싶고 이 작업을 민화 화단에 보여주고 싶어 붓을 잡았습니다."
윤 화백의 작품 설명 대로라면 큰 범주에서 볼 때 이 작품도 '모사'의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면 윤 화백만의 창의적인 필치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의 표정이 제각기 다 살아있다. 얼굴색이나 각도, 체형과 몸매, 손 모양까지 그림 속에서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듯 살아있다. 옷자락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에 이르면 윤 화백의 탄탄한 공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벽화에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고, 이는 제가 상상해가면서 채웠습니다. 2007년 드라마 '태왕사신기' 촬영장 세트벽화 작업이 이번 그림 완성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
당시 윤 화백은 드라마 제작사로부터 벽화 의뢰를 받은 옛 고구려 벽화답사까지 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그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벽화를 직접 보고, 연구해가면서 자신의 필치로 재현해 냈다.
이같은 윤 화백의 작업과정을 보면 그의 민화 작품이 단순히 옛 그림의 모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정서 '월간 민화' 발행인은 윤 화백의 작품에 대해 "옛 그림의 모사에 중점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작품들은 이번 벽화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 전통민화의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해석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중량감 넘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옜 그림을 새롭게 해석해 그 웅대함을 자신만의 필치로 생생히 되살려 내는 작업.
윤 화백의 그같은 작업은 마치 세기의 클래식 연주자 레더드 번스타인(1918년~1990)이 구스타프 말러(1860~1911) 교향곡을 번스타인 자신의 특유의 드라마틱한 전개, 잘 계산된 극적인 효과 등을 가미, 재해석해 20세기의 커다란 유산'으로 만들어낸 과정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윤 화백이 작업을 하며 보여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민화는 모사냐' 창작이냐'의 논쟁 수준을 뛰어넘어 '민화만이 지닌 독특한 창작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가늠케 해준다.
윤 화백의 제자들 모임인 야촌회의 맹순화 회장은 이와관련 "선생님은 전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서는 창작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기초적인 것, 기본부터 잘 구축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다"고 말했다.
갤러리 라메르 전시에는 '영락궁 조원도' 외에도 '연대기'라는 전시타이틀에 걸맞게 십장생도경직도, 무인평생도, 화조도, 초충도, 부벽루 연회도, 경직도, 금강전도 등의 대작과 '꽃병 시리즈' 등 윤 화백이 오랜 화업 기간동안 그려온 작품들이 공개된다.
윤 화백의 오랜 지인이며 역시 화단에서 민화 1세대 작가로 명성이 높은 엄재권 화백은 "이번 전시는 그야말로 뚝심있게 민화 외길을 펼쳐온 윤 화백의 초창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체 작품의 흐름을 만나보게 해주는 전시"라며 "더욱 정진, 우리 민화가 '글로벌 K컬처'로 자리잡는데도 큰 기여를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30일까지 계속된다.
글·사진=이경택 기자 ktlee@pennmik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