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의 극단적인 선택이 잇따르자 여야가 앞다퉈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첫 번째 극단적인 선택이 지난 2월에 발생한 이후, 두 달 새 두 명이 더 숨졌다.

정부여당은 피해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대책을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뒤늦게 이 같은 정부대책을 비판하면서 사기당한 전세보증금을 세금으로 보상해주자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의 포퓰리즘인 임대차 3법 등으로 인해 왜곡된 전세시장의 부작용을 또 다른 포퓰리즘으로 해결하자는 논리인 것이다.

전세사기 대책 수립에 머리를 맞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여야 3당은 우선 여권이 제안한 임차인 우선매수권 부여 검토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전세사기 대책 수립에 머리를 맞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여야 3당은 우선 여권이 제안한 임차인 우선매수권 부여 검토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정부여당 전세사기 대책=피해자의 주거권 보장에 초점 맞춰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23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당정이 내놓은 대책의 핵심 내용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지금 사는 집에서 내쭟기지 않고 주거권을 지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정의 대책은 크게 2가지이다. 첫째는 임차주택 낙찰을 원하는 세입자에게는 자금 융자 지원 등을 받아 우선매수청구권으로 경낙(부동산 소유권 차지)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매입을 원치 않으면 LH공사가 대신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해 매입한 뒤, 시세보다 저렴한 공공임대로 임차인이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날 당정협의를 통해 논의된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형평성과 재원 마련 실현 가능성 등을 고려해 책임 있는 자세로 (여야가) 협의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피해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이번 주 내에 국회에서 입법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현재 피해자들은 해당 주택 우선매수권, 경매 시 전세 보증금을 우선 보전받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두 가지 요구사항이 모두 입법사항이라는 점에서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세사기 관련 법안은 상임위에서 낮잠...이재명 대표, “정부가 상당 부분 책임 져야” 주장

민주당은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한 이후 다양한 법안 등을 발의한 이후, 지금껏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보호 및 지원 기구 설치 의무화 법안,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보증한도 확대 법안 등이다. 현재 관련 법안들은 상임위에서 잠자고 있는 실정이다. 처음에는 관심을 가진 것처럼 입법 폭주에 나섰다가, 정작 법안 제정 단계에서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피해자가 극단 선택을 한 이후에서야 민주당은 피해자들과 간담회를 마련하고, 정부 여당을 향해 ‘개선된 대책 마련을 당부’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24일 오후 오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사태가 심각하고, 정부 정책상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상당 부분 책임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사람들이 죽고 사는 문제라서 정부가 과감하고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보증금 반환 채권을 우선 매입한 후 피해자들에 '선(先)지원'해주는 내용의 특별법을 발의한 민주당 조오섭 의원은 "신속한 선(先)지원·후(後) 구상권 청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캠코가 채권 매입 후 주택을 경매·공매를 통해 다시 환수할 수 있다"며 "국가 세금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신속한 선(先)지원·후(後) 구상권 청구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신속한 선(先)지원·후(後) 구상권 청구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대책위, “미분양 아파트는 사주고 우리는 왜 진상 취급하냐” VS. 정부여당, “사기 당해 떼인 돈을 세금으로 떠안을 수 없어”

이날 민주당의 간담회에 참석한 안상미 인천 미추홀구전세사기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미분양 아파트 사주고, 비트코인 (피해자) 구제해주는 것도 세금인데, 왜 우리에게 쓰는 건 혈세냐"며 "왜 진상 취급을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전날 당정협의회에서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야당 방식은 혈세로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보증금의 국가 대납은 안 된다. 포퓰리즘이다”라는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결국 쟁점은 보증금으로 귀결되고 있다. 당정은 23일 내놓은 대책이 보증금 반환 채권을 정부가 매입하도록 한 야당안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야당은 보증금의 채권을 매입하는 형식이고 저희는 피해 임차인에게 본인이 사는 주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또 거주하는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라며 "피해자들은 물론 보증금도 돌려받고 또 (남은) 계약기간 동안 안정되게 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사기 당해 떼인 돈을 세금으로 반환하는 것에 (국민이) 과연 동의하겠나"라고 말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4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전세피해지원센터를 방문해 대기 중인 전세사기 피해자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4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전세피해지원센터를 방문해 대기 중인 전세사기 피해자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면서 "일부 야당에서 주장하는 것은 보증금 채권을 (정부가) 떠안아서 (피해자에게 보증금을) 미리 돌려주고 손실이 나면 국가가 떠안으라는 것인데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가고 국민이 동의하겠냐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입법 우선순위가 언제나 표를 위한 ‘선심성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사정과 안타까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재정 투입 필요와 형평성 등을 들어 정부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민주당에서도 신중론 제기돼... 윤희숙 전 의원, “정책 실패 주범이 반성 없이 정의로운 척”

전세보증금 채권 매입과 관련해 민주당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는 제기되고 있다. 김성주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해 국민 세금을 넣어 구제해주면, 앞으로 또 이런 사기가 벌어졌을 때 어떡하냐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면서 “채권 매입 대상과 범위 등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야당의 ‘전세 보증금 보상 주장’에 대해 윤희숙 국민의힘 전 의원은 "정의로운 척하는 것은 역겹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전 의원은 25일 페이스북에 "민주당과 정의당은 자신들만이 피해자 편에 선 것처럼 보증금을 보상해주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지금 목소리 높이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3년 전 임대차법을 발의하고 게릴라전처럼 통과시키면서 환호했던 이들"이라고 적었다.

윤 전 의원은 "이들은 멀쩡했던 전세 시장을 본인들이 망쳐놓았다는 사실은 쏙 빼고, 저금리 때문에 전셋값이 올랐고, 금리가 오르면서 다시 급락했을 뿐, 시장이 요동친 결과라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전 의원은 정책 실패의 주범이 반성은 하지 않고, 전세사기 피해를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며 정의로운 척하는 것은 역겹다고 지적한 것이다.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공부도 하지 않고 입법 절차도 무시하면서, 엉터리 법을 만들고 엉터리 대책으로 틀어막은 결과가 이번 사태라는 것이 윤 전 의원의 분석이다.

그러면서 윤 전 의원은 "피해자 본인들이 아무리 조심했어도 걸려들 수밖에 없는 배경을 정부가 만들고 방치했다는 비난이 거세지만, 모든 사기 사건을 세금으로 보상할 수 없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며 "임대차 3법 찬성한 의원들의 세비도 몰수해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금으로 써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바로 이 두 정당에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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