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2월 6일 새벽 리히터 규모 7.8의 강력한 지진과 80여 차례의 여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지대를 강타했다. 이 지역에는 유라시아판, 아프리카판, 아라비아판, 인도판 등 4개의 지각판이 만나는 아나톨리안 단층대가 위치해 있어 과거에도 크고 작은 지진들이 일어났었다. 이 지진으로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와 시리아 북부의 포르투갈 크기의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고 수만 명이 사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폐허가 된 도시 중에는 6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 안타키아도 포함되어 있다. 안타키아는 성경에 ‘안디옥’이라고 표기되는 곳으로 사도 바울이 기독교 전파를 위해 전초기지로 삼았던 곳이다. 이렇듯 100년 만의 최악 재앙을 당한 튀르기예가 주택, 도로, 전력망, 병원, 학교 등 인프라의 파괴로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원조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그 중에서 튀르키예 돕기에 가장 먼저 나선 나라는 단연 대한민국이다.

튀르키예 돕기에 발벗고 나선 대한민국

한국의 각계 각층에서 모금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한국 정부는 2월 7일 단일 파견대로는 최대 규모인 120명의 긴급구조대를 파견했고, 16일에 제2차 구조대를 보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떠나는 구조대원들에게 “우리의 형제국이자 혈맹인 튀르키예 국민에게 우리 국민의 따뜻한 형제애가 잘 전달되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9일에는 서울 주재 튀르키예 대사관을 찾아 희생자들을 애도했고, 14일에는 김민식 국가보훈처장도 보훈단체장들을 대동하고 튀르키예 대사관 찾아가 살리흐 무라트 타메르 대사에게 성금을 전달하고 조의를 표명했다. 정부 부처, 시민단체, 개인 등 각계 각층에서 모금운동이 진행되고 있음도 물론이다. 이미 수백억 원이 모였고 금액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튀르키예의 페네르바흐체 프로배구단에서 8년 동안 주전선수로 활동했던 배구의 여제 김연경은 긴급모금 켐페인을 시작하자 마자 엿새만에 5억 원을 모았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주 만에 10억 원과 함께 수천 장의 담요와 방한용 텐트를 모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이 튀르키예 돕기에 발빠른 행동을 보이는 데에는 당연한 이유가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기습남침을 개시하자 당일에 소집된 유엔안보리는 결의 제82호를 통해 북한군의 38선 이북으로의 철수를 요구했고, 북한군이 이를 무시하고 남진을 계속하자 이틀 후인 6월 27일 결의 제83호를 통해 유엔 회원국들에게 “침략공격의 격퇴와 평화 회복을 위해 필요한 원조를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집단안보를 발동한 것이다. 즉각 미군의 파병이 개시된 가운데 7월 7일에는 결의 84호를 통해 유엔의 깃발 아래 미군이 지휘하는 통합사령부를 창설하도록 했다. 튀르키예는 결의 83호 이틀 후인 6월 29일 파병을 결정했고 참전국중 네 번째로 많은 2만여 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튀르키예군은 미 제25보병사단에 배속되어 청천강 전투, 군우리 전투, 수리산 전투, 용인 151 고지 전투, 장승천 전투, 금화지구 전투 수 많은 전투에서 공산군과 싸웠다. 전쟁 동안 튀르키예군은 8백여 명의 전사자를 포함하여 3천여 명의 인명피해를 냈는데 이는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인명피해였다. 전쟁 중에 튀르기예군은 한국인 전쟁 고아들을 돌보는 데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고, 전쟁 후에는 유엔 평화활동과 한국재건을 지원하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입장을 적극 옹호했다. 그래서 한국은 튀르키예를 ‘혈맹’으로 부르고 튀르키예는 한국을 '칸카르데시(피로 맺은 형제)‘라고 부른다.

전쟁 동안 튀르키예군이 보여준 용맹도 돋보였다. 군우리 전투는 중공군이 제2차 공세를 통해 인해전술을 앞세우고 청천강 일대로 밀고 내려오던 1950년 11월 말 튀르키예군이 평안남도 덕천 지구에서 막대한 인명피해를 감내하면서 3일 동안 중공군을 지연시켜 유엔군의 후퇴를 도운 전설적인 전투다. 수리산 전투는 1951년 1월 말 유엔군이 중공군의 제3차 공세로 서울을 내준 후 유엔군이 썬더볼트 작전을 통해 반격을 시도하던 중 수원 부근의 수리산에서 미군과 튀르키예군이 중공군 제149사단을 격파한 전투다. 151고지 전투는 비슷한 시기에 튀르키예군이 용인 부근 151고지에서 압도적인 수적 우세를 가진 중공군을 향해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면서 착검 돌격전을 벌여 대승을 거둔 전투로서 중공군을 크게 당황하게 만들었다. 장승천 전투는 중공군의 제5차 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4월말 튀르키예군 제1여단 제9중대에 속한 메흐멧 고넨츠 중위가 자신의 중대가 연천 동북방의 장승천에서 중공군 제179사단의 인해전술에 유린되었을 때 포로가 되기보다는 아군의 포격을 맞아 죽겠다면서 아군 포병본부에 자신들이 있는 지역을 포격하라고 요구하여 적군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던 전투다. 이렇듯 튀르키예군은 낯선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주기 위해 피흘리면서 분전했다.

폐허 속에서 울려 퍼진 “알라후 아크바르”

그러나, 튀르키예군이 전투만 한 것이 아니었다. 경기도 수원시에는 서둔동에는 ‘앙카라학교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튀르키예군은 포연이 자욱한 전장에서도 오갈 데 없는 전쟁 고아들을 챙겼다. 하나 둘 부대로 데려와서 부대가 이동할 때에도 데리고 다니면서 돌보았다. 그러다가 1951년 7월 수원 의무중대에 천막 고아원을 세워 한국인 고아들을 먹이고 교육시켰는데, 그것이 1979년까지 전쟁고아 640명을 가르치고 성장시킨 앙카라 학교였고, 앙카라학교 공원은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올해 79세인 오수업 씨라는 사람은 튀르키예 강진 소식을 듣자 마자 1천만 원의 기부금을 가지고 달려와서 1951년 1·4 후퇴 때 평택·오산 쪽으로 피란을 가다가 부모를 놓지고 고아가 된 후 튀르키예군에 의해 구조되어 앙카라 학교에서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고 취직까지 해서 사회에 나올 수 있었다고 회고하면서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이렇듯 앙카라학교공원은 새털처럼 많은 감동 드라마들을 머금고 있다.

2010년 한국과 튀르기예가 공동 제작한 영화 ‘아일라’의 이야기는 한 편의 감동 드라마다. 1950년 11월 군우리에서 후퇴하던 튀르키예군의 슐레이만 비르빌레이 하사는 난리통에서 부모를 잃고 추위와 공포에 떨면서 울고 있는 네살짜리 여자 아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는 그 아이를 부대로 데려와서 ‘달’을 뜻하는 ‘아일라(Ayla)’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먹이고 재우고 씻기면서 친딸처럼 키웠다. 1953년 전쟁이 끝나고 튀르키예군이 철수하면서 부녀는 생이별을 하지만, 술레이만은 아일라를 잊을 수 없었다. 포성이 멎은지 57년이 지난 2010년 백발의 노인이 된 술레이만은 튀르기예 한인회 한국전참전용사기념사업회를 찾아 빛바랜 흑백사진을 내놓으면서 죽기 전에 꼭 이 아이를 만나야 한다고 통사정을 했다. 이를 전해 들은 MBC는 엄마가 되어 인천에 살고 있던 아일라 김은자 씨를 찾아냈고, 한국 정부가 2010년 튀르키예 참전용사 초청때 술레이만 씨를 초청하면서 부녀는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 이후 2017년 12월 술레이만 씨는 아일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국가, 민족, 문화, 종교 등 모든 것을 뛰어넘은 이 부녀의 이야기는 한·튀르기예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와 다큐멘터리 방송으로 만들어졌고, 85세의 튀르기예인 아버지와 64세의 한국인 딸이 다시 만나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그래서 한국과 튀르키예는 6·25가 맺어준 형제의 나라다.

한국은 가장 먼저 구조대를 보냈고, 다른 나라들이 더 이상 생존자를 찾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여 철수하는 중에도 한국 구조대는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 생존자를 구해낼 때마다 울려 퍼졌던 환호성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생환의 기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그들이 안타키아의 폐허 속에서 어린 소녀와 아버지를 구조해 안고 나올 때 초조하게 지켜보던 튀르키예인들은 목소리로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쳤다. 그들의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들이 72년 전 용인 전투와 장승천 전투에서 외쳤던 “알라후 아크바르”가 지금 한국 구조대가 활동하고 있는 튀르키예의 유서깊은 도시 안타키아에서 다시 외쳐지고 있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