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 떨어진 미사일을 두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다른 입장을 보임에 따라, ‘반러 전선’에 균열이 일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폴란드에 떨어진 미사일이 러시아가 발사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증거에 입각한 얘기가 아니라며 반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의 방공 미사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의 방공 미사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15일 폴란드 동부 우크라이나 접경지에 미사일이 떨어져 2명이 사망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즉시 러시아 소행설을 제기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영토에 미사일이 떨어진 이번 사건은 러시아의 소행"이라며 "매우 심각한 긴장고조 행위"라고 규탄했다.

젤렌스키 '러시아 소행설' 주장, 바이든 "우크라이나 방공 미사일인 듯" 반박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 인도네시아 발리 G20 회의장에서 다른 나라 정상들을 불러 모아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의 방공 미사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 발언은,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았다면 나토와 러시아간 확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는 것을 서둘러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하루 만에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의 방공 미사일’로 결론 내린 데는, 그만큼 강력한 증거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폴란드에 미사일이 떨어질 때부터 나토 정찰기가 해당 미사일의 궤적을 추적해 우크라이나에서 발사됐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러시아를 강력히 규탄하며 기세 등등하던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선 매우 무안한 상황이 된 셈이다. 자국을 적극적으로 돕는 우방 폴란드에 미사일을 '오발'해 인명피해를 일으킨 데다, 그 책임을 러시아에 전가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16일(현지 시간)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군의 보고를 토대로 “(15일 폴란드에 떨어진) 미사일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그것이 우크라이나의 미사일이라면 사과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려면 (관련) 자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공동 조사를 요구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5일 폴란드에 떨어진 미사일에 대해 "러시아가 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5일 폴란드에 떨어진 미사일에 대해 "러시아가 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주장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그것은 증거가 아니다(That's not the evidence)"라며 불쾌감을 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주장에 바이든 대통령이 바로 반박함으로써, 젤렌스키 대통령의 낯을 깎는 모양새가 됐다.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만큼 위험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우크라이나 오발탄’이 맞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을 둘러싼 균열은 4가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① 우크라이나 무기 체계는 러시아제로 구성?

직접적인 피해 당사국인 폴란드에서도 ‘우크라이나 방공 미사일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폴란드뿐 아니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우크라이나 방공 미사일이 빗나가서 폴란드에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논란이 발생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우크라이나가 갖고 있는 미사일 무기 체계가 러시아, 즉 구소련 게 많다는 점’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이번에 발사된 미사일도 우크라이나 군이 발사한 미사일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러시아제 S300, 방공미사일”이라고 설명했다.

‘미사일에 러시아제라고 씌어 있는데, 어떻게 우크라이나가 발사한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는 대목이다.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제 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종의 사고라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지난 15일 폴란드에 떨어진 미사일은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제 S-300 요격 미사일'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지난 15일 폴란드에 떨어진 미사일은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제 S-300 요격 미사일'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② 우크라이나의 동북쪽에 있는 러시아를 공격했는데, 서쪽의 폴란드로 낙탄이 떨어진 이유는?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우크라이나의 서쪽에 폴란드가 있고, 북동쪽에 러시아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과 나토의 설명대로라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미사일을 방어하다가 오발로 인해 폴란드로 넘어갔다고 하기에는 방향이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가 공격해오는 미사일을 막는 와중에 서쪽에 있는 폴란드로 넘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집중 공격한 지난 15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100여 발의 미사일을 퍼부었다. 수도인 키이우뿐만 아니라, 서쪽 지역도 공격했다. 우크라이나의 방공망 미사일이 러시아발 미사일을 요격하는 과정에서, 낙탄이 폴란드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미사일이라는 것이 100%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오발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우크라이나의 방공망 미사일이 러시아발 미사일을 요격하는 과정에서 낙탄이 폴란드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우크라이나의 방공망 미사일이 러시아발 미사일을 요격하는 과정에서 낙탄이 폴란드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③ 세계 3차 대전으로 확전되길 바라지 않는 미국과 나토가 뭔가를 숨길 가능성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끝까지 ‘러시아발 미사일’이라고 고집하는 것을 신뢰하는 일각에서는 ‘세계 3차 대전으로 확전되기를 바라지 않는 미국과 나토가 지금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피해 당사국인 폴란드의 입장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만약 문제의 미사일이 실제로 러시아에서 발사된 것이고, 미국과 나토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면, 폴란드의 반발이 거셌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나토는 ‘문제의 미사일이 러시아에서 발사된 것이 아니다’라는 데에 일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공미사일이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역시 의도적인 행위는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도 “폴란드 정부의 조사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면서 “결론이 무엇이든 궁극적 책임은 러시아에 있다”는 성명을 냈다.

④ 바이든 대통령의 불쾌감은 왜?

젤렌스키 대통령이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며 서방과 배치되는 입장을 내자, 일각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나토 회원국 관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우크라이나인들이 그들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아무도 우크라이나를 비난하지 않는데도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미사일보다 더 파괴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표한 것도 이런 입장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어느덧 9개월째로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미국 등 서방의 피로감도 감지되고 있다. 미국이 올겨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종전을 위한 평화협상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런 차원에서 최근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4년 빼앗긴 크림반도도 탈환할 것이라고 공언함에 따라, 커다란 입장 차이가 확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계속 도움을 요청하기만 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마냥 좋은 감정을 가진 것만은 아니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가진 불쾌감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미 NBC방송은 6월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10억 달러 지원을 결정한 직후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했을 때 젤렌스키가 자신이 원하는 다른 무기 리스트를 열거하자 버럭 화를 내면서 "감사 인사부터 해라"고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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