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프로포즈는 어느 분이 먼저 하신 겁니까?

"프로포즈라는 건 받아보지도 못해"

이 여사: 근데 사실은 요즘으로 따지면 프로포즈라는 건 받아보지도 못한 것 같아요. 왜 그러냐 하면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고 남편이 사관학교 2학년 땐데, 저희 친정아버지가 사관학교 참모장이셨어요. 이 양반이 친구들하고 1학년 땐 외출이 안돼요. 2학년이 돼서 외출을 처음 나왔는데 점심 사먹을 돈, 딱히 찾아갈 곳도 없고 또 점심 사먹을 돈도 없고 이러니까 다들 이러고 있는데 자기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참모장님이 눈이 쌍커풀이 싹 지고 사람이 참 좋아보이시더래요. 그래가지고 물어 물어가지고 참모장님 댁을 찾아온거에요. 

바깥에서, 계십니까. 계십니까. 그래서 제가 쪼르르 나가서 문을 열어 드려가지고.

진행자: 중학생 때.

이 여사: 중학교 2학년 때. 그래서 처음 보게 된 거에요.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이 인연이 됐고, 이제 정전협정이, 휴전협정인가, 정전협정이 되어가지고 사관학교가 태능으로 옮기게 됐잖아요. 저희도 같은 기차를 타고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또 우리 집에, 서울에도 갈 데가 없었는지 하다보니 우리집에 오게 돼 가지고. 뭐 저는 따로 둘이 만난 게 없고 그냥 가족 요원으로 서로 알게 됐어요.

진행자: 가족이나 마찬가지네요.

이 여사: 네. 그래서 그냥 이성이다 이런 것보다도 소매에 물이 배듯이 자연스럽게 일요일에 안오면 왜 안오나 궁금증이 나고. 이런 관계로 되다가 사관학교 졸업하고 전방에 가서 나와 가지고 우리 집에 안오고 밖에서 만나자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제가 엄마한테 엄마 밖에서 나 만나자는데 어떡해? 아이고 얄궂어라. 집으로 오면 될텐데 왜 나오라 마라 하냐. 그래서 갔어요. 갔더니, 아 지금 내가 속마음으로 내가 인생의 반려자로 생각할만큼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좀 클 때까지 기다려도 되겠느냐 이렇게 물어봤어요.

진행자: 먼저 하신건가요?

이 여사: 그러니깐 자기는 했다고 보죠. 기다려도 되냐고 물었으니깐. 그래서 제가 이제 집에 왔어요. 엄마가 '뭐라하드노?' 하니까 그 이야기를 저는 뭐 음습한 관계가 아니니깐요. 그런 이야길 그대로 했어요. 그랬더니 우리 고모님이 있다가 '네가 아직 덜 자랐는데 내가 두환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네가 벌써 인생을 결정지을 필요가 뭐 있냐, 네가 커서 후회할 수도 있으니까 큰 다음에 결정하지' 이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전 대통령이) 우리 고모를 좀 싫어하세요. (웃음)중요할 때 그렇게 하셨다고.

우리 아버지도 '좀 빠르지'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어요). 우리 어머니는 '내사마 좋다' (말씀하셨어요). (웃음) 우리 어머니가 참 좋아했어요.

진행자: 그때 기억을 다 하고 계시네요. 거의 70년 가까운 예전 이야긴데.

이 여사: 제가 너무 생활 반경이 좁은가봐요.

진행자: 그때 혹시 전두환 대통령을 어려서부터 뵐때 이 분이 나중에 대통령이 되겠거니 이런 생각은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큰 일 할 사람인 것 같긴 했어요"

이 여사: 본인도 그런 생각을 안해봤는데, 옆에 사람이 무슨 그런 생각을 했겠어요. 근데 저는 큰일 할 사람인 것 같긴 했어요. 왜냐하면 우리 집에 오면 우리 엄마가 딸을 7명 놓고 8번째, 6.25사변 피난통에 남동생을 하나 낳았거든요. 그런데 여자 형제 7형제 중에서 4명이 다 빨리 돌아가시고 셋만 남았어요. 여자가 많잖아요 집에. 일요일에 오면 어렸을 때 시골에서 수박서리 하던 이야기, 강에서 씨름하던 이야기, 하다못해 자기가 보지도 않았지만 친구들이라도 보고 와서 한 영화 이야기도 와서 해주고..

우리 동생이나 뭐 우리 엄마랑 다들 너무 좋아했어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제사지내고 힘들면 운동선수들끼리 하는 안마도 해 드리고 아주 사근사근해요. 근데 그런 것도 재밌지만 제일 나는 감명받았던 이야기는 고향 떠나가지고 대구 달동네에서 살때 어렵게 살때 자기 어머니가 일하고 그러면 건성으로 봐도 되잖아요. 근데 이 양반은 정이 많아요. 그래서 어머니 혼자 애쓰는게 안쓰러워가지고 학교갔다오면 산에 가서 이제 나무도 해다가 드리고, 우리 어머니가 이고 오는게 안됐다면서 물통에 해 가지고 달동네 높은데 살잖아요. 저 밑에 가서 물 길어다가 독에다 다 부어 놓고 그 후에 나가 놀거나 숙제를 했대요. 친구들이 (전 대통령이) 운동을 좋아하니까 이 양반을 데려가야 재밌잖아요. 데려가려면 그러고 있으니 언제 기다려요. 그러니까 친구들이 와서 나무하러 가면 뒤에 주르륵 가서.

물 길으러 가면 동네에서 보면 재밌대요. 줄서서 이 양반은 물통을 이렇게 지고 가면 뒤에 요런 통을 들고 (쫓아가고)

진행자: 그때부터 거의 리더셨네요.

이 여사: 그래서 그런 이야길 들어보면 자기가 맡은 일을 죽어도 해 내고, 또 어려운 남까지 갈것 없이 엄마지만, 남의 어려움을 그렇게 그러는(돕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나는 큰 인물이 될 것 같긴 하더라고요.

"갑자기 헤어지자는 얘기를 해서..." 화가 나

진행자: 그런 분께서 갑자기 이별을? 자서전에 너를 너무 고생시킬 것 같아 헤어지자는 이야길 하셨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이 여사: 그러니까 이 양반은 그런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나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던 거에요. 왜냐하면 아니 남들은 그러거든요. 출세할라고 장군 집에 찾아가고.

진행자: 뭐 그런식으로 비판적으로 하는 분들도 많이 있었죠.

이 여사: 그런데 이 양반은 자기 친구들이 모처럼 외출 나왔는데 먹을 것도 없고 어디 갈데도 없고 하니까 아이디어를 내서 먹여줄려고 데려온 거잖아요.

진행자: 참모장님 댁에 가면 최소한은 국수라도 얻어먹으니까.

이 여사: 그럴 정도로 남을 보살피려는 성격이 있는데, 또 나는 결정적으로 어차피 내가 자기가 잘 꼬셔 놔서 좋아하기로 하고 있는데, 가만 있으면 될 일을, 전방에 들어가서 군인 가족들 월급이 한달에 대위 월급이 쌀 한말밖에 안되니까 못먹고 살잖아요. 6.25사변 나고 나라 자체가 사실 외국 원조에 의해서 밀가루 이렇게 나라 자체가 어려웠잖아요. 자기만 어려운게 아니라 우리나라 젊은이들 다 어려웠거든요. 특별한 사람 외에는 다 어려웠거든요.

진행자: 그런데 군인들에게도 그렇게밖에 못해주는게 참 안타까웠죠.

이 여사: 그랬어요. 어려웠어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장군이라도 우리도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아니 아버지가 전근을 자주 가셨는데, 가시면 돈을 좀 넉넉히 줬으면 나는 그냥 대구에 서울의 경기여중에 합격해서 대구에 다니고 있으면 대구에다가 그냥 놔 두고 아버지를 뵈면 되잖아요. 월급이 작으니까 기어이 식구들을 다끌고 다니시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중학교 3년동안 옮긴 학교가 대구 여자중학교에서 논산여중에 가서 반년, 광주에 전남여중에서 반년, 진해 사관학교로 가셔서 진해여중에서 6개월, 서울 경기여중에서 6개월 해서 졸업했어요. 3년동안에 5개 학교를 다녔어요. 그만큼 우리 아버지도 월급을 넉넉히 못받고 가는데마다 방 한 두개 얻어서 살았거든요. 그러니깐 전방에 이 양반은 너무 사관학교때 사람들 띄워 놓은거지. 당신네들이 육사 정규 1기 당신네들에 앞날이 달렸다, 이러니깐 나오면 뭐가 이럴줄 알고 나가보니까. 식구들 먹이질 못해가지고 취사병, 그 장병들 먹을라고 밥하고 콩나물국 해놓은거 퍼서 항고에 담아서 철조망으로 넘기는 거 그런거 보고, 거기다 또 제가 맹장염 걸려가지고 입원을 해야하는데 입원비가 없어서 하는 사이에 엄마가 올라오셔가지고 겨우 입원하고. 이런 일을 겪으면서 야 데려다가 내가 안되겠다 하고 그냥 진짜 단호하게 결심을 한 거에요.

진행자: 그런 이야기 들으시면 충격이 대단할 것 같은데.

"결혼해서 저 사람 안정시키고 다른 학교로 옮겨라 해서 결혼하게 된 것"

이 여사: 처음에는 화가 났죠. 아니 뭐 내 마음을 뻔히 알면서 무슨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갑자기 뭔 소리야 나는 그랬는데. 알고 보니까 그러고 하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자기 안위보다 내 안위를 위해서 자기 장래를 수행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라면 내가 의지해도 되지 않을까. 근데 철이 좀 일찍 들었는지 뭣도 모르고 까불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엄마하고 의논을 했어요. 엄마가 저러다 안 되겠다. 일단 결혼하고 이화여대는 결혼하면 안되니까 다른 데로 전학해서 학교를 다녀라.

이대는 결혼하면 못 다니니까. 잘못된 거죠. 결혼 일단 해서 저 사람 안정시키고, 너는 다른 학교로 옮겨서 해라, 이렇게 해서 결혼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허니문 베이비가 바로 생겨가지고 그것도 이제 좌절될 뻔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됐습니다. 스물 한 살 1월에 결혼해서 스물 한 살 10월 말에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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