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퇴임 직후부터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마이크 대통령’을 표방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행보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지난 13일 ‘박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해 달라고 검찰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수사처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허위사실 공표’로 공직자선거법을 위반했다고 검찰에 기소를 요청했다. [사진=MBC 화면 캡처]
고위공직자수사처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허위사실 공표’로 공직자선거법을 위반했다고 검찰에 기소를 요청했다. [사진=MBC 화면 캡처]

이외에도 국정원 X-파일에 대해 발언하는 과정에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하 의원에게 고소당할 위기에 처했다. 하 의원에 대해 마치 사생활이 복잡한 사람처럼 발언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공수처가 박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를 요구한 데다, 하 의원마저 고소를 할 경우, 박 전 원장의 향후 행보가 불투명해졌다. 국정원 퇴임 직후 정계 복귀를 추진하며, 기울어져가는 더불어민주당의 회생을 위해 일정한 역할을 자임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공수처, 지난 대선 박지원 전 원장의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검찰 기소’ 요청

공수처는 박 전 원장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경선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가 인정된다며, 재판에 넘겨야 한다고 최종 판단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국정원장이 재직 시절 저지른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해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권은 없는 탓에 검찰에 기소를 요청한 것이다.

박 전 원장이 지난해 9월 발생한 ‘고발 사주’ 사건 제보 과정의 배후였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고발 사주 사건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직 시절 검찰 조직을 동원해 당시 범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을 야당 의원에게 사주했다는 사건’이다. 윤 대통령 측은 고발 사주 사건의 맞불을 놓기 위한 목적으로, 박 전 원장 등이 '정치공작'을 공모했다며 지난해 9월 ‘제보 사주’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박 전 원장이 고발 사주 사건의 ‘제보 배후설’을 부인하면서, 윤석열 국민의힘 경선 후보와 관련해 ‘윤석열이 윤우진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관련 자료를 갖고 있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박 전 원장은 “잠자는 호랑이가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데, 왜 꼬리를 밟느냐?”며 “그러면 화가 나서 확 물어버린다”고 발언했다. 박 전 원장이 이런 발언이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이러한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공수처가 판단한 것이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윤우진 사건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영향력을 행사했고, (자신이) 관련 자료를 갖고 있다’고 발언했다. [사진=MBC 화면 캡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윤우진 사건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영향력을 행사했고, (자신이) 관련 자료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MBC 화면 캡처]

검찰, 박 전 원장이 제기한 ‘윤우진 사건’에 대한 윤석열 관여 의혹에 대해 불기소 처분

박 전 원장이 지난해 9월 언급한 '윤우진 사건'은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이 현직에 있던 2010∼2011년 세무조사 무마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육류업자로부터 금품 등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윤 전 서장은 2012년 경찰 수사를 피해 해외로 도피했다가 태국에서 체포돼 강제 송환됐다. 이후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2015년 윤 전 서장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윤 전 서장이 윤 대통령의 측근인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검사장)의 형인데다 윤 대통령과의 친분도 깊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이 2012∼2013년 당시 검찰 수사 무마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윤 대통령은 윤 전 서장에게 검찰 중수부 출신 변호사를 소개해줬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수사한 후, 윤 대통령에게 혐의가 없다고 보고 지난해 12월 불기소 처분했다. 당시 박범계 법무부 장관 휘하의 검찰에서 무혐의를 내린 것이다.

따라서 당시에도 박 전 원장의 윤우진 관련 발언의 진실 여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이 윤우진 사건에 개입했다는 혐의가 없다’고 당시 검찰이 밝혔기 때문에, 박 전 원장이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 제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박 전 원장은 공수처의 서면 조사에서 혐의를 모두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수처는 당시 박 전 원장의 언론 인터뷰 내용 분석 등을 통해 '윤 대통령이 윤우진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것과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박 전 원장이 발언한 부분이 모두 허위라고 판단했다. 박 전 원장이 서면 답변서와 자료를 냈지만, 공수처는 근거 없이 대선 주자를 비방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민주당 구출하려던 박 전 원장, 자신의 안위 걱정해야 할 상황

다만 공수처는 국정원법(정치 관여 금지) 및 일부 공직선거법(공무원 등의 선거 관여 등 금지) 위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박 전 원장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장의 직위나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공수처는 박 전 원장이 해당 발언을 하게 된 배경인 '제보 사주' 의혹에 대해서도 혐의없음 처분했다. 조성은씨의 '고발 사주 사건' 제보 과정에 박 전 원장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무혐의로 드러난 샘이다. 박 전 원장과 함께 고발된 조성은씨와 전직 국정원 직원으로 의심되는 성명불상자에 대해서는 ‘공수처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건을 대검찰청에 이첩했다.

공수처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조성은씨가 수차례 만나고 통화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관련 증거는 찾지 못해, ‘고발 사주’ 폭로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했다. [사진=MBC 화면 캡처]
공수처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조성은씨가 수차례 만나고 통화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관련 증거는 찾지 못해, ‘고발 사주’ 폭로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했다. [사진=MBC 화면 캡처]

수사팀은 "박 전 원장이 언론 제보에 관해 조씨와 협의하거나 성명불상의 전 국정원 직원이 관여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박 전 원장과 조씨가 롯데호텔에서 만난 사실은 확인이 되지만, 두 사람 모두 공수처 조사에서 언론 제보를 모의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원장의 향후 행보가 불투명해질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이다. 특정인을 당선되게 하거나 떨어뜨리게 할 목적으로 언론 인터뷰를 한 것 자체가 명백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검찰의 기소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국정원 퇴임 직후부터 정치 재개를 선언하며 위기에 처한 민주당을 구하려던 박 전 원장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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