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기본을 지키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토론이나 세미나 같은 걸 할 때 종종 인용하던 책이 있다. ‘틀리지 않는 법, 본성이 답이다’라는 제목이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런 책이 없었다. 대신 비슷한 책 두 권이 있었다. ‘틀리지 않는 법’과 ‘본성이 답이다’이었는데 앞의 책은 수학책, 뒤의 책은 심리학책이었다(대체 수학책은 왜 샀을까). 그러니까 두 개를 짬뽕해서 하나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고 착오임에도 꽤 오랜 시간 의심치 않고 활용한 것은 그 문장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닥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상식이다. 문제를 풀 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대부분 바로 풀린다. 보통은 문제 자체가 상식을 무시해서 발생하고 상식, 몰상식 뭐 이런 것들에 휘말리지만 않으면 어지간한 문제는 해결된다. 두 번째는 시간 건너뛰기인데 상식보다는 좀 어렵다.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뭔 얘기냐 하면 시계를 석 달이나 3년 쯤 앞으로 돌려 현재를 마치 과거처럼 돌아보는 것이다. 그럼 당장은 안 보이거나 보이는데도 의식적으로 외면하던 것들이 보인다. 가령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염병 사태가 그렇다. 전염병의 역사를 봤을 때 쉽게 가라앉은 적이 없었고 주기적으로 여러 차례 발병했으며 이렇게 빨리 백신이 나온 적도 없다. 작년 초, 우한 바이러스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되었을 때만 해도 우리 국민들 대부분이 몇 개월이면 이 질병이 물러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연히 아니었다. 벌써 2년 차다. 생각이 아니라 희망사항이었다. 그럼 내년에는 좀 나아질라나. 영국에서는 5년 본다는 얘기가 나왔다. 국내에서는 최소 3년은 갈 거라는 눈치보기식 혹은 하나마나 전망이 나왔다. 예전에 이 채널에서 ‘이 달의 역사’라는 작은 프로그램을 하나 진행했는데 그때 방송에서 그런 얘기 한 적 있다. 어쩌면 우리 세대가 해외여행을 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 지도 모른다고.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타박 듣기 싫어 지나가는 말처럼 흘렸지만 진심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현생 인류의 마지막 여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비즈니스는 계속. 매우 고가이거나 자가용 비행기). 해서 내년을 맞는 우리의 자세는 좀 달랐으면 좋겠다. 먼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버릴 것 그리고 현재가 영원히 계속 된다고 가정하고 모든 계획을 세울 것 이 두 가지다. 그러니까 여행업은 일시 폐업하는 게 좋겠다. 항공 운행도 화물 운수 전용으로 돌렸으면 좋겠다. 손님 받는 식당은 포장과 배달로 전환했으면 좋겠다. 정부 지원 같은 거 하나도 없이 앞으로 10년을 자력으로 버틴다는 자세로 살았으면 좋겠다. 시간 건너뛰기에는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씀 드렸다. 혹시 스페인 독감 끝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나. 확진도 사망도 주춤한 상태가 되자 20년 동안 파티의 시대가 열렸다. 놀고먹고 쌓인 스트레스 푸는데 집중했다. 성적으로도 매우 나태하고 한가해졌고 문란해졌다(좋아할 사람도 있고 싫어할 사람도 있겠다). 이게 별로 남다르고 신기한 일이 아니다. 기원 전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에 역병이 돌자 어떤 일이 벌어졌었나. 도덕과 예의가 실종되었고 하루하루 즐겁게 살자는 풍토가 사회에 팽배했다. 인간이란 게 그런 거다. 달라지지 않는다. 

틀리지 않는 법, 본성이 답이다

  세 번째가 본성이다. 문제를 풀 때 어쩌면 가장 쉬운 방법일 수도 있다. 인간의 본성만 알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내면만 냉철하게 들여다보면 되기 때문이다. 딱 하나만 예로 든다. 이 정부가 만날 하는 소리가 있다. 집은 사는 게(buy) 아니라 사는 거(reside)라고 했다. 그래서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거다. 집은 사는 게(reside) 아니라 사는 거(buy)였기 때문이다. 인간 소유욕의 끝이 주택이다. 일론 머스크야 집이 아니라 우주선, 우주 정거장, 화성의 신도시 뭐 이런 거겠지만 그거야 딴 세상 얘기고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내 집을 사서 그 집에서 식구들과 사는 게 꿈이다. 그게 본성이다. 특히나 주택에 대한 욕구가 절절한 게 우리 민족이다. 그런데 그 본성을 무시하고 거주하는 곳으로 바꾸시겠다고? 단순히 슬로건 하나로 본성을 하루아침에 전환시켜 놓으시겠다고? 해서 망한 거다. 물론 망한 건 정부가 아니다. 피해는 국민들이 봤다. 무주택자는 집값 올라 혈압 동반 상승했고 어쩌다 집 가진 사람은 실현되지도 않은 이익에 대한 세금 내느라 욕이 절로 나왔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보니 아직도 상식과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 약속들이 간간히 보인다. 제발 그런 건 좀 뺐으면 좋겠다. 지키기도 힘들고 억지로 지키려면 골병이 든다. 물론 댁들이 아니라 우리가 드니까 제발 그래 달라는 얘기다. 공정이 판치는 세상,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 이런 거까지 절대 안 바란다. 새해에는 그저 다만 상식이 통하는 사회, 본성이 답이 사회에서 살고 싶을 뿐이다. 틀리지 않는 법, 본성이 답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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