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 칼럼] 이재명 지사, ‘이념적 고향’으로 가셔서 ‘최고존엄’에 도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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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을 “친일 매국세력의 아버지”로 물고 뜯는 이재명 지사에게 드리는 고언(苦言)

#. 못사는 나라들의 공통점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유권자, 그리고 성실한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 나라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모든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왔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코로나19 예방접종하라면 했고,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입대하여 해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습니다. 제대 후 예비군 민방위 성실히 수행했고, 직장생활 하면서 갑근세, 소득세를 비롯하여 국가가 요구하는 모든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왔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확고한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목숨 바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언론사에서 해외 취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OECD 국가들은 선배들이 선점하고 있으니 제가 갈 곳은 체제변혁이 진행되던 구소련, 사회주의 중국을 비롯하여 파키스탄·인도·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 내전의 불꽃이 작렬하는 스리랑카와 중남미 같은 거칠고 험악한 지역이었습니다.

이 나라들을 취재하며 느낀 공통점은 극소수의 상류 지배층이 절대다수의 극빈층을 지배하는  신분 계급사회였다는 점입니다. 중산층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존재해봤자 10~15%도 안 되는 극단적인 빈부격차의 나라였습니다. 그렇다면 극소수의 상류층이 절대다수의 극빈층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 세상은 원래 계급사회였다

"로마인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기술은 분할통치(devide and rule)와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가 그 비법이었다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제가 체험했던 못사는 나라들은 ‘교육’에 그 흉악한 비결이 숨어 있었습니다. 지배층들은 일부러 교육 분야에 투자를 하지 않아 공교육 시스템을 붕괴시킵니다. 절대다수의 국민을 문맹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방치해놓고, 자기 자식들을 위해 학비가 대단히 비싼 사립학교를 만들어 최상급 교육을 제공합니다. 이렇게 본국에서 기본교육을 마치면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내 최신 경제·경영기법, 선진기술을 익히고 글로벌 인맥을 형성한 후 귀국하여 가업을 물려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 두 세대가 흘러가면 '신분상승의 사다리'는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사회의 모든 요직은 상류 지배층 자녀들이 장악하여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며 귀족사회를 형성하는 것이죠. 이것이 헬 중남미, 헬 서남아시아의 진면목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이재명 지사 당신이 살고 있는 나라는 '헤븐 대한민국'이라고 칭송이 자자합니다.  

이 지구상 모든 나라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습니다. 일본도 황족·화족·사족(士族, 사무라이)·평민의 신분사회였고, 인도는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로 계급이 철저히 구분되었습니다. 조선의 양반·상놈·노비·천민의 계급구조를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근대화 혁명을 이룬 선진국은 개인이 어떤 계급으로 태어났든 관계없이 능력이 출중하면 그에 합당한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왕성하게 작동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교육이었습니다. 아무리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어도 교육을 통해 월등한 지식과 특출난 리더십, 전문 지식을 인정받으면 신분 상승이 가능한 시스템이 정착된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못사는 부류에 속하는 나라들은 이러한 교육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망가뜨림으로써 전 국민의 저열화·열등화를 추구하는 한편, 극소수 상류 계급이 고급 교육을 독점하여 부와 권력의 대물림 현상을 고착화 시켰습니다. 그 결과 국민의 삶의 질은 1~2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는 ‘희망 없는 나라’로 전락한 것입니다.

#. 실패국가에서 성공국가로 발돋움한 원동력은 교육혁명

대한민국은 지난 20세기 100년을 통틀어 전반부 50년은 실패 국가의 전형이었다면, 후반부 50년은 성공 국가의 모범이었습니다. 건국 초기에는 아프리카의 가나보다 못사는 지구상 최빈국이었습니다만, 2018년 30-50클럽에 가입하여 명실상부한 선진국 클럽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까. 

양식 있는 전문학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이처럼 극단적인 변혁이 가능했던 이유로 교육혁명과 농지개혁의 성공 두 가지를 꼽습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과제를 성공시킨 주인공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광복회장 김원웅을 비롯하여 이 나라 좌익·공산 전체주의자들이 입만 열면 물고 뜯고 씹어대는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신은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 신분이었다고 한다. 무수저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도 노력만 하면 당대에 신분상승이 가능한 나라를 만든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교육혁명과 농지개혁 덕분이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신은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 신분이었다고 한다. 무수저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도 노력만 하면 당대에 신분상승이 가능한 나라를 만든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교육혁명과 농지개혁 덕분이었다.

이승만 정부가 재임 12년간 지출한 정부 예산 집행내역을 보면 국방비로 51%, 교육비로 17%를 지출했습니다. 합계 68%를 나라 지키고, 국민들 교육시키는 데 투입했다는 뜻입니다.

해방 당시 한국인의 문맹자(식민지 교육기관에 취학하지 않은 인구) 비율은 78%로 조사되었습니다. 일제하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한국인은 전체 인구의 22%에 불과했고, 전문학교 이상 학력 소지자는 전체 인구의 0.2% 미만이었다고 하네요(유영익, 「1950년대를 보는 하나의 시각」, 『한국근현대사론』, 일조각, 1992, 262쪽).

절대다수의 국민이 문맹 상태라면 어떻게 근대국가 운영이 가능하겠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들을 문맹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문맹국민 완전퇴치계획’을 수립하여 국문 보급반 1만여 팀을 편성합니다. 이들을 군대·직장·마을 등 전국 방방곡곡에 파견하여 거국적인 문맹 퇴치운동을 벌였습니다. 

1954년에는 ‘의무교육 6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문교부 예산의 60~80%를 의무교육에 투입합니다. 이처럼 거국적인 교육운동의 결과 1959년까지 전국 적령 아동의 95.3%가 취학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 국가에 돈이 생겼다 하면 국비유학생 파견

고등교육기관은 해방 당시 대학과 전문학교를 합쳐 19개교, 학생 8,000여 명에 불과했으나 1960년에는 총 68개교, 학생 수 약 1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국가 예산이 모자라 고등교육기관 지을 형편이 못되자 이 대통령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학교를 세워달라”고 호소합니다. 그 결과 재력가들이 대거 사립학교를 설립합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 중에 사립학교 비율이 대단히 높은 이유는 부족한 국가예산을 보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지금이야 자녀 유학 자금은 부모가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입니다만, 그 시절 자녀를 해외 유학 보낼 만큼 여유 있는 가정이 드물었습니다. 유일한 유학 기회는 국비유학생이었어요. 1953년부터 1960년까지 이승만 대통령은 국가에 여유가 생겼다 하면 국비유학생을 선발하여 해외 유학을 보내 고급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 결과 정규 유학생 자격으로 해외에 나가 공부한 학생은 4,884명, 단기 연수 목적의 기술 훈련 유학생 2,309명, 미 국무부의 교육교환계획(6개월 이내의 단기시찰계획)에 의해 각계 지도자 940명이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게다가 1950년대에 선진 군사제도와 각종 무기체계 운영을 위해 국군 장교와 하사관이 미국의 각종 병과학교에 파견되어 전문 교육을 받고 귀국합니다. 그 숫자가 9,886명이었습니다. 이승만 정부 시절 대대적으로 육성된 군 장교단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하여 국가 근대화를 추진하는 핵심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죠.

이승만 정부 시절 교육시설이 모자라 곳곳에 천막을 치고 교육을 했다. 그러한 교육혁명 덕분에 문맹이 퇴치되었고, 국민들의 지력을 향상시켜 민주주의 정치가 꽃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승만 정부 시절 교육시설이 모자라 곳곳에 천막을 치고 교육을 했다. 그러한 교육혁명 덕분에 문맹이 퇴치되었고, 국민들의 지력을 향상시켜 민주주의 정치가 꽃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승만 정부가 도입한 6년제 의무교육과 문맹퇴치운동은 우리 국민들에게 민주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적 능력을 갖추게 함으로써 민주주의 정치가 꽃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또 이승만 정부의 교육은 전통시대의 신분주의 내지 차별주의 교육과는 달리,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교육기회를 부여한 것이 큰 특징입니다. 국민 모두에게 평등한 신분상승 기회를 열어주어 한국 사회의 평등화와 경제발전에 근원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유영익,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유영익 편,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7, 555~556쪽).

제가 앞서 소개한 나라들처럼 특수계층의 부와 권력의 대물림을 위한 고급 교육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지력을 높이기 위한 격렬한 교육투자는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 대폭발을 일으켜 고도성장의 결정적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한 이승만의 교육투자 결과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 “교육에 배고픈 한국”

브루스 커밍스는 자신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휴전 직후의 한국을 '희망없는 나라'라며 이렇게 묘사한 바 있습니다.

1953년, 한반도는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남쪽의 부산에서 북쪽의 신의주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은 죽은 자들을 묻고 잃은 것들을 슬퍼하면서, 그들 생애의 남은 것들을 주워 모으느라 여념이 없었다. 수도 서울에서는 콘크리트와 파편이 뒤범벅이 된 길가에, 텅 빈 건물들이 마치 해골처럼 서 있었다. 수도 주변의 미군 병사(兵舍)에는 수많은 거지들이 외국 군인들이 내버리는 찌꺼기를 줍고자 모여들었다…. 마을들은 텅 비었으며 거대한 댐들은 더 이상 물을 저장할 수 없게 되었다. 동굴과 터널 속의 두더지 같은 생활에서 기어 나온 사람들은 밝은 햇살 속에서 악몽에 부닥치게 된 것이다.’(브루스 커밍스 저·김자동 역, 『한국전쟁의 기원』, 일월서각, 1986, 11쪽)

그랬던 대한민국이 1950년대 후반에는 완연하게 분위기가 바뀝니다. 한미경제협의회의 미국 측 경제조정관으로 근무했던 윌리엄 윈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참석하여 ‘교육에 배고픈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연설합니다.

“아침 7시를 전후해서 중앙청이 보이는 광화문 네거리에 서 보라. 7~8세의 어린이로부터 성년이 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제복을 입고 손가방을 들고 혹은 메고 가는 학생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씩씩하고 명랑하고 혈색이 좋다. 그들에게는 신생 공화국의 앞날을 책임질 막중한 의무가 주어져 있다. 한국의 교육은 이러한 사명을 충분히 완수할 수 있다고 본다.”(송인상, 『재계회고 8』, 한국일보사, 1981, 88쪽)

#. 농지개혁의 결과는 ‘캔 두 스피릿’의 탄생

농지개혁은 또 어떻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시행법령이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농민들에게 농지 분배가 시행되었습니다.  이 대통령의 이런 결단이 없었다면 농지개혁은 6·25로 인한 혼란으로 인해 무위로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일부 철없는 학자들은 북한식 무상몰수-무상분배 방식이 아닌, 유상몰수-유상분배 방식의 농지개혁은 실패작이라고 지껄입니다만, 그건 자신의 무식을 증명하는 징표일 뿐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농지개혁을 연구한 전문학자들은 세계 여러 나라 중 경제가 고속 성장하면서도 소득분배가 한국처럼 공평하게 이루어진 나라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평가합니다. 그 공로는 이승만의 농지개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죠. 지주계급은 대대손손 토지를 세습하며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현상을 되풀이해 왔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으로 농지개혁에 성공한 덕에 하루아침에 지주계급이 소멸합니다. 그 결과 수백 년 뿌리 깊게 이어져 오던 지주-소작인, 즉 부자와 빈자(貧者)간의 계급 갈등이 일거에 불식되었습니다. 이승만 덕분에 한국은 근대화 출범 초기부터 첨예한 계급갈등의 소지를 해소하고 균질사회로 출발할 수 있었죠.

또, 6·25 남침 전에 이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농민들이 ‘내 소유의 땅’을 갖게 된 덕에 남한에서 인민혁명을 기대했던 공산주의자들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6·25 전에 농지개혁이 시행되지 못했다면 공산군 점령 치하에서 대다수 남한 농민들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감언이설에 현혹되어 한반도가 적화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농지개혁에 성공한 일본·한국·대만은 중산층이 두텁게 자리잡아 경제성장의 초석과 사회균형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반면, 농지개혁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서남아, 필리핀, 중남미 국가들은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신분 계급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교육혁명과 농지개혁 덕분에 조선조 500년 동안 뿌리 깊게 이어왔던 양반-상놈의 계급질서가 붕괴되었고,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사라졌습니다. 전 국민이 계급 없고, 빈부격차가 사라진 ‘차별 없는 시대’가 열림으로써 누구나 스스로 노력만 하면 당대에 신분 상승이 가능한 ‘기회의 나라’가 실현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풍토가 ‘캔 두 스피릿’(Can do spirit)이라는 의욕과 참여 동기의 근원입니다. 미국에 ‘아메리칸 드림(Americam dream)’이 있다면, 한국에는 ‘코리안 드림(Korean dream)’이 있었던 셈이죠.

#. ‘무수저’도 당대에 신분상승이 가능한 나라

이재명 지사는 대선 출마 선언 직후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물고 뜯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는 달리 대한민국은 친일(親日)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네요. 2017년 1월에는 대선 경선 예비후보에 등록한 후 국립현충원을 찾아가 김영삼·김대중 묘역만 참배했습니다. 기자들이 근처에 있는 이승만·박정희 묘역을 지나친 이유를 묻자 “이승만은 친일 매국 세력의 아버지,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라고 망언을 했습니다.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를 나왔고, 이재명 지사도 어린 시절 뭐가 째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공단 소년공으로 고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결과 “나는 흙수저가 아니라 무수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처럼 무수저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도 열심히 노력하면 당대에 대선 후보가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당선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란 사실을 알고나 계십니까?

그런 ‘코리안 드림’의 초석을 다진 분이 이승만 대통령인데 그런 분을 친일파, 민족반역자, 미국의 앞잡이라고 물고 뜯는 사람을 정상 상태의  멘탈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더러운 나라, 친일세력과 미 점령군의 나라라면 귀하는 뭣 때문에 대한민국 대통령을 하겠다고 출마하신 겁니까? 당신이 양식 있는 정상인이라면 오염되고 더러운 나라의 대통령에 도전할 것이 아니라, 항일무장투쟁으로 민족정기가 이슬처럼 영롱하고, 민족사적 정통성이 태양처럼 빛난다고 믿고 계신 이념의 고향, 사상의 성지로 가셔서 ‘최고존엄’에 도전하는 것이 정상 아니겠습니까.

제발 부탁인데 더 이상 대한민국 국민들 화나게 하지 마시고 이 지사님 이념과 사상의 본향으로 가셔서 행복하게 사세요. 그것이 당신이 시급히 해야 할 제1의 과제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 대선 출마자께서 이념의 고향, 사상의 성지로 투신하신다면 그곳 신민들이 열렬한 환영대회와 카드섹션, 매스게임을 벌이며 반겨주지 않을까요.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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