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북특별대표에 성 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임명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북특별대표에 성 김 주인도네시아 대사를 임명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박 5일간의 방미 중 최고의 성과로 꼽는 부분은 성 김 주인도네시아 대사가 대북특사(특별대표)를 맡을 것이라는 발표였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미 공동 기자회견에서 예고에 없던 발표를 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이 이미 대화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3일 소셜미디어에도 성 김 대사 발탁은 “깜짝 선물”이라고 했다.

한미 간에 사전조율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응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국 4대그룹의 44조 투자 유치한 바이든, 55만명분 백신으로 답례/미안했는지 대북특사 깜짝 선물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실속’을 단단히 챙긴 반면, 문 대통령은 ‘립서비스’만 받고 돌아왔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삼성전자, 현대차, SK그룹, LG그룹 등 한국의 빅4 대기업은 이번 방미에서 44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사전에 치밀하게 조율된 결과의 산물이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현찰을 톡톡히 챙긴 셈이다.

반면에 문 대통령은 손에 쥔 구체적 성과물이 없다. 모두 원론적인 내용들이다. 바이든의 수사는 우호적이었지만 추상적이 수준에 불과했다. 코로나19 백신 지원을 기대했지만, 한국군 55만명분 약속이 고작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생각해도 문 대통령이 너무 밑지는 장사를 했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정에 없던 대북특사 임명이라는 깜짝쇼를 준비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반도통'인 성 김 대사는 인도네시아 대사로 재직하던 중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맡았다가 이번에 대북특별대표 낙점을 받았다. 성 김 대사는 한국에서 13살에 이민을 간 개인사 때문에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직업 외교관으로, 북핵 6자 회담 수석대표와 주한 미국대사를 지냈다.

주필리핀 대사 시절이던 2018년 5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 등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만나 합의문 초안을 작성하는 등 미국 대북 정책에 깊이 관여해왔다. 외교 소식통은 “북핵 협상의 어려움을 너무 잘 아는 성 김 대사는 대북특별대표직을 수차례 고사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성 김은 인도네시아 대사직 유지, 대북특사는 겸직에 불과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성 김 대사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황이다.

미 대북특별대표 맡는 성 김. [사진=연합뉴스]
미 대북특별대표 맡는 성 김. [사진=연합뉴스]

김 대사가 주인도네시아 대사직을 유지하면서 대북특별대표 임무를 겸임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학 학장을 유지한 채 대북특별대표로 일해 ‘파트타임 대표'로 불렸던 스티븐 보즈워스가 떠오른다”는 분석을 내놓는 상황이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총괄하는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자리는 4개월째 공석이었다. 외교가에선 이를 두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성 김 대사의 임명은 사전 조율없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미 공동 기자회견에서 깜짝 발표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일견 ‘선물’처럼 보인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성 김 대표의 자격과 위상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매겨진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성 김은 하노이 회담 실패의 책임자 중 한 명...북한 반응 봐야”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24일 TBS 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 “성 김의 임명은 나쁘지 않다”면서도 “성 김 특별대표의 자격이 (관건이다), 성 김이 북한과 합의한 것을 국무장관에게 보고하고 대통령에게 직보해서 바로바로 결론을 내린다는 것인지”라고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북인권특보를 임명한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대북특별대표가 없어서 걱정이라는 얘기가 계속 있었다. 그러던 차에 깜짝 발표는 선물처럼 보인다”며 일부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했다. 연이어 정 전 장관은 “하노이 회담 실패의 책임자 중의 한명이 성 김 대사라는 점에서,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기다려진다”고 전망했다.

성 김 대사의 깜짝 임명만으로는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북한은 김여정이나 최선희의 메시지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지 않는 한, 대화에 나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혀왔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 회견문에는 ‘적대시 정책 철회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가 없다’는 것이 외교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쪽은 명언적으로 적대시 정책 철회를 보여달라는 입장인데, 그게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사진=김어준의 뉴스공장 캡처] 

정 전 장관 역시 성 김 대사 임명을 환영하면서도 “북쪽은 명언적으로 적대시 정책 철회를 분명히 해달라고 하는데, 그게 없어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북정책 추진의 토대로 싱가포르 공동성명과 함께 판문점선언을 명시한 것은 여러 면에서 의의가 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결과를 바탕으로 남북 간 접촉을 시도하며 임기 마지막 해 북·미 대화 재개의 계기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북정책 합의가 선언적 수준에 머물고 제재 완화 등 북한이 원하는 구체적인 ‘당근’이 없다는 점에서 북한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인정한 점은 의미가 있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순으로 구성된 싱가포르 성명은 비핵화가 후순위로 배치돼 있어 합의 당시 미국 내 비판이 컸다. 그럼에도 바이든 정부가 이를 토대로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밝힌 점은 북한으로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요소이다.

바이든 정부가 판문점선언을 존중한 것은 남북관계가 북·미 대화를 앞지르는 것을 경계했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남북관계의 독자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선호하는 ‘톱다운’ 방식, 바이든에겐 무의미/대북특사는 ‘깜짝 쇼’에 그칠 듯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식 ‘톱다운’ 담판에 대해 비판적이며, 실무협상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마주 앉기 전에, 우선 우리의 팀들이 북한 팀과 먼저 만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실무협상팀의 대표로 성 김 대사를 임명한 것으로 풀이되지만, 그동안 북한은 실무협상을 중심으로 한 ‘보텀업’ 방식보다는 정상 간 ‘톱다운’ 협상을 선호한다는 점에서도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은 현재 공개 입장 표명이 없는 상태다.

사전에 우리 정부와 아무런 조율없이 ‘깜짝 선물’로 발표한 성 김 대사의 대북특사 임명은, 문대통령 재임기간에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한 채 ‘깜짝 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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