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시민단체들이 북한 김일성의 항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판매·배포를 금지해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고 소송 비용을 신청인(채권자)들이 부담하도록 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박병태 수석부장판사)는 전날 "신청인들의 주장과 제출 자료만으로는 이 사건 신청을 구할 피보전 권리나 그 보전의 필요성이 소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사건 신청은 이유 없으므로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앞서 '법치와 자유민주주의연대(NPK)' 등 단체와 개인들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인정된 김일성 일가를 미화한 책이 판매·배포되면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인격권을 침해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한다며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 서적의 판매·배포 행위로 인해 신청인들의 명예가 훼손되는 등 인격권이 침해되는 경우에는 행위의 금지를 구할 수 있겠지만, 이 사건에서 서적 내용이 신청인들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서적이 국가보안법상 형사 처벌되는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행위가 신청인들의 인격권을 침해했으니 금지돼야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신청인들은 자신들보다 대한민국 국민의 인격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 사건 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인격권은 전속적 권리로서 신청인들이 임의로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신청할 수는 없다"고 했다.

신청인 측은 기각 결정에 불복해 전날 즉시 항고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서적이 신청인들의 인격권을 직접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법원이 판단한 만큼 6.25전쟁 납북자 가족들을 중심으로 신청인단을 구성해 이날 오후 서울서부지법에 회고록 판매·배포금지 가처분을 재신청하기로 했다.

신청인들의 소송대리인 도태우 변호사는 "북한 정권에 의해 피해를 당한 납북자 가족들이 이미 가처분 신청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며 "법원에 다시 판단을 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앞서 도서출판 민족사랑방은 지난달 1일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전 8권)’를 출간했다. 이 책은 2011년 대법원이 '이적표현물'로 판결한 동명의 북한 원전과 똑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김일성의 업적을 대외에 선전하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