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8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2021∼2023년 화이자 백신 최대 18억 회분을 공급받는 새로운 계약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사진=브뤼셀 AP 연합뉴스]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8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2021∼2023년 화이자 백신 최대 18억 회분을 공급받는 새로운 계약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사진=브뤼셀 AP 연합뉴스]

화이자 백신을 대량 구매한 유럽연합(EU)이 다음 달부터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구매를 중단하기로 밝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8억회분 화이자 백신 구매계약이 체결됐기 때문이다.

백신 공급부족사태를 시종일관 부인해온 문 대통령, EU집행위원장과 너무 달라

이번 성과는 EU의 행정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개인 외교 덕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U가 백신구매에 소홀했다는 자기 고백을 하고, 지도자가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결과물이다.

이로써 한국의 화이자 공급에는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정부가 10일부터 고령층을 대상으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 예약을 시작했다. EU가 구매중단한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고령층의 불안감이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백신 공급부족 사태를 시종일관 부인해온 문재인 대통령이 폰데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EU마저 AZ 백신을 구매 리스트에서 제외한 가운데, AZ 접종을 고집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대책은 문제점으로 확대되리라 예상된다.

솔직하게 반성한 EU 집행위원장, 화이자 18억회분 확보한 뒤 AZ 구매중단 선언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8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2021∼2023년 화이자 백신 최대 18억회분을 공급받는 새로운 계약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9일(현지 시각), EU는 내달부터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더이상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화이자 백신이 AZ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추가 구매 필요성이 없다는 설명이다.

티에리 브루통 EU 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프랑스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EU 집행위는 아스트라제네카와 6월 이후 공급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며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EU 집행위의 결정을 환영하면서 “EU 정책은 특히 변이 코로나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우리는 (AZ 백신보다) 다른 백신이 이에 대응하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호응했다.

당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화이자 백신보다 저렴하고 사용이 용이해 저소득 국가에 백신을 공급하기 위한 글로벌 전략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EU 국가와 아스트라제네카 간 계약과 달리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불만이 노출됐고 법적 다툼으로까지 비화했다.

게다가 EU 일부 회원국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희귀 혈전과의 잠재적인 연관성이 밝혀진 뒤 이 백신 투여를 잠정 중단하면서, EU 국가와 아스트라제네카 사이에 금이 생긴 것으로 알려진다.

EU 집행위가 발표한 이번 계약으로, 기존에 확보한 화이자 백신 6억회분에 18억회분이 추가될 예정이다. EU 전체 인구 4억 5000만 명에게 부스터샷(효과를 보강하는 추가 접종)을 접종하고도 남는 물량이다. EU 집행위는 올해 여름까지 EU 전체 성인 인구의 최소 70%까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EU 집행위원장과 화이자 CEO의 깊은 신뢰가 거둔 성과

이번 계약은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에게 지속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은 결과라고,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한 바 있다.

이번 계약에 따르면 EU는 2023년까지 화이자 백신 18억회분을 받을 예정이다. 화이자 백신 단일 공급 계약으로는 최대 규모다. 세계 각국이 백신 부족으로 허덕이는 상황에서 EU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개인 외교’가 화이자와의 계약 성사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NYT의 평가이다.

부를라 화이자 CEO는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의 신뢰를 통해 18억회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부를라 화이자 CEO는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의 신뢰를 통해 18억회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부를라 화이자 CEO는 NYT에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깊은 논의를 하면서, 서로 간에 깊은 신뢰가 생겼다”고 말했다. 부를라 CEO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에 대해 “변이 바이러스를 포함해 모든 일의 세부 사항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화 내용이 훨씬 더 깊어졌다”고 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의사 출신이다. NYT는 “이번 계약은 (정치인의) 정치적 생존 노력과 기업의 판매 전략이 딱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평가했다.

EU 집행위원장 “우리는 승인이 늦었다”며 실수 인정하고 화이자 CEO와 직접 접촉

두 사람이 처음 연락한 건 지난 1월이다. 이후 두 사람은 문자와 전화를 계속 주고받으며 유대를 쌓아 나갔다. 2월 들어 EU가 의존하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공급이 지연되는 문제가 터졌고,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위기 대처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때 부를라 CEO와 쌓은 유대관계가 힘을 발휘한 것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EU 행정부 수반에 해당한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난 2월 10일 유럽의회에 출석, 집행위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전략과 관련해 실수를 인정했다. “우리는 승인이 늦었다. 우리는 대량 생산과 관련해 너무 낙관적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주문한 것이 실제로 제때 배송될 것이라고 너무 확신했을지도 모른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코로나19 백신 보급 전략에서 미국, 영국 등에 비해 늦은 사용 승인과 초기 백신 공급 부족, 느린 접종 속도 때문에 회원국으로부터 비판과 압박을 받아온 데 따른 솔직한 사과였다.

EU 집행위는 지난해 12월 21일 유럽의약품청(EMA)의 권고에 따라 처음으로 화이자 백신 사용을 승인했다. 당시 결정은 영국, 미국, 캐나다 등 각국에서 이미 해당 백신 승인과 접종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뒤처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에 따라 지난해 12월 말부터 EU 27개 회원국에서 화이자 접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지난 1월 6일 미국 제약사 모더나에 이어, 1월 29일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영국 옥스퍼드대 코로나19 백신도 승인됐다.

그러나 초기 백신 공급 물량이 당초 예상에 미치지 못하면서 회원국들의 불만과 우려가 커졌고, 스페인의 경우 지난달 말 수도 마드리드에서 백신 부족으로 2주 동안 접종을 중단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EU 집행위는 또 아스트라제네카가 지난 1월 코로나19 백신 생산 차질로 초기 유럽 공급 물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히자, 영국에서 생산한 백신을 EU로 돌리라고 요구하는 등 충돌을 빚기도 했다.

한국엔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처럼 책임지는 지도자 없어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개인적인 지식과 인맥을 동원한 ‘개인 외교’로 ‘18억회분 계약’이라는 성과를 일궈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백신 접종 전략이 늦었다는 솔직한 사과, 화이자 CEO와의 1달간에 걸친 전화와 SNS 등의 접촉을 통한 추진력으로 더욱 주목받았다.

하지만 화이자 백신을 추가 확보하려는 국가에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특히 우리나라로서는 기존 물량의 조기 도입도 시급한데, 3차 접종(부스터샷)에 대비한 추가 확보전에서도 뒤처질 위기에 놓였다. 한마디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예방접종센터 백신 전용 냉장고에 화이자 백신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예방접종센터 백신 전용 냉장고에 화이자 백신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제는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처럼 책임지고 도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분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모든 공무원이 백신 구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렸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 현장에서는 ‘EU가 AZ백신 구매로 중단하기로 했다’는 보도에 더 자극받는 분위기이다. 현재 보건소에서 AZ백신 접종을 담당하는 관계자는 “AZ백신 접종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고, 노쇼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도 다른 백신이 충분하다면, AZ백신 접종을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