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똑딱선' 日 표류 2017년 한 해만 104척
원양어업 강요당한 선박 대부분 10m 내외 소형
日측 "공작선 의심" 냉랭…北은 "강성대국" 타령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남북대화가 이어지는 중에도 북한의 어선들이 일본해안에 표류하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가 결정되면서 남북 간에는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북한 마식령 스키장 전지 훈련 등을 놓고 많은 대화가 오가고 있지만, 그러는 중에도 북한의 어민들은 똑딱선을 타고 먼 바다로 생사(生死)를 넘너드는 ‘죽음의 고기잡이’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 어선들이 일본 해안에 표류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23일에는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들이 아키타(秋田)현 해안으로 표류해온 북한 어선을 발견하고 타고 있던 어부 8명을 구조한 바가 있으며, 11월 27일에는 아키타현 해안에서 표류하던 목선 한 척에서 북한 어부들로 보이는 8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29일과 30일에도 홋카이도 남부 해안에 표류한 북한 배가 발견되었다. 29일 발견된 목선에 타고 있던 북한 어부들은 날씨가 나빠서 무인도에 피난했다면서 식량을 요구하기도 했다. 30일 이시카와(石川)현 앞바다에서는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표류하고 있던 북한 어선 두 척을 발견하고 어선에 타고 있던 21명 전원을 구조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이런 일은 거의 매일 발생하다시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의 배가 일본에 표류한 통계를 보면 2013년에 80회, 2014년에 65회, 2015년 15회, 2016년 66회 등인데, 2016년 들어오면서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11월 한달 동안 27척의 북한 어선들이 일본에 표류했고, 작년 한해 동안 총 104척이 일본에 표류하여 42명이 구조되고 43명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런 현상은 해가 바뀌어도 계속될 조짐이다. 바로 며칠 전 일본 중부의 가나자와시 경찰서는 2018년 1월 10일 인근 해안으로 떠밀려온 목선 안에서 신원불명의 남성 시신 7구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현상은 작게는 북한 수산업의 어려운 처지를 대변하는 것이지만, 크게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 경제 전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북한은 “바다로부터 식량을 공급받고 수산업을 외화벌이의 주요한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어장의 확대, 수산의 과학화, 생산의 극대화를 추진해나간다”는 기본방향을 정하고 일찍부터 수산업을 장려해왔다. 하지만, 사회주의 경제의 비효율성과 과도한 군비지출로 인해 경제 전체가 궁핍해지면서 남북 간의 경제력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지고 말았다. 한국은 금년에 30-50 클럽에 가입하게 되는데, 30-50 클럽이란 일인당 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이면서 인구가 5천만 명을 넘는 나라들, 즉, 세계경제의 실세국들을 말한다. 개인소득 3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는 한국은 금년에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태리 등에 이어 일곱번 째로 30-50 클럽의 회원이 될 전망이지만, 북한 경제는 세계 최하위 권에 머물고 있으면서 국제제재까지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북한의 수산업 역시 목표치를 달성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태에 머 물고 있다. 북한의 어획량은 1980년대 중반 연 160만 톤 수준까지 늘어났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 침체와 연안 어족자원의 고갈로 1960년대 수준으로 감소했다. 김정은 정권의 출범과 함께 어획량은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여 2012년 73만 톤, 2014년 84만 톤, 2015년 93만 톤 등으로 늘어났는데, 이는 핵문제로 인해 유엔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평양정권이 어획고 증가를 부쩍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어획량 증가는 조만간 한계에 부딪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연안의 어족자원은 이미 고갈된 상태이고 북한이 중국에 어업권을 팔아넘김에 따라 현재 연 2천 척에 달하는 중국 어선들이 북한 해역에서 무차별적 쌍끌이 어로를 하고 있어 어족자원 고갈은 더욱 심해질 것이 뻔하다. 이로 인한 피해는 북한뿐 아니라 한국에도 고스란히 미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연안어업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1980년대부터 원양어업에 눈을 돌려 매년 3백만 톤이 넘는 어획고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사정은 세계 10대 해운국의 하나이자 세계 15권의 어획고를 기록하는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북한의 경우 대형 어선들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고 원양어업을 개척할 여력이 없어 여전히 연해어업에 크게 의존한다. 북한당국이 어선들을 전시 보조함정으로 간주하여 통계를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동력선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의 어선을 대개 4만여 척으로 추산하며, 이 가운데 동력선은 한국의 1/4 수준인 2만 5천 척 정도로 보고 있다. 동력어선 가운데서도 원양어업이 가능한 대형어선은 거의 없고 30~100톤 사이의 소형 어선들이 60%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정권이 무리하게 어획 할당량을 내려보내고 고기잡이를 다그치고 있어 청진, 함흥, 원산 등에서 출항한 소형 어선들이 북한해안에서 600~700km 떨어진 대화퇴 어장까지 나가 어로작업을 하다가 기관고장 등 사고를 당하면 가을과 겨울에 대륙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의 영향을 받아 일본 서부해안으로 표류하는 것이다. 표류한 선박의 대부분이 먼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기에는 무리인 10미터 내외의 소형 목선들이라는 사실은 북한의 어려운 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즉, 어선의 노후화, 부품 부족, 국제제재로 인한 연료 부족 등이 북한 어민들을 죽음의 바다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 어선들의 표류를 바라보는 일본 정부와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일본인들은 북한 공작선들이 일본인들을 납치했던 전력을 기억하면서 북한의 어선이 표류해오면 공작선이 아닌지를 의심하며, 전염병 감염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북한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잠수함을 가진 나라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80여 척에 달하는 북한의 잠수함들 상당수가 노후하거나 소형 잠수함이라는 점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숫자만 따진다면 북한이 세계 최다 잠수함 보유국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큰 어선이 없어 어민들이 똑딱선을 타고 죽음의 바다로 향하는 중에도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할 새로운 잠수함을 건조하는데 돈을 퍼붓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어떻게든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국제제재 체제를 깨트려 보겠노라고 법석을 떨면서 한국에게 무슨 큰 시혜(?)라도 베푸는 양 “평창에 참가해 줄 것이니 한국이 알아서 평화무드를 조성하는데 앞장을 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순진한 한국 국민들이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를 지켜보면서 ‘평창을 넘어 비핵화로’를 기대하는 중에 북한정권은 ‘평창을 넘어 핵보유 강성대국으로’를 되새기면서 한국을 닦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중에도 더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 위험천만한 소형 목선을 타고 죽음의 바다로 향하는 북한 어민들의 행렬은 어제도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前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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