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영국의 가디언은 설교에서 “사탄적 이슬람”이라는 표현을 한 제임스 맥코넬(James McConnell) 목사가 기소된 사건을 보도했다. 자유민주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나라에서 목사가 설교한 내용 때문에 기소되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인가? 이 나라의 거리에서 “성경은 동성애를 죄라고 한다”라고 설교하면 어떻게 될까? 최근 토론토에서 데이빗 린(David Lynn) 목사가 동일한 이유로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렇다면 무슬림이나 동성애자가 기독교인을 비하하거나 성경을 모욕하면 어떻게 될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상에
미국의 성공적 보수주의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존경하는 모튼 블랙웰(Morton Blackwell)과 Leadership Institute(이하 LI)의 존재감을 음미하는 것은 지친 오후의 아메리카노만큼 그 맛이 쓰다. 이 위대한 존재감이 달콤하지 않은 이유는 한국의 보수가 왜 망했는지 LI의 존재 자체가 여실하게 알려주기 때문이고, 그 쓴 맛이 신선한 이유는 지치고 무기력해진 자신을 각성시켜 주기 때문이다.블랙웰은 지금도 백전노장으로서 LI를 이끌고 있다. ‘원로’란 이런 분에게 붙여지는 명예로운 호칭이다. 그의 인생은 마이크를 한
짧은 시간, 봄의 아름다움을 만개(滿開)로 표현한 벚꽃도 지고 더 농숙해지던 날씨가 비와 함께 추위를 느낄 정도로 변해버린 밤이었다. 한 대학에서 강연을 마치고 산부인과 의사이자 낙태 경험을 가진 두 아이의 엄마를 만나서 낙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낙태시술의 경험을 설명하면서 눈물을 보이던 그녀의 아픔이 엄마에 의해 살해된 여러 생명들의 표현되지 못한 원망처럼 필자의 양심과 감정을 파고들었다.1977년 보스턴에서는 케네스 에들린(Kenneth Edelin) 박사가 자궁절개수술로 꺼낸 내용물(?)을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
1952년 제이콥 탈몬(J. L. Talmon)은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의 기원”이라는 명저를 출판했다. 그는 프랑스혁명이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측면도 있지만 ‘전체주의적 파시즘’의 전조가 되었다고 상세히 밝혔다. 링컨과 마르크스, 루스벨트와 무솔리니처럼 양립 불가능한 정치의 길을 걸었던 지도자들이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서 다른 교훈을 얻었고 전혀 다른 정치를 추구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역사는 이렇게 아메바처럼 단세포적 사고에 고착된 편협한 인간들의 신념과 다르게 복합적이다.프랑스 혁명에 비판적인 필자는 탈몬의 주장에
당시 30대의 젊은 교수였던 필자는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의 여름방학을 일본에서 보냈다. 이토 히로부미 연구에 천착했던 여름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습기 많고 무더운 일본, 특히 교토의 날씨는 필자의 헤어 스타일을 영원히 “빛나게” 하는데 기여했다. 탈모의 시작이었다.연구를 하면 할수록 일본의 치밀한 전략과 이토의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났다. 당시 일본학계에서도 다수파는 이토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 때의 공부가 이후 친분을 맺게 되는 다키이 가즈히로 교수의 이토에 관한 긍정적인 학설들을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몇 년 전 필자는 학술대회 참석 차 홍콩을 방문했다.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홍콩으로 돌아온 한 노학자와 배를 타고 홍콩의 야경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더 이상 내가 사랑했던 홍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지난 24일 홍콩의 사업가가 중국검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을 접하고 필자는 중국 공산당에 비판적이던 그의 안위가 걱정되었다.1949년 중국공산당은 베이징의 자금성에 붉은 깃발을 걸고 승리와 해방을 선포했다. 마오연구의 권위자 프랑크 디쾨터에 따르면, 공산당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