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계였던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 여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에드워드 8세가 동생  앨버트에게 양위했기 때문이었다. 앨버트는 조지 6세가 되었고 자연스레 그의 장녀였던 엘리자베스 공주는 왕위계승서열 1위가 되었다. 조지 6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의 모습. 왼쪽부터 조지 6세의 아내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방계였던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 여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에드워드 8세가 동생 앨버트에게 양위했기 때문이었다. 앨버트는 조지 6세가 되었고 자연스레 그의 장녀였던 엘리자베스 공주는 왕위계승서열 1위가 되었다. 조지 6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의 모습. 왼쪽부터 조지 6세의 아내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비, 엘리자베스 공주, 메리 왕대비(조지 6세의 어머니), 마거릿 공주,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가 장장 70년간의 재위기간 끝에 현지시간으로 지난 8일 오후 6시 30분경 서거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2월 6일 즉위해 70년 214일간 왕위를 유지함으로써 영국 역대 왕들 중 최장기간 재위했으며, 여왕으로서는 63년 216일 동안 재위했던 고조모 빅토리아 여왕보다도 오래 왕위를 유지해 세계 역사상 가장 긴 재위기간을 보유한 여왕이 됐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는 원래 영국 왕위에 오를 수 있을만한 계승권자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어떻게 엘리자베스 2세는 여왕이 될 수 있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선 먼저 영국의 왕위계승법을 알아야 한다. 왕위계승법은 크게 3가지 원칙이 있었다. ▲ 반드시 본인과 배우자가 성공회나 개신교 신자여야 함 ▲ 계승순위의 우선권은 상속되므로, 상위 계승순위에서 자녀가 태어날 경우 하위 계승순위는 모두 조정됨 ▲ 같은 세대 내에서는 남자가 여자에 우선권을 가지며 동성인 경우에는 먼저 태어날수록 순위가 높음이다. 이 중 '같은 세대 내에서는 남자가 여자에 우선권을 가지며 동성인 경우에는 먼저 태어날수록 순위가 높아진다'는 2013년 칙령으로 '2011년 10월 28일 이후로 출생한 자는 성별 상관없이 출생 순서에 따라 순위가 높다'로 변경된 바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 조지 6세(재위 1936년-1952년)는 큰 아들이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조부 조지 5세(재위 1910년-1936년)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 에드워드 앨버트 크리스티안 조지 앤드루 패트릭 데이비드(Edward Albert Christian George Andrew Patrick David)가 조지 5세 사후 에드워드 8세(재위 1936년 1월 20일-동년 12월 11일)가 됐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작은 아들이었던 앨버트 프레드릭 아서 조지(Albert Frederick Arthur George, 이하 앨버트)는 자신이 영국의 국왕이자 인도 제국의 황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가 왕위계승서열 1위이긴 했지만, 형 에드워드 8세가 결혼해서 자녀를 갖게 되면 자연스레 서열이 밀리게 될 것이었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왕위계승서열 2위였던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Elizabeth Alexandra Mary), 후일 엘리자베스 2세 역시 아버지가 조지 6세가 되기 전까진 영국 왕위에 오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더군다나 왕위계승서열 2, 3법칙에 따라 백부 에드워드 8세가 아들을 낳기라도 하면 엘리자베스의 왕위계승 가능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8세가 왕이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돌발 행동'을 하면서 앨버트 방계 왕가의 고난이 시작됐다. 에드워드 8세가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혼을 위해서라면 왕위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던 것.

에드워드 8세가 사랑했던 여인은 바로 미국 평민 출신의 월리스 심프슨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2번이나 이혼한 경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영국 왕실과 내각은 그녀가 외국인이면서 평민인 것에 더해 이혼 경력까지 있는 '부도덕한' 여인이라며 결사 반대했으나 에드워드 8세는 '월리스 심프슨과 왕위를 유지한 채로 결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왕위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결국 에드워드 8세는 동생에게 양위하고 월리스 심프슨과의 사랑을 찾아 떠났다. 이에 그의 동생이자 왕위계승서열 1순위였던 앨버트가 조지 6세가 됐고, 그의 장녀였던 엘리자베스는 자연스레 차기 서열 1위가 되었던 것이다.

월리스 심프슨 부인과 에드워드 8세. 에드워드 8세는 영국 왕실과 내각이 심프슨 부인의 이혼 경력을 문제삼아 결혼을 반대하자 왕위를 버려서라도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월리스 심프슨 부인과 에드워드 8세. 에드워드 8세는 영국 왕실과 내각이 심프슨 부인의 이혼 경력을 문제삼아 결혼을 반대하자 왕위를 버려서라도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제대로 된 후계자 수업을 받지 못한 조지 6세였지만 영국의 왕이자 인도 제국의 황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다만 문제는 그의 재위기간 동안 대영제국이 제2차세계대전을 겪으며 점차 쇠락해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지 6세는 히틀러의 독일 제3제국의 위세와 군사적 힘이 정점에 달했을 때 이뤄졌던 런던 폭격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캐나다로 망명하지 않고 영국인들의 저항의지를 뒷받침하는 정신적 지주로 남았다.

하지만 전쟁 과정에서, 그리고 1947년 인도가 대영제국에서 떨어져 나감으로써 사실상 제국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조지 6세는 과로와 스트레스를 흡연으로 해소하려 하면서 폐암에 걸렸다. 그는 왼쪽 폐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뒤늦게 금연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1952년 2월 6일 자는 도중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와 관련해 조지 6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비는 남편이 천수를 누리지 못한 이유가 에드워드 8세와 월리스 심프슨 때문이라면서 평생 그들을 증오하기도 했다.

당시 엘리자베스 공주는 조지 6세를 대신해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공과 영연방 순방을 하는 도중 케냐에 있었다. 그녀가 묵었던 유명한 나무 위의 트리탑 호텔(Treetop Hotel)에서 사가나 롯지(Sagana Lodge)로 이동했을 때 부왕의 부음을 전해듣고 급하게 영국으로 귀국해 엘리자베스 2세가 되었던 것. 이로써 결국 엘리자베스 2세는 스스로 생각지도 못했던 영국 왕위에 오르게 됐다.

엘리자베스 2세의 뜻하지 않은 등극은 당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 경의 라디오 연설에도 반영되어 있다. 처칠 경은 1952년 2월 7일 BBC 라디오에서 한 "용기에 대해(For Valour)"란 제목의 연설을 통해 조지 6세를 기리는 동시에 엘리자베스 2세 등극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처칠은 "같은 존호의 엘리자베스 1세처럼 엘리자베스 2세는 왕위 계승으로부터 자유로운 유년기를 보내셨다"고 했다. 아울러 이 연설에서 "하느님, 여왕 폐하를 지켜주소서(God, Save the Queen)"이란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다음은 처칠 경 연설의 일부분./

"역대 여왕의 통치 시대는 항상 우리 역사에 황금기로 유명했습니다. 같은 존호의 엘리자베스 1세처럼 엘리자베스 2세는 왕위 계승으로부터 자유로운 유년기를 보내셨습니다. 이 새로운 엘리자베스의 시대는 인류가 불확실한 태세로 접어드는 대파국의 시대에 도래했습니다. 위풍당당하며 평화롭고 영광된 빅토리아 여왕 때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본인은 기도문과 국가를 읊조리며 다시 한번 그 전율을 느낍니다. 하느님, 여왕 폐하를 지켜주소서."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가 1952년 2월 7일 BBC 라디오에서 한 연설 전문을 이틀 후인 9일 더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서 실었다. 처칠 총리는 이 연설에서 조지 6세를 기리는 동시에 엘리자베스 2세 등극을 축하했다. 특히 영국이 엘리자베스 1세, 빅토리아 여왕처럼 역대 여왕 통치 시기에 항상 황금기를 맞았다며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가 1952년 2월 7일 BBC 라디오에서 한 연설 전문을 이틀 후인 9일 더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서 실었다. 처칠 총리는 이 연설에서 조지 6세를 기리는 동시에 엘리자베스 2세 등극을 축하했다. 특히 영국이 엘리자베스 1세, 빅토리아 여왕처럼 역대 여왕 통치 시기에 항상 황금기를 맞았다며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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