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5' 1화에 등장하는 선데이타임스의 도발적인 기사. 드라마에서 선데이타임스는 '여왕은 웨일스 공을 위해 퇴위해야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를 포함해 찰스 왕세자가 존 메이저 총리에게 여왕의 퇴위를 은연중에 암시하는 주장을 한 내용도 포함돼 논란이 됐다. [사진=넷플릭스]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5' 1화에 등장하는 선데이타임스의 도발적인 기사. 드라마에서 선데이타임스는 '여왕은 웨일스 공을 위해 퇴위해야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를 포함해 찰스 왕세자가 존 메이저 총리에게 여왕의 퇴위를 은연중에 암시하는 주장을 한 내용도 포함돼 논란이 됐다. [사진=넷플릭스]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The Crown) 시즌5'가 故 엘리자베스 2세 및 찰스 3세 현 영국 국왕과 관련해 논란을 빚고 있다. 찰스 3세가 왕세자이던 시절 어머니의 양위를 실제 논한 것처럼 묘사했기 때문. 이는 '픽션(fiction)'인 '더 크라운'이 역사 드라마라는 장르 특성상 시청자에겐 흡사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문제가 되는 해당 내용은 시즌5 1화에 등장한다.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1991년 8월 11일자 헤드기사로 "여왕은 웨일스 공을 위해 물러나야 한다(Queen Should Abdicate in Favour of Prince of Wales)"를 냈다고 묘사했던 것. 부제는 '절반의 영국인들이 동의한다(Half of British Public Agrees)'였다. 당시 왕가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기사였다. 

드라마에서 기사는 엘리자베스 2세가 '빅토리아 여왕 증후군(Queen Victoria Syndrome)에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 '빅토리아 여왕 증후군'은 1837년부터 1901년까지 장장 63년간 재위했던 빅토리아 여왕이 부군 앨버트 공 사후 무기력해진 것을 지칭한다.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해 실시된 여론조사 역시 이같은 함의를 담고 있다는 것. 그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는 '시대에 뒤지고(irrelevant)' '늙었으며(old)' '사치를 부리고(expensive)' '현실과 동떨어진(out of touch)' 왕이란 것이다. 어이 기사에 대한 왕가 구성원들의 반응은 제각각으로 그려진다. 찰스 왕세자는 이 기사를 보고 '만년 후계자' 신세에서 벗어나려 뒷공작을 펼치는 반면,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 필립 공은 분개하고 여왕의 비서관들은 신문을 감춘다. 뒤늦게 이 기사를 본 엘리자베스 2세는 분노·당황한다.

더 크라운 시즌5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역할을 맡은 영국 배우 이멜다 스턴톤. 그녀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엄브릿지 역을 매우 잘 소화해 팬들의 '미움' 아닌 '미움'을 받은 적도 있다. [사진=넷플릭스]
더 크라운 시즌5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역할을 맡은 영국 배우 이멜다 스턴톤. 그녀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엄브릿지 역을 매우 잘 소화해 팬들의 '미움' 아닌 '미움'을 받은 적도 있다. [사진=넷플릭스]

이 화의 압권은 찰스 왕세자가 존 메이저 당시 영국 총리와 어머니의 '퇴위'에 대해 대담을 나눈 장면이다. 그는 왕족답게 간접 화법으로 엘리자베스 2세의 문제를 지적하고, 물러나야 한단 의견을 전한다. "(여론조사를) 무시하면 위험하다" "보수당이 선거에서 성공적인 이유는 쇄신의 본능, 젊은 피를 위해 자리를 내어줄 줄 아는 것" "자유사상을 신봉하고 더 많은 책임을 원했던 내 고조부 에드워드 7세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거절당했지만, 때가 되자 의심했던 자들이 틀렸음을 입증했고 역동성과 지성, 대중적인 인기로 성공적인 군주가 됐다" "헨리 7세의 목소리와 존재와 비전이 더 일찍 빛을 보지 못한 것" "직접 판단해 보시죠. 우리 모두가 이토록 아끼는 군주제가 안전한 손에 있는지 말이죠" 등 찰스 왕세자는 젊은 자신이 하루라도 빨리 왕위에 올라야 한단 의견을 메이저 총리에게 피력한다.

이는 모두 사실일까.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박지향 명예교수는 "그 에피소드는 사실이 아닌게 확실하다"고 했다. 즉 극적인 재미를 위해 '더 크라운' 제작진에 의해 모두 연출됐다는 것이다.

우선 선데이타임스가 여왕의 퇴위·아들에게 양위해야 한다고 기사를 냈다는 묘사 자체가 사실이 아닌 것이란 지적이다. 선데이타임스는 논란을 인식하고 '더 크라운'이 명시한 1991년 8월 11일엔 여왕 여객선 광고를 내보냈을 뿐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선데이타임스는 이 광고에 "논란의 여지 없는 여왕(the undisputed Queen)"이란 문구만 적혀 있었다고도 밝혔다.

'영국인 절반이 여왕 퇴위를 찬성한다'는 기사 제목 역시 사실이 아니다. 당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절반에 채 미치지 못하는 47%가 여왕의 양위를 찬성했는데, 이는 '반드시 해야 한다'가 아니라 '어느 시점에(at some stage)' 그런 조치가 있다면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드라마는 마치 50%에 가까운 영국인들이 여왕의 퇴위가 당장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단 것이다.

이 여론조사가 이뤄진 시점도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언론이 의미 있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보도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사가 나간 1991년 8월 11일 직전에 조사가 이뤄졌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인사이더에 따르면, 해당 여론조사 결과는 1990년 1월 21일에 공표됐다. 메이어 총리가 아닌 마거렛 대처 총리가 내각을 이끌고 있을 때였다. 

'빅토리아 여왕 증후군'이란 명칭이 과연 실제 쓰였는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구글 분석가들에 의하면 '빅토리아 여왕 증후군'이란 단어는 그녀가 실제 갖고 있었던 난치병인 '혈우병' 유전자를 지칭할 때 사용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각국의 유럽 왕가들이 통혼으로 맺어지면서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 유전자가 전해졌는데, 이를 두고 '증후군'이란 단어를 사용했단 것이 정설이다. 다만 지난 2006년 발간된 "빅토리아조: 시대를 회고하다(The Victorian: An Age in Rectrospect)"란 책에서 저자 존 가딘이 1990년대 특정 궁정 구성원들이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 크라운' 제작진이 이 주장을 받아들였을 수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빅토리아 여왕. 빅토리아 여왕은 '혈우병' 유전자를 유럽 전 왕가에 퍼뜨렸단 '오명'을 안고 있다. '빅토리아 여왕 신드롬'은 주로 이 혈우병을 일컫는 말로 분석됐다.
빅토리아 여왕. 빅토리아 여왕은 '혈우병' 유전자를 유럽 전 왕가에 퍼뜨렸단 '오명'을 안고 있다. '빅토리아 여왕 신드롬'은 주로 이 혈우병을 일컫는 말로 분석됐다.

이러한 '왜곡적' 묘사에 대해 찰스 왕세자와 이야길 나눈 것으로 드라마에 그려진 메이저 전 총리는 불쾌감을 표시했다. 지난달 17일 메이저 총리측은 BBC에 "전혀 그런 논의가 없었다"며 "연로한 여왕을 몰아내려는 음모를 나눈 것처럼 묘사한 장면은 '매우 악의적인 허튼짓(a barrel-load of malicious nonsense)'"라는 의견을 밝혔다. 메이어 전 총리는 또한 "'더 크라운'측과 그 어떤 공동작업도 하지 않았다"며 "그들이 팩트 체크를 위해 접촉해온 적 또한 전혀 없다"라고 하기도 했다.

이전 시즌에선 엘리자베스 2세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그려왔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시즌5에서 여왕에 대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이러한 내러티브적 '왜곡'을 만들어낸 것이 특히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옴과 동시에 그 이유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故 다이애나 비와 관련해 엘리자베스 2세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개입됐단 추측을 내놓고 있다. 찰스 3세는 결혼하기 전 이미 반했던 커밀라 왕비와의 만남을 결혼 후에도 이어갔는데, 이것이 다이애나 비와의 결정적인 이혼 사유가 됐다. 엘리자베스 2세가 이에 대해 별다른 제지나 중재 역할을 하지 않고 묵인했단 것을 '더 크라운'이 비판하려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여왕이 '시대에 뒤지고' '늙었으며' '사치를 부리고' '현실과 동떨어지게' 된 이미지가 필요했다는 것.

또한 이미 인격이 완성된 인물에 대한 드라마를 만들어내려면 어쩔 수 없는 질적 '다운그레이드'가 필요했을 것이란 추측도 있다. 시즌1부터 시즌3까지가 엘리자베스 2세의 '성장기'였다면, 시즌4에서 묘사된 장년의 여왕은 '완성기'에 들어섰단 평가를 받았다. 노년의 엘리자베스 2세를 드라마화한다면, 본인의 사건보다 자식들과 그 배우자 혹은 영국 정계 관련 사건이 더 두각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2세가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를 막기 위해 제작진에서 일부러 논란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다소 완고해지고 보수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점을 '극적' 재미를 위해 부정적으로 묘사했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더 크라운 시즌5에선 이멜다 스턴톤이 엘리자베스 2세, 조너선 프라이스가 부군 필립 공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사진=넷플릭스]
더 크라운 시즌5에선 이멜다 스턴톤이 엘리자베스 2세, 조너선 프라이스가 부군 필립 공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사진=넷플릭스]

문제는 이러한 각색이 시청자로 하여금 역사적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단 점이다. 선데이타임스가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퇴위 주장 기사를 내보냈단 점, 찰스 왕세자가 모친에 대한 퇴위를 총리에게 은연중에 암시했단 점 등이 특히 그렇다. 넷플릭스 측에서 '더 크라운'을 "허구적으로 드라마화한 것(fictional dramatisation)"이라며 옹호했지만, 관련 당사자들이 여전히 생존하고 있다는 점과 동시대 사건을 그린단 점에서 문제가 된단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박 명예교수는 본지에 "현존 인물을 다룰 때는 조심해야 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박지향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명예교수. 지난 2017년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일 때 국회 의원회관에서 '영국 보수당은 어떻게 200년은 이어왔나'를 주제로 강연하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박지향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명예교수. 지난 2017년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일 때 국회 의원회관에서 '영국 보수당은 어떻게 200년은 이어왔나'를 주제로 강연하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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