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계 '리시 수낙' 차기 총리 유력,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물러나
보수당 내에 식민지 출신 이민자 후손들이 정치 엘리트로 속속 등장해...'대영제국의 유산'

보리스 존슨 전 총리(왼쪽)과 차기 총리로 유력한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 수낙 전 장관이 총리가 될 경우 영국의 첫 인도계 총리의 역사를 쓰게 될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전 총리(왼쪽)과 차기 총리로 유력한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 수낙 전 장관이 총리가 될 경우 영국의 첫 인도계 총리의 역사를 쓰게 될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일(현지 시간)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사임을 표명하고 난 후 영국 국내외의 눈은 차기 총리가 누가 될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보리스 존슨 내각에서 재무장관(Chancellor and Under-Treasurer of His Majesty's Secretary to the Treasury)을 지냈던 리시 수낙(Rishi Sunak)이 유력한 가운데, 존슨 전 총리가 총리직을 탈환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수낙 전 장관과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측됐지만 현재는 총리 후보자 대열에서 이탈한 상태다.

수낙 전 장관은 24일(현지 시간) 보수당 당수 선거 관련해 단독 후보로 등록했다. 일단 단독 후보가 된 만큼, 총리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평가다. 내각제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 정치 제도의 특성상 수낙 전 장관이 보수당 당수가 되면 사실상 총리가 된다. 찰스 3세를 접견해 '국왕 승인'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는 형식상의 절차인 측면이 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낙 전 장관의 승리가 이토록 쉬울 거라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존슨 전 총리가 '돌아온 탕아'로서 강력한 대항마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트러스 총리가 45일만에 조기 실각하고 난 후 존슨 전 총리가 하원 의원 358명 중 102명이 자신을 지지한다며 경쟁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면서 더욱 현실화됐다. 그가 밝힌 수치는 보수당 하원 의원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하지만 존슨 전 총리를 지지하는 보수당 하원 의원이 100명이 넘어간다는 '호언장담'은 결국 '공갈'로 드러난 셈이 됐다. 실제로는 60여명 정도만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던 것. 반면 수낙 전 장관은 150명에 달하는 의원들이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존슨 전 총리는 총리직 탈환이 '일장춘몽'임을 인정하고 물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출마가 '옳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며 물러났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은 인도계로, 영국 정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평가받는 식민지 출신 정치인이다. 파키스탄 및 인도 북부에 거주하는 펀자브계 인도인 출신인 그는 잉글랜드 사우샘프턴(Southampton)에서 태어나 명문 윈체스터 칼리지 및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 MBA를 취득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수낙 전 장관은 그 후 2015년 제56회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 강세 지역으로 간주됐던 요크셔험버의 리치먼드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2018년 1월부터 다음 해 7월까지 테레사 메이 내각의 주거·공동체·지방정부부(Ministry of Housing, Communities, and Local Government) 차관을 맡았고, 존슨 내각에선 재무부 차관 및 장관을 역임했다.

수낙 전 장관이 차근차근 정치적 경력을 쌓아온 만큼, 만약 그가 존슨 전 총리의 '파티게이트'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재무장관직 사퇴를 하지 않았다면, 트러스 총리는 없었단 평가도 나온다. 존슨 전 총리가 수낙 전 장관 대신 트러스를 총리로 민 이유가 장관직 사퇴로 인한 '정치적 압력' '인간적 배신감' 때문이란 평가가 나왔었기 때문. 이를 계기로 존슨-수낙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틀어졌다고도 해석됐다. 보기에 따라서는 존슨 전 총리가 다시 한번 총리직에 도전한 것도 수낙에 대한 '몽니'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수낙 전 장관이 만약 영국 총리가 된다면, 그에겐 위기에 빠진 영국 경제를 당장 해결해야 한단 과제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재무장관으로 재임하고 있던 동안 OECD 통계에 따르면 영국 내 기업 투자 증가율이 주요 경쟁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기록을 달성하는 등 능력은 검증됐단 평가를 받는다.

40여일 전 트러스 총리가 될 때만 해도 수낙 전 장관의 총리 도전은 당분간 가망이 없는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첫 '인도계' 영국 총리가 탄생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단 평가다. 이와 더불어 영국 정치가 과거 식민지에 뿌리를 둔 이주민 엘리트들을 성공적으로 포용하고 있단 지적도 나온다. 수낙 전 장관은 물론 가나 출신 부모를 둔 쿼지 콰텡(Kwasi Kwarteng) 전 재무장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출신의 어머니를 둔 제임스 클레벌리 외무영연방부장관, 역시 인도 출신인 수엘라 브레이버만 법무부 장관 등 내각 주요 자리를 유색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영국 보수당이 '대영제국'의 유산을 이어 받았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대영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유산은 보수당 내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리시 수낙(위쪽 가운데), 수엘라 브레이버만 법무부장관(아래 가운데), 케미 바데노크 전 평등담당부 부장관(아래 오른쪽) 등 이민자 후손들이 정치 엘리트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대영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유산은 보수당 내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리시 수낙(위쪽 가운데), 수엘라 브레이버만 법무부장관(아래 가운데), 케미 바데노크 전 평등담당부 부장관(아래 오른쪽) 등 이민자 후손들이 정치 엘리트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취임 후 45일만에 불명예 사임하게 된 리즈 트러스 총리와 쿼지 콰텡 전 재무 장관의 모습. 콰텡 전 장관 역시 엘리트 교육을 받아 성공적으로 영국 정치에 들어섰단 평가가 나왔었다. [사진=연합뉴스]
취임 후 45일만에 불명예 사임하게 된 리즈 트러스 총리와 쿼지 콰텡 전 재무 장관의 모습. 콰텡 전 장관 역시 엘리트 교육을 받아 성공적으로 영국 정치에 들어섰단 평가가 나왔었다. [사진=연합뉴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관련기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