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가 1961년 가나를 방문해 콰메 은크루마 초대 가나 대통령과 춤을 추는 모습. 당시 가나는 영국 대신 소련을 중시하는 외교 정책을 추진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가 가나를 방문함으로써 상황은 역전됐다. [사진=BBC]
엘리자베스 2세가 1961년 가나를 방문해 콰메 은크루마 초대 가나 대통령과 춤을 추는 모습. 당시 가나는 영국 대신 소련을 중시하는 외교 정책을 추진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가 가나를 방문함으로써 상황은 역전됐다. [사진=BBC]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에 아프리카 국가들도 추모한단 반응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는 엘리자베스 2세가 아프리카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노력한 결과란 평가다.

엘리자베스 2세는 아프리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판단된다. 그녀는 1947년 21번째 생일을 남아프리카 여행 중 맞이했다. 케이프타운에서의 유명한 연설에서 엘리자베스 공주는 "영연방에 헌신하고 있음을 밝혔으며 마치 전 생애를 남아프리카에서 보낸 것처럼 남아프리카를 집으로 느낀다"고 했다.

또한 그녀가 부왕 조지 6세의 부고를 접한 곳은 영연방 순방의 첫 방문국이었던 케냐에서였다. 그녀가 묵었던 케냐의 트리탑 호텔(Treetop Hotel)은 유명 관광 명소가 됐다. 

엘리자베스 2세가 1983년 케냐의 트리탑 호텔을 재방문한 모습. [사진=BBC]
엘리자베스 2세가 1983년 케냐의 트리탑 호텔을 재방문한 모습. [사진=BBC]

또한 엘리자베스 2세 재위기간 동안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14개국이 1957년 가나를 필두로 해서 모두 독립했다. 인도와 더불어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은 영국에겐 대영제국의 뼈아픈 해체를 의미했지만, 그럼에도 엘리자베스 2세는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 유지에 만전을 기했단 평가다. 영연방(the British Commonwealth) 유지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 아울러 엘리자베스 2세는 아프리카 20여개 국을 순방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영국의 대(對)아프리카 정책에 관여한 듯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가나의 독립을 이끌었고 초대 가나 대통령이 되었던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가 소련과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이자 엘리자베스 2세는 1961년 가나로 달려가 은크루마 대통령과 춤을 췄다. 이로 인해 은크루마 대통령은 영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게 됐으며, 가나의 반(反)영국 분위기는 잦아들었다. 영국 외무부도 하지 못한 일을 엘리자베스 2세가 해낸 셈이다.  

여왕의 노력에 대한 보답일까. 아프리카 각국은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를 추모하는 모양새다.

엘리자베스 2세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을 쌓은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자베스 2세는 만델라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됐던 199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했다. 이 때 남아공의 발전을 축하하면서 "여러분들은 세계에 빛나는 예가 되는 화해의 정신을 보여준 국가를 만들었다"며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성취를 직접 보기 위해 돌아왔다"고 밝힌 바 있다. 

넬슨 만델라 재단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줬던 여왕의 서거에 애도를 표하면서 "통화에서 상호간 존중과 애정의 표시로 자주 이름으로 서로를 불렀다"고 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농담조로 만델라 전 대통령에게 웃으며 "그 누구보다도" 아프리카에 더 애착을 느낀다고 발언해 좌중으로부터 열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여왕에게 '비와 함께 온다'는 뜻의 '모트랄레풀라(Motlalepula)'란 별명을 붙여줬다. 실제로 1995년 여왕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했을 때는 우기였기 때문.

엘리자베스 2세가 199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해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만난 모습. [사진=BBC]
엘리자베스 2세가 199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해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만난 모습. [사진=BBC]

짐바브웨는 오랫동안 영국과 냉담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로 인해 로버트 무가베(Robert Mugabe) 전 짐바브웨 대통령은 영연방을 탈퇴했다. 하지만 그의 후임자인 에머슨 음낭가과(Emmerson Mnangagwa) 대통령은 "영국 왕가, 영국 국민들, 영연방에 '가장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영국의 가장 큰 식민지였던 나이지리아 역시 애도한단 반응을 내놨다. 모하마두 부하리(Muhammadu Buhari)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여왕의 서거를 알게 되자 큰 슬픔에 빠졌다"며 "현대 나이지리아의 이야기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시기를 빼고는 논할 수 없다, 여왕은 뛰어난 세계적인 인품을 가진 분이었으며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했다. 또한 "여왕은 영국과 영연방과 전세계를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쳤다"고도 했다. 아울러 부하리 대통령은 찰스 3세의 즉위를 환영하기도 했다.

영연방에 마지막으로 가입한 가봉의 알리 봉고 대통령도 트윗을 통해 위로를 전한단 반응을 내놨다. 가봉은 프랑스의 식민지였지만 지난 6월 영연방에 가입한 바 있다.

아프리카 군주 일각에서도 애도의 반응을 내놨다.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미수줄루 카즈웰리티니(Misuzulu KaZwelithini) 왕을 대신해 만고수투 부텔레지(Mangosuthu Buthelezi) 왕자가 찰스 3세와의 '소중한 우정'을 강조하면서 개인적으로 위로를 전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미수줄루 왕도 2021년 50년동안 왕좌에 있었던 아버지의 사망을 겪었기 때문에 찰스 3세가 겪고 있는 일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고도 했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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