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35回. "人民民主 人格殺害: 國家主席의 最後" 1. 몰아치는 문혁의 광풍 1966년 5월부터 1976년 9월, 10년간의 세월 동안 중국 전역에는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쳤다. 문혁을 직접 겪었던 중국의 중·노년층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당시 중국에선 전국 어디에서나 크고 작은 대중집회가 열렸다. 동료에 대한 직접적 비판과 자아비판을 강요받던 비판회(批判會), 공공기관과 작업장에서 주자파(走資派), 수정주의자 등을 색출해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고 집단린치를 가하는 투쟁회(鬪爭會), 모택동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34回. “黑苗와 白描의 辨證法” 1. 혁명이냐, 생존이냐? 대약진운동의 처참한 실패 이후 중공지도부는 두 패로 갈렸다. 모택동이 주자파(走資派, 자본주의의 길을 가는 세력)라 비판했던 개혁세력은 대기근의 참사를 수습하고 파탄지경에 이른 경제를 회복하려는 실용주의자들이었다. 반면 모택동이 이끄는 강경세력은 자력갱생의 구호 아래 핵무장을 추진하는 한편 계급혁명의 깃발을 내걸고 이념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1961-1965년 사이 유소기와 등소평에 의한 경제개혁이 한참 진행될 때, 실제로 이 두 세력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33 回. “領導者의 어쭙잖은 辯明” 1. “사진 한 장 없다!” 스탈린의 대숙청(1936-38)이 시작되기 3-4년 전이었다. 우크라이나와 남러시아에선 7백만에서 1천만에 달하는 농민들이 아사(餓死)했다. 소련공산당의 강제이주와 과도한 집산화 정책이 빚은 참상이었다. 홀로도모르(holodomor)라 명명된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참상은 그러나 소련연방이 해체되기 1년 전인 1990년에야 세상에야 알려졌다. 그때서야 우크라이나 기근의 참상을 고발하는 350장의 생생한 현장의 이미지들이 사진첩으로 묶여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8回. “責任지라, 빅브라더” 1. 꿈꾸는 빅브라더 빅브라더는 60대 중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역사의 비약을 확신했다. 15년 안에 영국과 미국을 추월하자 부르짖었다. 사회주의를 넘어 지상(地上)의 공산유토피아를 만들자 호소했다. 부강하고 정의로운, 풍요롭고 평등한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자며 지친 인민들을 다독였다. “수정주의자” 흐루쇼프의 소련을 대신해서 이제 중국이 사회주의 종주국으로 우뚝 솟아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좋게, 더 아끼자”며 그는 온 사회를 흔들고 쑤시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31回. “체어맨의 外交術”1. 외교는 싸움이다.2017년 12월 13-17일 방중(訪中)한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 열 끼니 중에서 여덟 끼니를 중국 측 고관들과 마주 앉지 못한 채 이른바 “혼밥”을 먹어야만 했다. 한국 매체에선 거센 홀대논란이 일었다. 문대통령은 이른 아침 서민 식당을 깜짝 방문해 밀가루 튀김 유조(油條, youtiao)를 먹는 외교쇼를 연출했건만 홀대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기대했던 중공 서열 2위 이극강(李克强, Li Keqiang, 1955- )과의 오찬 식사도 무산됐기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30회. “차르(Czar)의 유토피아” 1. 대약진의 신기루 대약진운동의 깃발이 중국 전역에 나부낄 때, 인민의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었다. 유토피아란 차르(Czar)의 의식을 점령한 신기루일 뿐이었다. 모두가 차르의 신기루를 바라보며 유토피아의 꿈을 강요받던 시절이었다. 중공중앙의 고위급 관료부터 산간벽지의 농민들까지 모두가 한 입으로 거짓말을 해야 했다. 모두가 스스로 내뱉은 거짓부렁에 속아야만 했다. 불가능을 꿈꾸며 굶어죽던 시간이었다. 기만과 허위의 계절이었다. 농촌의 현실에 입각해 생산
인류사최대의 기근 (3): "언론이 인민을 굶겨죽이다!"[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9. “人類史 最大의 饑饉”(3) "言論이 人民을 굶겨죽이다!" 1. 노병의 직언, 정치적 자살 1959년 7월 2일부터 강서성 여산에서 개최된 중공중앙의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팽덕회는 서북소조(西北小租)에 배속되었다. 대약진 당시 중국 서북지역의 상황을 점검하는 토론분과였다. 토론 과정에서 팽덕회는 당시 중국전역에서 발생하는“좌의 오류”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대약진운동 과정에서 정부조직에 만연해 있던 모럴해저드를 뼈아프
인류사최대의 기근 (2): "정치가 인민을 굶겨죽이다!"[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8回. “人類史 最大의 饑饉”(2) 대약진은 대기근으로 귀결되었다. 1958년-1962년 중국 전역에서 3천6백만에서 4천5백만 명이 아사(餓死)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야만 했을까?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의 와중에 대체 중공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했던가?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Amartia Sen, 1933)은 “언론의 자유가 있는 민주국가에서 대규모 기근이 발생한 사례는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7회. “人類史 最大의 饑饉” 1.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지금껏 “문혁춘추”에선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정 및 1950년대 사회주의 건설과정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대약진운동(1958-1962)에서 문화대혁명(1966-1976)까지 18년간 중국 전역을 휩쓸었던 혁명의 노도(怒濤)와 광풍(狂風)을 돌아본다. 그 시기 중국의 역사는 무지와 망상, 광기와 폭력, 배신과 반역의 연속이었다. 과연 왜 중국인들은 그토록 참혹한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을까? 대약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5회. “江물과 人間의 鬪爭” 1. 회하유역의 슬픈 역사 1975년 8월 태풍이 하남(河南, Henan)성 주마점(駐馬店, Zhumadian)시를 강타했다. 광풍이 몰아치면서 하늘 뚫린 듯 단 사흘 만에 530밀리미터의 폭우가 쏟아졌다. 높이 116.34미터의 판교댐은 저수지를 가득 채운 5,083입방미터의 물을 막고 있었다. 한계치를 훨씬 웃도는 양이었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판교댐의 수문은 1천에 한 번 일어날 확률의 큰 홍수를 대비해 설계되었지만, 판교댐은 급속한 방류 과정에서 무력하게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3回. "참새大虐殺 寸劇" 한국어에서 몽상은 주로 '헛된 생각'을 뜻하지만, 현대중국어에서 “몽상(夢想)”은 긍정적 의미로 쓰인다. 일례로 2017년 10월 제8차 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공산당 총서기 습근평(習近平,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부흥이야말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몽상"이라 말한 바 있다. 중국어에선 미래적 희망과 이상을 뜻하는 "몽상"이라는 멋진 단어가 왜 한국어에선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되었을까?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의 실현을 지향하지만, 자본주의는 현실의 한계를 수용하기 때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0回. “中央書記處의 秘密” 1. “먼저 쓰라고 해놓고선······.” 중국의 백화제방운동(1957)과 반우파(反右派)운동(1957-1958)을 생각하면 뇌리에 겹쳐지는 학창 시절의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1985년 서울 서북지역 한 중학교 교실에서 일어났던 일. 30대 중반의 한 미술교사가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빈 종이에 이 선생님에 대한 불만과 건의사항을 자유롭게 써라!” 뜻밖의 요구에 어리둥절해진 학생들을 향해 교사가 거듭 말했다. “뭐라고 써도 좋으니 깨알같이 너희들의 생각을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9회. “빅브라더의 精神世界” 20세기 세계사에서 인간평등을 모토로 삼은 대부분의 공산주의 정권들은 일인독재와 인격숭배의 디스토피아(dystopia)로 귀결되고 말았다. 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수백, 수천만, 혹은 10억 이상의 인간집단이 단 한 명의 영도자를 그토록 흠모하고, 추종하고, 숭배하게 되는 걸까? 영웅적 카리스마 때문일까? 매스미디아의 선전선동 때문일까? 계급투쟁, 인민해방, 민족주의 등등의 이념들 때문일까? 세뇌교육 때문일까? 감시와 처벌 때문일까? 억압과 통제 때문일까? 대체 그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8회. “百花齊放, 右派사냥” 1. 못 다 핀 꽃송이들 1957년 4월 말부터 6월초까지 중국 전역에서 들불처럼 이른바 “백화제방(百花齊放)운동”이 일어났다. 백화제방이란,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모두 활짝 피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경쟁하던 춘추전국시대(기원전 8세기-3세기)의 “백가쟁명(百家爭鳴)”과 짝을 이루는 성어(成語)이다. 1956년 소련의 흐루쇼프(1894-1971)가 탈(脫)스탈린 운동을 전개한다. 이어서 폴란드와 헝가리에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소련군은 탱크를 몰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6回. “文字獄: 그물 치고 떡밥 뿌리고” (2) 1. "文化侵略”이란? 몇 년 전 상해의 한 국제학회에서 목격한 한 장면. 네덜란드 외교관 출신 패널리스트가 중국의 인권문제에 관해 언급하자 방청객 한 명이 매섭게 질문했다. “서방 시각으로 중국인의 인권을 거론한다면, 그 자체가 문화침략이 아닙니까?” 송곳처럼 날선 질문에 패널리스트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인권이란 모든 인간에 적용되는 보편적 개념입니다.” 방청객은 따져 물었다. “각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고 인민의 체험이 다른데, 일방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3回. "毛澤東神話批判" 1. “신성(神聖) 모택동” 오늘날 중국은 모택동의 나라다. 자금성(紫禁城) 천안문 앞엔 1949년 10월 이래 줄곧 모택동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옛날 중화문(中華門)이 있던 천안문 광장의 중앙에는 모택동의 시신이 안치된 거대한 모택동기념관(毛澤東紀念館)이 들어서 있다. 중국 전역의 어느 대학을 가도 캠퍼스 중앙에는 그의 동상이 우뚝 세워져 있다. 전국의 소학교 모든 교실에도 그가 직접 쓴 “好好學習, 天天向上!”(잘 배우고 익혀서 날마다 쭉쭉 자라자!)”라는 문구의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1回. “빼앗긴 民國의 꿈, 改憲에 부쳐" 1. 사회주의 군주제? 철학의 빈곤 지난 3월 11일 중국에선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2980명 중 2964명이 표결에 참여했다. 그 중 찬성 2958명, 반대 2표, 기권 3표, 무효 1표의 거의 만장일치(99.8프로) 찬성으로 개헌안이 통과되었다. 모두 21개의 수정 조항 중 11개는 반부패 운동을 주도할 국가감찰위원회를 정부 내 막강한 독립조직으로 정립하는 절차이다. 나머지 10개 조항은 습근평(習近平, 시진핑) 개인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규정
[文革春秋: 현대중국의 슬픈역사] 4회. “1948년 장춘 홀로코스트”(II) 1. 혁명의 성전(聖戰), 최후의 전술 1948년 5월 23일에서 10월 19일까지 5개월 간 지속된 장춘포위전에서 스러져간 난민은 최소 12만에서 최대 60만까지 헤아린다. 현재 대만과 홍콩에서 주목 받고 있는 대륙의 비판적 지식인 두빈(杜斌, 1972- )의 (2017년 작)에 따르면 1948년 그 현장에서 37만이 아사했다. 희생자의 정확한 숫자는 영원히 못 밝힐지 모르지만, 최근까지도 장춘의 공사현장에선 대량의 유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