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코로나19 감염 상황이 심상치 않다. 현 추세대로라면 가까운 시일 내에 일일 확진자 100만명, 하루 사망자는 5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당국은 '악마'라는 과격한 단어로 지칭하며 근절의 대상으로 보던 코로나19를 '가벼운 감기(common cold)'로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상 급격한 '위드코로나'로의 전환이란 평가다. 다른 국가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중국의 급작스런 정책 전환은 사실 혹은 현상이 급변하는 중국 정치에 종속돼 버리는 경향을 여실히 보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34回. “黑苗와 白描의 辨證法” 1. 혁명이냐, 생존이냐? 대약진운동의 처참한 실패 이후 중공지도부는 두 패로 갈렸다. 모택동이 주자파(走資派, 자본주의의 길을 가는 세력)라 비판했던 개혁세력은 대기근의 참사를 수습하고 파탄지경에 이른 경제를 회복하려는 실용주의자들이었다. 반면 모택동이 이끄는 강경세력은 자력갱생의 구호 아래 핵무장을 추진하는 한편 계급혁명의 깃발을 내걸고 이념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1961-1965년 사이 유소기와 등소평에 의한 경제개혁이 한참 진행될 때, 실제로 이 두 세력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30회. “차르(Czar)의 유토피아” 1. 대약진의 신기루 대약진운동의 깃발이 중국 전역에 나부낄 때, 인민의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었다. 유토피아란 차르(Czar)의 의식을 점령한 신기루일 뿐이었다. 모두가 차르의 신기루를 바라보며 유토피아의 꿈을 강요받던 시절이었다. 중공중앙의 고위급 관료부터 산간벽지의 농민들까지 모두가 한 입으로 거짓말을 해야 했다. 모두가 스스로 내뱉은 거짓부렁에 속아야만 했다. 불가능을 꿈꾸며 굶어죽던 시간이었다. 기만과 허위의 계절이었다. 농촌의 현실에 입각해 생산
인류사최대의 기근 (3): "언론이 인민을 굶겨죽이다!"[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9. “人類史 最大의 饑饉”(3) "言論이 人民을 굶겨죽이다!" 1. 노병의 직언, 정치적 자살 1959년 7월 2일부터 강서성 여산에서 개최된 중공중앙의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팽덕회는 서북소조(西北小租)에 배속되었다. 대약진 당시 중국 서북지역의 상황을 점검하는 토론분과였다. 토론 과정에서 팽덕회는 당시 중국전역에서 발생하는“좌의 오류”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대약진운동 과정에서 정부조직에 만연해 있던 모럴해저드를 뼈아프
인류사최대의 기근 (2): "정치가 인민을 굶겨죽이다!"[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8回. “人類史 最大의 饑饉”(2) 대약진은 대기근으로 귀결되었다. 1958년-1962년 중국 전역에서 3천6백만에서 4천5백만 명이 아사(餓死)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야만 했을까?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의 와중에 대체 중공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했던가?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Amartia Sen, 1933)은 “언론의 자유가 있는 민주국가에서 대규모 기근이 발생한 사례는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7회. “人類史 最大의 饑饉” 1.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지금껏 “문혁춘추”에선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정 및 1950년대 사회주의 건설과정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대약진운동(1958-1962)에서 문화대혁명(1966-1976)까지 18년간 중국 전역을 휩쓸었던 혁명의 노도(怒濤)와 광풍(狂風)을 돌아본다. 그 시기 중국의 역사는 무지와 망상, 광기와 폭력, 배신과 반역의 연속이었다. 과연 왜 중국인들은 그토록 참혹한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을까? 대약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5회. “江물과 人間의 鬪爭” 1. 회하유역의 슬픈 역사 1975년 8월 태풍이 하남(河南, Henan)성 주마점(駐馬店, Zhumadian)시를 강타했다. 광풍이 몰아치면서 하늘 뚫린 듯 단 사흘 만에 530밀리미터의 폭우가 쏟아졌다. 높이 116.34미터의 판교댐은 저수지를 가득 채운 5,083입방미터의 물을 막고 있었다. 한계치를 훨씬 웃도는 양이었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판교댐의 수문은 1천에 한 번 일어날 확률의 큰 홍수를 대비해 설계되었지만, 판교댐은 급속한 방류 과정에서 무력하게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4回. “붉은 鬪士냐, 專門家냐?” 1. 붉은 투사의 무능 유가경전 에는 상고시대 성왕(聖王)들의 권력승계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다. 문명(文明)을 개창한 요(堯)는 퇴위를 앞두고 덕망이 높아 널리 존경 받는 순(舜)을 후계자로 선택한다. 50년 포용의 덕치(德治)를 실현한 순은 수리(水利) 사업의 영웅 우(禹)에게 후계자로 왕좌를 물려준다. 훗날 덕성이 남달랐던 순은 도덕군주의 심벌이 되었고, 기술관료 출신 우는 전문적인 국가경영의 아이콘이 되었다. 모름지기 한 국가의 지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3回. "참새大虐殺 寸劇" 한국어에서 몽상은 주로 '헛된 생각'을 뜻하지만, 현대중국어에서 “몽상(夢想)”은 긍정적 의미로 쓰인다. 일례로 2017년 10월 제8차 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공산당 총서기 습근평(習近平,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부흥이야말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몽상"이라 말한 바 있다. 중국어에선 미래적 희망과 이상을 뜻하는 "몽상"이라는 멋진 단어가 왜 한국어에선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되었을까?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의 실현을 지향하지만, 자본주의는 현실의 한계를 수용하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