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제20대 대통령 취임식. 2022. 5. 9.(사진=연합뉴스TV)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취임식. 2022. 5. 9.(사진=연합뉴스TV)

민주주의와 정치불신, 일반적인가? 예외적인가?

민주주의의 출발점은 국민주권(國民主權)이지만, 민주주의의 현실은 대의제(代議制)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국민이 뽑은 정치지도자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사무를 담당하는 것이 20세기뿐만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핵심은 주권자와 대표자의 합리적 관계 설정에 있으며, 국민의 신뢰 속에서 대표자들이 국민을 위해 국정운영을 잘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성공조건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민들이 선출된 정치지도자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21세기 서구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이러한 불신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를 비롯하여 미국에서 트럼프 후보의 대통령 당선, 프랑스에서 마크롱 후보의 대통령 당선, 그리고 독일에서 급진정당들의 약진은 전통적인 대의제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크게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국민들의 정치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주화 이전은 논외로 하더라도,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는 정치불신이 그나마 덜한 편이었지만, 노무현 정부 이후로 국민들의 정치불신은 지속적으로 심해졌다. 민주화 이후의 수많은 정치개혁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기대치가 더욱 빠르게 상승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극단적인 진영 갈등 속에서 정치권 스스로가 정치불신을 조장하고 있는 탓이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치불신은 민주주의의 본질에 반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민주주의는 –삼권분립 원칙이 시사하듯이- 권력에 대한 불신을 전제하고 있다. 모든 권력은 부패로의 경향을 가지고 있으며,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에드워드 액튼의 말은 인류 역사의 경험을 담고 있는 것이다.

다만, 민주주의의 모든 것을 선출된 대표자에 대한 신뢰로만 설명할 수 없듯이, 그 반대로 불신으로만 민주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합리적인 발전은 주권자인 국민들이 정치지도자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모든 것을 맡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치지도자를 전적으로 불신하고 모든 것을 국민들이 직접 해결하려는 것도 아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국민들이 정치지도자들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신뢰보다 통제가 필요한지, 나아가 그 신뢰가 무너짐으로 인해 탄핵이나 의회해산, 내각불신임 등 특단의 대안이 필요하게 되는 때는 언제인지에 있다고 할 것이다.

'총선 앞' 정기국회 첫날부터 신경전…국회 회의장 모습. 2023. 9. 1.(사진=연합뉴스TV,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총선 앞' 정기국회 첫날부터 신경전…국회 회의장 모습. 2023. 9. 1.(사진=연합뉴스TV,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국민의 정치지도자에 대한 불신과 그 심각성

정치불신의 핵심은 정치지도자에 대한 불신이다. 물론 대통령이나 여야 정당의 수뇌부뿐만 아니라, 국민의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치지도자이며, 이들에 대한 불신은 곧 정치불신으로 이어진다.

민주화 이후 지난 36년을 돌이켜 볼 때, 정치불신이 없었던 시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김영삼 정부 초기의 개혁정책들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던 시기에, 그리고 김대중 정부 초기에 IMF 외환위기의 및 영호남 갈등의 극복을 위해 노력할 때, 정치불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이후로 진영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정치불신은 점점 더 심화되었다. 그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진영갈등의 극단화를 들 수 있다. 진영갈등의 본질은 보수와 진보의 성향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진영 갈등은 영호남 지역갈등과 다시금 겹치면서 국가 발전의 방향성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적대시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서로를 용인하지 못하고 보수궤멸 등의 극단적 주장이 나오면서 정치불신도 극단화된 것이다.

둘째, 승자독식의 정치구조를 들 수 있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모든 것을 갖는 정치구조가 극단적인 경쟁, 뒤가 없는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으며, 선의의 경쟁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미국처럼 이에 대한 완충장치(연방대법원의 중재자 역할, 연방제로 인한 분권형 구조, 여당도 때로는 대통령을 견제하는 성숙된 정치문화 등)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셋째, 이와 맞물려 있는 제왕적 대통령의 헌법구조도 문제이다. 비록 유신헌법이나 제5공화국헌법에 비해 대통령이 권한이 크게 약화된 것은 맞지만, 현재의 대통령 권한도 삼권의 하나라고 말하기에는 과도한 것이다.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하고, 사법부 수장 등에 대한 임명권을 통해 사법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자체가 제왕적 대통령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30여 년 동안 계속 커지고 있는 정치불신은 이제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까지 위태롭게 할 정도에 이르렀다. 과거 자유한국당 시절의 태극기부대, 요즘 민주당의 개딸들을 비롯한 강성지지층. 이들이 실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국민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은 불신과 대립이라는 전제 때문이다.

만일 국민들 대부분이 진영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쟁점이 되는 사안에 따라서 각기 목소리를 낸다면 그런 가운데 1%는 매우 작은 숫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극단적인 진영 갈등으로 인하여 사안에 따른 합리적 판단보다도 어느 진영에서 나온 목소리냐가 중요하고, 상대 진영과의 차별화가 중요할수록 강성지지층의 강경한 목소리에 더 큰 힘이 실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결코 민주주의의 본질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이 장기화될수록 오히려 전체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 모습.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 의미하는 바는, 국민주권 원리에 의하여 구성되어 국회의 모습으로 나타난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집행부 수반이기도 한 대통령이 입법부 기능을 하고 있는 국회에 집행부 예산안에 대한 동의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3.10.30(사진=연합뉴스TV,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 모습.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 의미하는 바는, 국민주권 원리에 의하여 구성되어 국회의 모습으로 나타난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집행부 수반이기도 한 대통령이 입법부 기능을 하고 있는 국회에 집행부 예산안에 대한 동의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3.10.30(사진=연합뉴스TV,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민주주의는 신뢰와 불신의 균형을 요구한다!

민주제의 출발은 군주제와의 대립⋅투쟁이었다. 특히 근대 시민혁명은 절대군주제의 경험에서 비롯된 국가권력에 대한 강한 불신을 바탕으로 전개되었으며, 결국 구체제를 몰락시키고 국민주권을 관철시켰다. 이후 새로운 민주국가들이 탄생했지만, 군주국가에서와는 달리 국가권력에 대해 고삐를 채우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민주국가가 독재화된 대표적 사례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몰락하면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한 것을 든다. 물론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가 매우 취약한 상태였고,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에 따른 막대한 전쟁배상금과 1930년대 세계적 대공황의 영향 등이 크게 작용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민주적 선거에 의해 집권한 세력이 독재화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더욱이 나치의 만행에 대해서는 인류사적 비극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며, 그로 인한 독일인의 피해, 주변국가들의 피해는 이루 형용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의 민주국가들에서 정치지도자에 대한 불신의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꼈고, 자유민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존중, 이를 공격하려는 정치세력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제도의 도입 등을 도입하였다. 이는 제2공화국 이후 대한민국 헌법에도 수용되었다.

그 결과 현대 민주주의는 신뢰와 불신의 균형 속에서 작동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헌법적 가치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요구받으며, 이를 벗어날 경우에는 탄핵이나 위헌정당해산 등 각종 통제가 가해질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삼권분립의 구조 속에서 어느 한쪽의 권력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거나 오남용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신뢰와 불신의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은 정치지도자들이 국정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간의 견제와 균형을 부여함으로써 불신의 원칙에 따른 통제에도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 삼권분립이 매우 약화되었다. 이는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정당국가화, 행정국가화에 의해 입법부나 사법부에 비해 집행부의 조직과 인력, 권한, 예산 등이 압도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삼권분립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그동안 많은 노력들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정답은 없다. 다만 다양한 형태의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삼권의 양적 균형이 유지되기 어려운 대신에 집행부에 대한 국회 및 사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삼권 간 통제의 균형을 위해 노력하고, 그밖에 국회의 양원제, 정부의 분권형 정부제, 사법부의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이원화 등이 대안으로 시도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의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및 정치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2021.06.29(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TV, 국민의힘, 편집=조주형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의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및 정치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2021.06.29(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TV, 국민의힘, 편집=조주형 기자)

대한민국 정치불신의 해법은?

과연 대한민국의 정치불신은 삼권분립의 활성화를 통해 치유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확실하게 답할 수는 없는 문제지만, 적어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불신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승자독식의 문제,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를 꼽았는데, 삼권분립의 강화를 통해 이런 요소들이 통제 내지 해결될 수 있다면 정치불신의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승자독식 및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이 필요할 것이다.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기 위한 헌법개정의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앞서 제시된 대안들처럼, 양원제를 도입하여 지역대표형 상원을 설치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고, 분권형 정부를 통해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권력을 나누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이원화는 이미 현행헌법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예컨대 행정법원이나 노동법원을 각기 1심과 2심, 3심으로 만들어 법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법도 시도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헌법개정을 위해서는 한편으로 국민의 이해와 공감이 전제되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권의 합의가 필수적이다. 여야의 합의 없이는 헌법개정에 필요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헌법개정에 의한 해결을 중장기적인 대책이라고 본다면, 헌법개정 없이 법률의 개정이나 여야 합의에 의한 정치적 관행의 변화를 통해 가능한 대안을 단기적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여야 합의에 의한 책임총리제 도입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국회에서 추천하는 인물을 대통령이 총리로 임명하고, 총리의 권한과 역할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언제라도 대통령이 총리를 해임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다는 점에서, 여야 합의가 얼마나 탄탄한 기초를 갖고 있으며, 이를 깨뜨리지 않도록 할 유인이 강력한지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정치불신은 사람이 문제의 원인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컸다. 그러나 모든 원인을 사람에서 찾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지난 30여 년의 모든 정치지도자가 정치불신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제도의 문제를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제도만이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제도와 사람의 문제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제도의 문제와 사람의 문제를 함께 개선할 때, 대한민국의 정치불신도 점차 개선된 모습을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사진편집=조주형 기자)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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