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 여야 입법 전쟁 (PG).(사진=연합뉴스)
정기국회 여야 입법 전쟁 (PG).(사진=연합뉴스)

서: 민주화 이후 가장 극심한 남남갈등, 왜 그런가?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의 정치적 갈등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3년 동안의 미군정 시기에도, 그리고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도 정치세력 간의 갈등이 매우 날카로웠고, 특히 좌우의 대립은 제주 4⋅3과 여순 사건 등 무력 충돌로까지 이어졌다.

이후 3⋅15 부정선거와 4⋅1혁명, 5⋅16 쿠데타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현대사는 극심한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었고, 독재정권에 대한 민주화 투쟁 역시도 그러했다. 이러한 갈등과 대립의 역사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능케 했던 것이 1987년 민주화였다. 비록 노태우 정부의 과도기가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 과거의 대립과 갈등은 크게 완화되었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던 망국적인 영호남 지역갈등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김영삼과 김대중, 두 거인이 민주화 동지로서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영호남 갈등이 크게 완화되었고, 김영삼 정부에 이어서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여야 간의 갈등과 대립을 선의의 경쟁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23년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은 IMF 외환위기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던 당시보다도 더욱 심각한 갈등을 보인다. 여소야대의 정국 속에서도 협치는 찾아볼 수 없고, 여야의 적대적 태도와 선을 넘는 발언들은 여야의 지지세력들을 중심으로 국민 전체의 분열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외견상 정부⋅여당은 대장동, 대북송금 등 수많은 불법의 배후로 지목되어 수사받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는 대화조차 할 수 없다는 태도가 가장 크게 문제되고 있으며, 야당은 국회 과반의석에 취해서 아직도 정권을 쥔 여당인 듯이 오만하게 행동하는 것이 협치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뿌리는 매우 깊다. 짧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싼 갈등에서부터 극단적 대립이 본격화되었지만, 멀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로 생겨난 여야 간의 불신의 벽이 시간이 가면서 더욱 견고해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진영 간의 갈등과 지역갈등이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영호남 지역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예들이 적지 않았는데, 최근 다시금 보수는 영남, 진보는 호남이라는 식으로 여야의 지역기반과 진영논리를 결합시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보수이고 진보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보수와 진보는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세우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 더욱이 그러한 보수와 진보가 왜 지역과 연결되는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결과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의 남남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민노총 및 이석기 구명위 관계자 500여명이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이석기 석방 주장' 집회를 하고 있다. 2021.12.04.(사진=이석기 구명위, 편집=펜앤드마이크)
민노총 및 이석기 구명위 관계자 500여명이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이석기 석방 주장' 집회를 하고 있다. 2021.12.04.(사진=이석기 구명위, 편집=펜앤드마이크)

민주국가의 다양성과 갈등,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하나?

민주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며, 그 당연한 결과로 다양한 의견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관용하는 가운데 경쟁하고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체주의 국가가 일사불란한 군대식의 국가 운영을 지향하는 반면에, 민주국가는 다양성 속에서 최선의 합리적 대안을 찾는 국가 시스템을 바람직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허용되는 다양성에도 한계가 있다. 예컨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주장이나 세력에 대해서까지 민주적 관용이 인정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독일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반성에 비롯된 것이며, 이후 전 세계 민주국가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인해 독일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바이마르 공화국이 구성되었다. 그러나 확고한 역량을 갖춘 민주세력이 주류를 형성했던 것은 아니었고, 비스마르크 제국에 대한 향수를 가진 정치인이나 국민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경제가 붕괴한 상황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했던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주목할 점은 당시 나치당의 정강 등에 비추어 볼 때, 이들이 집권할 경우에는 민주주의가 파괴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상 다수 국민의 지지에 의해 집권한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즉, 당시 독일의 정치학자, 헌법학자 등의 미숙한 민주주의 이해가 히틀러 집권을 도와주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동⋅서독으로 분단되었고, 서방 진영의 영향 하에 서독 정부가 구성되면서 나치의 경험에 대한 반성으로 1949년 기본법 제정 당시에 도입된 것이 민주주의를 다수의 지배로만 보지 않고, 다수결에 의해서도 깨뜨릴 수 없는 근본가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이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freiheitlich-demokratische Grundordnung)이라고 표현하였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모든 정치세력, 모든 국민이 어떤 경우에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근본가치, 국가질서 형성의 공통분모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인류의 보편가치로 널리 인정되는 인권을 비롯하여, 인권보장의 필수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핵심요소들이다. 즉, 인류 역사를 통해 검증된 근본가치는 다수결로도 깨뜨릴 수 없다고 인정된 것이다.

이후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민주국가에서 다양하게 제기되는 여러 의견들, 정치적 주장들에 대해 한계를 긋는 기준으로 인정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를 부정하는 정당을 해산시킬 수 있도록 하는 위헌정당해산제도이며, 이 제도는 우리 헌법 제8조 제4항에서도 규정하고 있다.

물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최후의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지나치게 확장할 경우에는 오히려 전체주의 국가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또한 나치당의 예에 비추어 위헌정당의 해산에는 적극적이지만, 국민 개개인의 정치적 주장 등에 대해서는 –그 위험성이 훨씬 작기 때문에- 위헌정당해산제도와 같은 강력한 대응은 찾기 어렵다. 독일에서도 개인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거나 공격하는 등의 발언을 규제하는 ‘기본권실효’(Grundrechtsverwirkung) 제도를 두었으나, 실제 적용된 사례는 없다.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에 대하여 정당해산을 선고했다. 2014.12.19. (사진=YTN TV 화면, 캡처)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에 대하여 정당해산을 선고했다. 2014.12.19. (사진=YTN TV 화면, 캡처)

극단적 진영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국민통합의 필요성과 방법론

위헌정당의 해산 등에서 기준으로 작용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매우 엄격하게 제한된다. 이를 확대할 경우에는 정부의 야당탄압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극단적 진영갈등의 극복을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공통분모로 인정하는 근본가치에 대한 재발견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국민들의 공감대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과정 속에서 진영갈등의 의미와 한계도 비로소 명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국가도 국가 내에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요소들과 구심력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을 동시에 갖고 있다. 국민들 내에서의 갈등과 대립은 당연히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요소다. 이러한 갈등과 대립이 국가를 하나로 존속시키고자 하는 구심력의 힘을 벗어날 경우에는 국가가 쪼개질 수도 있다. 과거 하나의 인도였던 것이 종교적 갈등으로 인하여 오늘날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로 분리⋅독립된 것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인도에 비할 수 없이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에서도 한 때 영남공화국, 호남공화국이라는 말이 사용될 정도로 갈등이 극심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진영갈등도 그 당시보다 작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도의 경우처럼 여러 나라로 쪼개지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러한 극단적 갈등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극단적 진영갈등의 완화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내년의 총선을 앞둔 현재 상태에서는 여야 모두가 이에 대한 진지성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진영갈등을 부추겨서라도 지지세력을 결집시킬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진영갈등의 해소를 미루는 것이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면, 중장기적인 진영갈등의 해소는 뒤로 미루더라도,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원심력을 줄이기 힘드니, 구심력을 강화하는 쪽에 관심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민들의 공통분모를 중심으로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퉁합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다는 것이다. 한때, 고위공직자, 재벌총수 등을 사면하면서 국민통합을 내세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국민들은 그런 대규모 사면에 반대하였고, 결국 사면의 효과는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것이 되었다.

올바른 국민통합은 불법을 용납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특정 계층이나 특정 지역에 퍼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낙후된 지역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지만, 그것은 퍼주기가 아닌 균형발전이라는 기준에 따라 처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통합은 강제될 수 없다. 전체주의화 시키는 것이 통합일 수는 없으며, 민주적 가치 속에서 자발적인 통합이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통합론의 제창자로 유명한 독일의 헌법학자 스멘트(R. Smend)는 통합을 인적 통합, 물적 통합, 기능적 통합으론 나누어 설명한 바 있다. 

그중에서 인적 통합은 군주국가의 군주, 신정국가의 최고권위자 등 인물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서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그 의미와 비중이 매우 낮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물적 통합, 즉 국기나 국가 등의 상질물이나 헌법상의 기본권 등의 가치를 매개로 하는 통합과 선거 참여 등의 절차를 통한 기능적 통합이다.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근본가치가 올바른 방향으로 확산되기 위해서 기본권 등의 헌법적 가치가 갖는 중요성을 되새길 필요가 있으며, 선거 등의 민주적 정치과정에 대한 국민 참여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마친 뒤 지자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2021.6.29(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마친 뒤 지자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2021.6.29(사진=연합뉴스)

결: 국민통합을 위해 필요한 것들

국민통합은 구호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국민통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혼란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위한 단계적 실천계획 내지 로드맵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국민들 사이에, 특히 보수와 진보 진영을 지지하는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고 소통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진영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상대 진영은 무조건 틀렸다는 편협함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을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진영은, 우리 진영의 지도자는 완벽하다고 믿는가? 민주주의의 기본이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간에 충분히 논의해서 결정하자는 것이고, 그래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그때 다수결로 잠정적인 해결을 찾자는 것이 아닌가?

민주주의의 출발점은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의 존엄 및 그에 대한 존중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 나와 다른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 나와 반대편 진영에 서있는 사람들도 존중해야 하며, 이를 통해 나도 그들의 존중을 받아야 한다. 그런 가운데 소통이 가능해지고, 공론장이 작동하여 민주적 토론이 합리적 결론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진영갈등이 극단화되면서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태도, 상대방을 불신하는 태도가 당연시되고 있다. 소통이 없어지고, 독선이 판을 치며, 협치는 기대할 수도 없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일 수 있는가?

민주주의는 법조문에 있는 것도, 대통령실이나 국회의사당에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 마음 속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우기도 하고, 시들기도 한다.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진영 및 개인적인 입장의 차이와 무관하게- 국민이 국민으로서의 공감대를 회복하는 것이 국민통합의 핵심이며, 민주주의의 활로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사진편집=조주형 기자)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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