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권 행사.PG(사진=연합뉴스, 일부편집=조주형 기자)
투표권 행사.PG(사진=연합뉴스, 일부편집=조주형 기자)

민주적 선거의 의의와 기능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첫 단추로 일컬어진다. 대의제의 형태로 민주주의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이 가장 먼저이고, 이렇게 선출된 대표자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국가정책의 수립 및 집행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여야의 정치적 협의, 국민의사의 반영 등이 계속 논의되기 때문이다.

즉, 선거를 첫 단추라고 부르는 것은 선거를 제대로 치러야 그 이후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일들이 제대로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선거가 곧 민주주의의 전부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첫 단추 이후에도 다음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선거가 첫 단추가 아닌 모든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정치권의 모든 노력은 선거를 위한 준비이고, 선거에서의 승패가 다음 선거까지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승자독식이라는 선거의 구조와 성격 때문이라 하지만, 이는 민주적 선거의 본질에 맞지 않는 것이다.

민주적 선거의 기본적 의미는 활동력 있는 국가기관을 구성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의 출발점은 국민주권이지만, 국민이 –마치 군주국가의 군주처럼- 주권자로서 국가사무를 직접 처리하면서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사무를 담당한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 과정이 선거인 것이다.

이러한 선거에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전제한 대통령 선거의 경우에 직접선거의 요청이 강하게 요구되는 것, 나아가 상대적 다수대표제가 아닌 절대적 다수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국민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국회의원선거에서 개개의 의원이 국민의 의사에 따라 선출되는 것 이외에 각 정당이 차지하는 전체 의석수가 국민의 의사, 즉 각 정당의 득표율과 크게 차이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비례성 요청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적 선거의 핵심은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의 의사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전면적인 비례대표제 선거일 것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는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이 반영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될 수 있다. 그로 인하여 독일식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역대표성을 반영하면서도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살리는 선거제도로 주목받은 것이다.

그런데 지난 제21대 총선의 경우에는 이른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위성정당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고, 지역구 선거에서도 각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수 사이의 비례성이 크게 어긋나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이번 제22대 총선에서는 선거의 민주성이 얼마나 회복될 것인지가 향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 투표가 예정된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육탄저지를 뚫고 의장석에 착석한 뒤에도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2019.12.27(사진=연합뉴스, 편집=조주형 기자)
'공직선거법 개정안' 투표가 예정된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육탄저지를 뚫고 의장석에 착석한 뒤에도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2019.12.27(사진=연합뉴스, 편집=조주형 기자)

정당 간의 경쟁과 이기는 선거의 의미

그런데 최근 양대 정당의 총선에 임하는 태도를 보면 오로지 선거에서의 승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당의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야당의 이재명 당대표도 오로지 선거의 승리만을 이야기하며, 바람직한 선거, 민주적 선거의 의의와 기능을 제대로 발현시키는 선거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 선거제도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확실해진다. 어느 누구도 좋은 제도라고 말할 수 없는 위성정당 문제조차도 이해득실만을 계산하면서 계속 유지할 뜻을 내비치고 있는 양대 정당의 입장에서는 선거에서의 승리 이상으로 중요한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선거가 정당 간의 경쟁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역구 선거에서도 유권자들이 후보자 개인을 보고 투표하는 경우보다는 그의 소속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의 승패는 정권의 향방을 가르고, 총선의 승패는 정국 운영의 방식을 좌우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정당의 입장에서는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선거 승리에 모든 것을 거는 정당은 민주화되는 것이 아니라 과두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정당 과두화의 철칙’이 주장되었으며, 당내민주주의의 강화를 이를 억제하지 않을 경우에는 극단적인 독재 정당이 출현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독재 정당에 대해서는 우리 헌법도 위헌정당해산제도를 통해 통제하고 있으며, 2014년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결정을 통해 이 제도가 정치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 바 있다. 그렇다고 해도 양대 정당이 독재화되었을 때, 과연 위헌정당해산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그런 상황 자체를 미연에 방지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기는 선거를 강조한 나머지, 아름답게 지는 선거를 전면 부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렇게 이기려고만 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아름답게 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일까? 

진영 갈등이 극단화되어 있는 현시점에서 무조건 이기기 위해 올인한다는 것은 어떤 무리수라도 감수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진영 갈등, 지역 갈등을 이용하고, 더욱 자극해서라도 선거에는 승리하고 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후유증이 대한민국을 크게 후퇴시키더라도 말이다. 이런 승리는 국민을 위한 승리가 아닌, 오로지 정당을 위한 승리일 뿐이다. 과연 이런 승리가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까?

아름답게 진다는 것은 국민에게 감동을 남기는 패배를 의미한다. 무조건 양보하면서 패배를 자초하는 것을 아름다운 승리라고 국민들이 생각할까? 그건 아니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패배는 선거 승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되, 선거 승리를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저당잡히는 일, 예컨대 진영 갈등이나 지역 갈등을 조장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 근거 없는 흑색선전 및 비방전을 하지 않는 것,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일들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선거의 패배로 이어지는가? 그렇게 본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를 충분히 평가할 것이고, 따라서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다만, 다른 요소들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요소들만으로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아름답게 진 경우에는 국민에게 좋은 인상을 각인시킴으로써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면서도 아름답지 못한 경우라면 국민들은 그 정당에 대해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국민들은 다음 선거까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다시금 말히지만 우리 국민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지 말라. 

이런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은 –마치 지난 선거에서 양대 정당 모두가 위성정당을 만들었던 것처럼- 사실상 정당 간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국민들이 그 모든 것을 잊었기 때문은 아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가 16일 오전까지 이어진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방송사 조명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2020.4.16(사진=연합뉴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가 16일 오전까지 이어진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방송사 조명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2020.4.16(사진=연합뉴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승리와 그렇지 못한 승리

그러므로 진정으로 이기는 선거를 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국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물론 국민 전체가 똑같은 생각일 수는 없다. 예컨대 보수 성향의 국민들과 진보 성향의 국민들, 그리고 중도 성향의 국민들이 각 정당의 선거공약 및 선거전략에서 기대하는 바는 상당한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그러면 각 정당은 오로지 지지세력만을 위해 선거공약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것이 민주적인가?

진정 민주적 정당이라면 갈등과 분열을 이용한 선거전략이 아니라,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강성 지지층이 주장하는 대로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이들을 통합의 흐름으로 이끌고, 나아가 수많은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 비전을 보여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비로소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진정한 승리가 가능할 것이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까지도 섬기겠다고 말했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취임사와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는 크게 달랐다. 이른바 적폐 청산이 계속되면서 진영 갈등은 더욱 극심해졌고, 조국 사태 등에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도 커졌다. 통합의 리더십이 아니라 갈등과 분열의 정치였다.

만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했던 것처럼 진정한 통합의 리더십을 보였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진정한 승리는 단지 선거에서의 승리, 투표에서의 승리가 아니다. 국민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고, 이를 통해 국민이 투표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승리라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영 갈등 및 지역 갈등의 조장에 의한 승리, 공약의 남발에 의한 승리,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을 앞세운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불신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정치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의 하나가 선거라는 점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선거, 국민을 승자로 만들어 주는 선거전략이 승리하는 선거로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인왕산 범바위에서 바라본 서울 일출 전경. 2022.01.28.(사진 = 서울관광재단,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인왕산 범바위에서 바라본 서울 일출 전경. 2022.01.28.(사진 = 서울관광재단,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진정한 승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비전에서!

민주적 선거의 의의와 기능을 제대로 충족시키고, 국민들이 선거에서 기대하는 바를 채워주는 선거, 대한민국의 미래를 저당잡히면서 당장의 이익으로 국민을 현혹하는 선거가 아니라 진솔하게 대한민국의 현실을 진단하면서 대한민국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공약,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보이는 선거, 이러한 선거가 진정 승리하는 선거일 것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케네디 열풍이 불었던 것은, 그가 미국인들에게 많은 선심성 공약을 내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에 맞는 비전을 제식했기 때문이었다. 뉴 프론티어십을 주장하면서 미국인들의 열망을 일깨웠고, 국민을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해줄 것인지보다 국가를 위해 국민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는 반전이 오히려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었다.

2024년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당시의 미국인들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는가?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다. 국민을 무시하는 발언, 예컨대 국민은 알 필요가 없다는 발언이 왜 문제인지를 모르는 정치인들에 비하면, 국민들의 집단지성은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를 전제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을 짜야 한다. 국민을 은연중에 무시하는 전제에서 출발한 선거전략과 국민을 존중하는 기초 위에서 만들어진 선거전략은 기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 차이를 쉽게 간파할 것이다.

국민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국민에게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비전, 설득력 있는 실행 계획을 제시하는 선거, 제22대 총선은 그러한 선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헌법학).(사진편집=조주형 기자)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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