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어느 러시아 병사의 유서. 이 유서는 아내에게 보낸 것인데, 같은 편인 체첸군이 자신의 돈을 갈취하고 심지어는 강간까지 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사진=우크라이나365]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 지역에서 스스로 목을 매달아 극단적 선택을 한 러시아 병사의 시신이 4일(현지시각) 발견됐다. 이 병사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 유서에서 "체첸인들이 아내가 보낸 돈을 모조리 갈취했고, 심지어는 나를 강간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고 우크라이나의 온라인 매체 다이얼로그가 이날 전했다.

다이얼로그에 따르면 이 병사는 러시아의 부분 동원령으로 우크라이나 전장에 끌려온 러시아인으로 짐작된다. 이 병사의 나이, 출신지역, 이름 등 정확한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다이얼로그 및 텔레그램 '우크라이나 365'에는 숨진 병사의 사진이 공개돼 있는데 루한스크의 어느 건물 안 계단에서 목을 매단 것으로 보인다. 다이얼로그는 "동원된 곳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서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이 병사는 자신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를 유서에 밝혀 놓았다. 그는 러시아어로 작성된 유서에서 "여보. 내가 여기 있는 동안 지옥을 충분히 보았다"며 "체첸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여기서는 너무나 많은 사상자를 목격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그게 내가 떠나는 이유는 아니다"라며 "우리 러시아인들은 여기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고 체첸인들이 통치한다"며 "그들은 돈을 갈취하고, 날 강간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크슈카(Ксюха) 사랑해. 우리는 반대편에서 만날 거다"라고도 했다.

유서 내용에 따르면 이 병사의 돈은 아내 크슈카가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러시아 연방 내의 체첸 자치공화국 출신의 체첸인들이 모두 갈취하고, 병사를 강간하기까지 했다. 즉 동성강간을 한 것이다. 이 병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갑자기 동원됐다는 스트레스에 더해 돈을 빼앗기고, 성적인 수치까지 당하자 이를 참을 수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러시아 병사가 발견되었을 때의 모습. [사진=우크라이나365]

이 체첸인들은 러시아에 동원된 친러계열 군인들일 것으로 예측된다. 유서엔 이들이 카디로프 연대(кадыровцы , Kadyrovites) 소속으로 명시돼 있다. 카디로프 연대는 체첸 자치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던 아흐마트 카디로프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즉 같은 편에 의해 가혹행위가 행해진 것이다. 친러 소수민족이 러시아군을 학대한 사건이 드러난 경우는 이례적이란 평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인들을 상대로 전쟁범죄 및 가혹행위를 벌였단 소식은 많이 공개된 바 있다. 2022년 7월 말엔 우크라이나 포로의 성기를 거세하는 영상이 온라인에 공개돼 충격을 안긴 바 있는데, 범인으로 러시아 칼미키야 자치공화국 출신의 용병부대원 아로샤노프가 지목됐다(관련기사: 러시아군, 우크라이나 포로 '강제 거세' 비디오 파문...'전쟁범죄' 비난).

러시아군 소속의 용병부대원이 우크라이나 포로의 성기를 거세하는 동영상이 2022년 7월에 공개돼 큰 파문을 낳았다. [사진=야후 뉴스]

러시아군에 소속된 체첸인들이 같은 러시아군을 상대로 가혹 행위를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체첸 자치공화국이 러시아 연방에 소속돼 있긴 하지만, 이슬람 수니파가 다수인 체첸인들은 1994년의 제1차 체첸 전쟁, 1999년부터 시작됐던 제2차 체첸 전쟁에서 러시아와 격렬하게 싸웠다. 이 과정에서 체첸인들은 러시아군 포로들을 잔혹하게 학살하거나 러시아 민간인 소녀를 윤간한 후 죽이는 등 전쟁범죄를 행했고, 이에 격앙된 러시아군도 보복 행위를 가했다. 즉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가한 체첸인들이 이 역사적 경험을 잊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러시아가 전쟁에서 밀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의 루한스크 통제력이 약화됐을 수 있다. 체첸인들이 같은 편을 상대로 가혹행위를 행하더라도 제지하지 못할 수 있단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이 소식을 러시아군의 이미지를 공격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약 5만6000명이 구독하고 있는 텔레그램 채널 '우크라이나 365'에 이 소식을 공개하고, '이는 러시아의 폭력의 본질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다만 극단적 선택을 한 병사에 대해서는 '들고 있던 총으로 체첸인들을 쏴 버리는 대신 그가 스스로 목을 맸다'며 다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텔레그램 등 온라인 메신저를 우호적 여론 형성에 잘 이용하고 있다. 텔레그램 우크라이나365가 게시물을 통해 이 소식을 공개하기도 했다. [사진=텔레그램 우크라이나 365]
우크라이나는 텔레그램 등 온라인 메신저를 우호적 여론 형성에 잘 이용하고 있다. 텔레그램 우크라이나365가 게시물을 통해 이 소식을 공개하기도 했다. [사진=텔레그램 우크라이나 365]

이 소식을 접한 한국 네티즌들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혐(혐오 콘텐츠)' 자를 제목 앞에 붙여 보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 경고하고 있으며, '강간이라길래 여군인 줄 알았는데 남자가 피해자라니' '아군끼리 저게 뭐하는 짓이냐' '전쟁으로 인해 사회 시스템이 거세되니 집단광기의 현장이 되는거다' '옆에 계단이 있었음에도 발을 올리지 않았던 건 정말 세상을 등지고 싶었던 것을 의미한다' '죽더라도 가해자를 쏘고 죽지 왜 그냥 죽냐' 등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과 안타깝다는 의견, 전쟁의 참상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는 의견이 혼재했다. 일각에서는 이 소식의 진위를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네티즌이 편지 내용을 분석했고, 이를 우크라이나 언론의 기사와 교차 대조하면서 거짓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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