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6일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서울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를 여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6일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서울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를 여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24일(현지 시각)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여전히 끝나지 않고 지지부진한 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對우크라이나 선전전술(프로파간다)이 급격히 바뀌고 있단 분석이 나와 주목 받고 있다. 즉 러시아가 전쟁 이전부터 최근까지 '우크라이나에서 나치를 축출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다면, 이제는 '우크라이나의 테러 행위를 분쇄하겠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

이러한 분석은 뉴욕타임스가 26일(현지 시각) 내놨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가 전쟁 이전부터 우크라이나 나치즘을 '밟아 뭉개야 할(stamp out)' 필요성이라는 그릇된 정보를 퍼뜨렸다면, 이젠 모스크바의 선전전술이 바뀌기 시작했다"며 "테러리즘과의 싸움, 그리고 그 내러티브의 일부로 우크라이나가 더러운 폭탄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며 거짓되게 주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러시아의 신(新)선전전술엔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 내의 댐을 파괴할 의도를 갖고 있다는 등의 근거 없는 혐의도 포함하고 있다고도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관련 선전전술을 바꾼 것은 서방과 우크라이나를 단절시키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러시아가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지 못한 이유 중엔 서방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무기·군수품 등 전쟁물자 지원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의 전술 변경엔 러시아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명분이 없단 전쟁 회의론을 억제하고 총력전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란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는 지난달 21일부터 '부분적 군 동원령'을 내리기 시작했는데, 이는 러시아가 전쟁 수행에 있어 인력난을 겪는 와중 내린 '고육지책'으로 평가되는 실정이다.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주요 도시에선 반전 시위가 일어났고 징집을 피하려는 러시아 남성들이 발트 3국·조지아로 탈출했으며, 요트를 통해 탈출하는 21세기판 '보트 피플'도 관측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20세기에 이미 소멸한 '나치'대신 21세기에 본격 나타나기 시작한 '테러'의 주도 세력으로 모는 게 내부 결집에 그나마 더 더움이 된단 것이다.

러시아가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나치'로 몰았던 데엔 우크라이나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 '스테판 반데라(Stefan Andrijovich Bandera)' 등 실제 나치로 분류될 수 있는 역사적 인물들이 우크라이나에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반데라는 1939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발맞춰 '우크라이나 혁명 민족주의자 조직(OUNR, OUN-B)'을 세웠고, 1941년 6월 30일 나치군이 키이우를 점령했을 땐 우크라이나 독립을 선포하며 '우크라이나 국민정부'를 설립하기도 했다.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이 나치군의 침공을 '소련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받아들였던 것도 반데라의 행적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 것.

반데라의 활동이 이 정도에 그쳤다면 '나치'란 평가를 받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그의 OUN 조직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발맞춰 우크라이나 내 유대인을 색출하고 제노사이드(Genocide)를 자행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학살된 우크라이나 유대인의 수는 140만명에서 15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로 인해 반데라는 나치주의자이자 전쟁 범죄자란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됐다. 이러한 반데라의 사진이 지난 2013년 유로마이단 시위에서 일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내걸린 것을 보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나치가 있다는 선전전술을 펼치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모두가 반데라를 역사적 영웅으로 기리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2018년 우크라이나 언론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역사엔 반데라 외에도 그를 대체할 만한 다른 건전한 영웅들이 많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러시아의 '나치' 선전전술이 그동안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反테러'로 방향을 튼 이유 중엔 젤렌스키 대통령의 '선 긋기'도 있단 평가다.

우크라이나의 극우 민족주의 운동가 스테판 반데라의 사진. 그는 나치 침공을 우크라이나의 독립에 활용했지만, 우크라이나 유대인 제노사이드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는 등 나치주의자란 평가를 받는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중 반데라를 영웅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고 평가되며, 모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가 반데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 우크라이나 Unian]
우크라이나의 극우 민족주의 운동가 스테판 반데라의 사진. 그는 나치 침공을 우크라이나의 독립에 활용했지만, 우크라이나 유대인 제노사이드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는 등 나치주의자란 평가를 받는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중 반데라를 영웅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고 평가되며, 모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가 반데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 우크라이나 Unian]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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