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두긴의 딸 다리야 두기나, 누가 죽였을까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 다리야 두기나, 누가 죽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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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모스크바 인근의 차량 폭발 사고로 사망한 다리야 두기나. 그녀는 푸틴의 '정신적 멘토'인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이다. 그녀 역시 선전선동가로 알려져 있다. [사진=뉴욕타임즈]
지난 20일 모스크바 인근의 차량 폭발 사고로 사망한 다리야 두기나. 그녀는 푸틴의 '정신적 멘토'인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이다. 그녀 역시 선전선동가로 알려져 있다. [사진=뉴욕타임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신적 멘토'라 평가되는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 다리야 두기나가 지난 20일 차량 폭발 사고로 사망한 것과 관련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책임 공방 및 비난이 오가고 있다. 러시아는 다리야 두기나의 사망 배후에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자신들은 이번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만명이 죽어간 전쟁터와 별도로 여론을 장악하기 위한 '장외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배후설 주장

러시아는 22일 다리야 두기나가 탑승한 차량 폭발 사고를 사전에 계획한 주역이 우크라이나라고 단언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이하 연방보안국)은 이날 성명을 통해 "다리야 두기나 공격이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됐다"고 주장했다. 

연방보안국은 성명에서 우크라이나 정보당국 소속 여성이 범인이라 구체화하기도 했다. 성명에 따르면 그녀가 지난 7월 23일경 러시아에 입국해 "두기나 살해를 준비하고 두기나의 생활 방식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다리야 두기나가 살았던 모스크바의 아파트를 임대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여성은 지난 21일 두긴과 두기나가 참여했던 민족주의자 축제에도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고 연방보안국은 밝혔다. 또한 범행 후 이 여성이 에스토니아로 도피했다고도 전한 상태.

반면 일부 러시아 언론들 역시 우크라이나를 배후로 지목하면서도 당초 공격 대상은 알렉산드르 두긴이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알렉산드르 두긴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극우 민족주의자이자 국민보수주의 운동가, 파시스트 철학자로서 집권 초기 친서방 성향을 띠었던 푸틴 대통령의 '사상적 전향'을 이끈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두긴은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과도 연관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평소 '독립국가 우크라이나는 존재해선 안되며, 러시아에 합병되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는데 푸틴 대통령이 이의 영향을 받았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자국 침략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두긴을 공격할 이유는 충분했단 것.

다만 러시아 연방보안국은 성명에서 우크라이나가 겨냥한 공격 대상은 두긴이 아닌 다리야 두기나라고 밝힌 상태다.

연방보안국의 성명 직후 크렘린은 푸틴 대통령의 이름으로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푸틴은 "비도덕적이며, 잔인한 범죄가 다리야 두기나의 인생을 끝냈다"며 "(다리야 두기나는) 진정한 러시아인의 심장을 가진 밝고 재능있는 인물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두기나는 러시아 애국자라는 게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증명했다"고도 밝혔다. 다만 푸틴은 이 성명에서 우크라이나가 범인이란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일부 러시아 반체제 인사, 러시아 내부의 소행이라 주장하기도

한편 다리야 두기나의 사망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 내부의 소행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는 반푸틴·반체제 활동을 벌이는 러시아 인사들에게서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영국 가디언지의 보도에 따르면 일리야 포노마료프 전 러시아 두마(Duma, 러시아의 하원) 의원은 현지시간 21일 다리야 두기나의 사망이 러시아 내부의 반정부·반푸틴 저항단체인 국가공화군(NRA, National Republican Army)의 소행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가공화군은 러시아 내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하단체이며 푸틴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노마료프 전 의원은 국가공화군이 크렘린과 연관돼 있는 유명 인물들에 대한 추가 공격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엔 러시아 당국자들, 올리가르히, 러시아 보안 당국의 구성원들도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 소식을 전한 가디언지는 포노마료프 전 의원의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진 못했다고 전한 상황.

이탈리아로 망명중인 알렉산드르 네브조로프 전 언론인 겸 전 정치가는 또다른 의견을 내놨다. 네브조로프는 "누가 했는지에 관해서는, 우크라이나인이나 당파주의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선전에 속았다고 생각하는 러시아 군인 '그들 자신'에 의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알렉산드르 네브조로프는 다리야 두기나의 살해 범인이 우크라이나나 국가공화군이 아닌 우크라이나전에 참전한 러시아군이라고 주장했다. [사진=트위터]
알렉산드르 네브조로프는 다리야 두기나의 살해 범인이 우크라이나나 국가공화군이 아닌 우크라이나전에 참전한 러시아군이라고 주장했다. [사진=트위터]

이어 "우크라이나전에 참전한 군인들은 파시스트와 나치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에 있음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다"며 "전쟁에서 돌아올 만큼 운이 좋은 소수의 사람들이 무기와 폭발물을 가지고 온다는 건 비밀이라 할 수도 없다"고도 했다.

우크라이나, 혐의 극구 부인 중

한편 우크라이나 당국은 다리야 두기나의 사망 배후에 자신들이 있단 러시아의 주장을 일축했다. 미하일로 포돌략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러시아의 선전선동이 '소설 속 세계'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여성과 그녀의 12살난 아이가 선전선동가 두기나의 차량 폭발 사고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러시아는 '에스토니아 비자'를 찾지 못했다"고도 했다.

미하일 포돌략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의 트윗. 그는 러시아의 주장이 '에스토니아 비자'도 찾지 못한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트위터]
미하일 포돌략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의 트윗. 그는 러시아의 주장이 '에스토니아 비자'도 찾지 못한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트위터]

안드리 유소프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 대변인은 워싱턴포스트에 이번 사건에 대해 논평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러시아 세계(Rusky Mir)' 내부 파괴 과정이 시작됐다"며 "그들 스스로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차량 폭발 사고로 인한 다리야 두기나의 사망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적대감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터키, UN의 중재하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합의가 이뤄져 지난 7월말 재개된 우크라이나 곡물 해상 수출이 다시 중지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숨통이 트였던 전세계 식량 부족 사태가 다시 재연될 수도 있을지 모른단 우려가 제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리야 두기나의 사망을 추도하는 러시아 시민들. [사진=뉴욕타임즈]
다리야 두기나의 사망을 추도하는 러시아 시민들. [사진=뉴욕타임즈]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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