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맺어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위헌성 가려달라는 소송...헌재, 却下 결정
헌재, “배상청구권이 처분되지도 우리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한 소멸되지도 않아”...對日 ‘개인 청구권’ 여지 남겨
민변,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하거나 재협상 과정으로 나가야 하는 단초 마련한 것” 이번 판결 평가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에 맺어진 ‘위안부 합의’의 위헌확인 소송에서 헌법재판소는 ‘각하’(却下) 결정을 내렸다.(그래픽=연합뉴스)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에 맺어진 ‘위안부 합의’를 놓고 제기된 위헌확인 소송에서 헌법재판소는 ‘각하’(却下)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27일 강 씨 등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일부 시민들과 이들의 가족과 그 유족들이 제기한 ‘한일 위안부 합의’(이하 ‘위안부 합의’) 위헌확인소송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이 지난 2016년 3월 강 씨 등을 대리해 제기한 이번 소송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3년 8개월여만에 나온 것이다.

‘각하’란 소송의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보고 본안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심리(審理)를 종결하는 것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기각’(棄却)이 있지만, ‘기각’은 소송 요건은 갖췄지만 재판부가 판단했을 때 제기된 내용이 터무니없는 것이어서 소송을 종료하는 것을 말한다.

2016년 당시 ‘민변’은 정부의 (위안부 관련) 합의로 인해 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배상청구권의 실현이 어려워졌고, 이 때문에 재산권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국가로부터 외교적으로 보호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완전히 배제돼 절차 참여권과 알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며 외교부를 피청구인으로 위헌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지난 2018년 6월 의견서를 내고 ‘위안부 합의’ 건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각하해달라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위안부 합의는 법적 효력을 지니는 ‘조약’이 아니며 외교적 ‘합의’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착석해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번 소송에서 쟁점은 ‘위안부 합의’를 국제법상 국가 간의 ‘조약’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비구속적 합의’로 볼 것인지였다. 헌재는 해당 합의가 ‘비구속적 합의’로 보고 “그로 인해 국민의 법적 지위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것”이라며 ‘각하’ 판결을 내린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조약’이 아닌 ‘비구속적 합의’로 본 이유로 ▲구두 형식의 합의인 점 ▲조약 체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한일 양국의 법적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은 점을 들었다.

일반적인 조약의 경우 서면 형식으로 체결되며 국회의 동의 등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2015년 당시 ‘위안부 합의’는 구두 형식으로 진행됐고 국무회의 심의에서 다뤄진 적도 없었으며 국회의 동의 등 헌법상 조약 체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또 ‘위안부 합의’의 결과로 한일 양국이 어떤 권리·의무 관계에 놓이게 되는지가 불분명하다고 봤다. 권리·의무 관계가 결여됐다면 법적 관계 역시 성립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합의 내용 가운데 “’일본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시하는 부분’은 위안부 피해자의 권리구제 목적으로 하는지 여부가 드러나지 않아 법적 의미를 확정하기 어렵다”며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법적 조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합의상 소위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자금을 출연한다는 부분을 놓고 헌법재판소는 “구체적인 계획이 정해지지 않은 추상적·선언적 내용”이라며 “법적 의무를 지시하는 표현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고 봤다.

이와 관련해 소위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할 목적으로 지난 2016년 7월28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은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재검토함에 따라 지난 2018년 11월21일 해산 절차에 들어갔고, 올해 7월3일을 기해 공식적으로 해산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측 변호인인 이동준 변호사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판결 결과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내외 많은 언론은 이같은 헌법재판소의 판결 결과를 보도하면서 “(한일관계가) 이번 판결로 큰 고비를 넘겼다”는 등의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의 합의를 통해 (배상청구권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가 처분됐다거나 우리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한이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힌 점에서 헌법재판소는 일본 정부에 대한 ‘개인 청구권’의 여지를 남겨두기도 했다. 따라서, 비록 해당 소송에 대해 ‘기각’ 판결이 내려지기는 했지만,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 내용으로 인해 일본 측이 유감을 표명하거나 반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은 지난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 조약을 통해 한일 간의 모든 청구권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청산됐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또 일각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위안부 합의’를 두고 ‘조약’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림으로써 문재인 정부가 언제든지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거나 번복, 또는 재협상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위헌확인 소송 청구인 대리인인 ‘민변’ 측은 헌법재판소의 판결 결과에 대해 “아쉽다”고 평하면서도 동시에 “이 합의가 조약도 아니고 그럼 뭐냐는 것에 관해서 공식적 협상 등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강력하게 정부가 과감하게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 과정으로 나가야 하는 단초를 마련한 게 아닌가하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외교부는 이같은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오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가능한 노력을 계속해 나아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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