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 총통, 민진당 주석직 사퇴 "지지자들에 실망줘 죄송하다"
민진당, 20년 텃밭 가오슝마저 국민당에 내줘...6개 직할시 중 2곳 건져
수도 타이베이, 무소속 커원저 현 시장 재선 성공...국민당과 박빙 승부
올림픽 명칭 '대만'으로 변경 국민투표 부결...脫중국 행보 주춤하나?

대만 지방선거 결과 직할시-현-시급 단체장 22곳 중 15곳에서 국민당이 승리하며 대만 지도가 국민당 상징의 파란색으로 뒤덮인 모습 [시나닷컴 캡처]
대만 지방선거 결과 직할시-현-시급 단체장 22곳 중 15곳에서 국민당이 승리하며 대만 지도가 국민당 상징의 파란색으로 뒤덮인 모습 [시나닷컴 캡처]

24일 열린 대만 지방선거에서 반중(反中)성향 집권 여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친(親)중국 성향의 중국국민당(국민당)에 참패했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이날 밤 긴급기자회견에서 “지지자들에게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며 민진당 지도부에 당 주석직 사임을 요청했다.

현지 매체들은 일제히 “녹지(녹색-민진당)가 파란하늘(남색-국민당)로 변했다(綠地變藍天)”고 보도했다.

민진당은 선거 전 전국 6개 직할시와 16개 현·시 등 22개 단체장 중 절반 이상인 13개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6개 직할시 중 기존 4곳에서 2곳을 지켰다. 16개 현(縣)급 선거 결과에선 국민당이 12개 지역에서 승리한데 반해 민진당은 4곳을 지키는데 머물렀다.

민진당은 특히 1998년 이래 20년 텃밭이었던 남부 가오슝(高雄)시를 국민당 한궈위(韓國瑜·61)에게 내주며 전통적 지지기반을 상실했다.

패배를 인정한 차이 총통은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의 높은 기준을 받아들이겠다”며 “이번 한번의 패배로 갈 길을 멈출 수는 없다. 앞으로 계속 단결해 개혁을 유지해 나가야 하며 국가의 주권을 지켜야 한다. 국내외 각종 도전에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국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전했다.

차이 총통은 또 민진당 출신 라이칭더(賴淸德·59) 행정원장이 구두로 사임의사를 밝혔으나 “그를 만류했다”고 전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 [연합뉴스 제공]
차이잉원 대만 총통 [연합뉴스 제공]

이번 선거 패배로 인해 차이 총통의 조기 레임덕 가속화가 전망되는 가운데 민진당 지도부는 차이 총통 대신 강경 대만독립성향의 라이 행정원장을 2020년 총통 선거에 내보낼 확률이 높아졌다.

왕쿵이 대만 중국문화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민진당 강경파들은 차이 총통 대신 라이칭더 행정원장을 다음 대선에 출마시키기를 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패배가 확인된 가오슝 시 민진당 후보로 나선 천치마이(陳其邁·53)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나를 지지했건 한궈위 후보를 지지했건 모두 가오슝 사람이다. 내년부터 한 시장의 4년 임기 동안 그를 지지하고 파이팅 해야한다”고 밝히며 한 후보에게 전화로 당선 축하를 전했다.

국민당 지지자들은 한궈위 당선자가 승리선언을 위해 무대에 올라오기 전부터 “시장님 안녕하십니까!(市长好!)를 연호했다.

한궈위는 “모든 지지자들과 국민당 중앙당부에 감사드린다”며 “가오슝 최대의 가치는 사랑과 포용이다. 남색(국민당)과 녹색(민진당)을 구분하는 게 아니다. 모두 단결해 가오슝 미래를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밝혔다.

한궈위는 지역경제를 살려 가족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날 필요가 없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거는 등 낙후된 경제 문제에 집중해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당 한궈위 가오슝 시장 당선자 [인터넷 캡처]
국민당 한궈위 가오슝 시장 당선자 [인터넷 캡처]

수도 타이베이에선 무소속 커원저(柯文哲·55) 현 시장이 국민당 딩쇼우중(丁守中·64) 후보를 불과 3254표 차로 누르며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딩 후보는 결과에 불복하고 재개표를 주장하고 있다.

이로써 차이잉원 민진당의 탈(脫)중국 행보는 추진력이 제약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된 2020년 도쿄올림픽을 포함해 모든 국제스포츠대회 참가 때 명칭을 ‘차이니즈 타이베이’에서 ‘대만’으로 변경하자는 안건은 부결됐다. 그러나 찬성표가 435만 420표로 가결 기준인 대만 유권자의 25%(493만 9267표)에 근접했다.

또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중단시킨다는 전기사업법 관련 조항 폐지를 묻는 국민투표는 530만 5000표의 찬성표(반대표 362만 5286표)가 나와 통과됐다. 이로써 차이 총통이 시행한 탈(脫)원전 정책은 폐기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2016년 대선에서 원전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차이 총통은 전체 6기 원전 중 4기를 가동 중단하는 등 탈원전을 고집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8월 688만 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기는 대규모 단전 사태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터지자 국민당 출신 마잉주 전 총통 주도로 ‘탈원전 국민 투표’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운동이 전개됐다. 그 결과 법정요건(28만 1745명)을 넘어서는 29만 2654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투표가 이뤄진 것이다.

차이 총통이 옹호한 동성애자들에 대한 혼인평등권도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안건들이 국민투표에서 가결돼 대만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법적 허용하게 될 위기에서 벗어났다. 민법상 혼인 주체를 남녀로 제한(민법상 동성결혼 금지 유지)해야 한다는 항목이 70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통과됐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5일 새벽 “민진당 출범 2년 만에 몰락 조짐 드러내, 반성하는가?”라는 제하의 사설을 게재해 “우리는 대만섬 내의 각 파들이 ‘92공식(중국과 대만이 1992년 양안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 합의안)’을 지키는 기초 위에서 안정돼 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는 대만인들의 국민당에 대한 호감보다는 임금정체와 탈원전 정책 등 민진당의 경제 실정(失政)에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만의 경제성장률은 올 2분기 3.3%에서 3분기 2.28%로 하락했다. 이는 5개 분기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대만인 무모 씨는 펜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일반 서민들이 국민당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다들 지친 게 문제”라며 “독립 성향 민진당을 여당으로 세웠는데 국제사회에서 인정도 못 받고 경제만 악화됐다”고 전했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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