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두산그룹의 4대 적장자인 박정원 회장에 앞서 두산그룹을 이끌었던 사람은 삼촌, 박용만이었다. 박용만 회장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했다.그는 2013년부터 2021년까지 8년동안 대한상공회의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재벌 회장 답지않은 활발한 SNS 활동으로 요즘의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같은 ‘소통왕’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는 문재인 정권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을 궤멸시키고 선택한 재계의 파트너였다.문재인 정권 쪽 좌파인사들과도 어느정도 코드가 맞았던 그는 두산그룹의 가업(家業)이나 다름없는
두산그룹은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기준, 재계 서열 16위 기업집단이다.과거 20여년간 꾸준히 재계순위 10위권대 초반을 유지해왔지만 채무조정을 위해 2020년 주력기업 중 하나인 두산인프라코어를 현대중공업에 매각하면서 자산규모가 줄어 16위까지 하락했다.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으로 두산그룹의 핵심이자 원전기업인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사이 재계의 대표적 진보기업인 카카오가 금융산업에 진출하는 등 몸집을 키워 15위로 올라섰다.두산은 1987년 설립된 동화약품, 조흥은행(신한은행)과 더불어 창업
윤석열 대통령이 위기의 장본인이다가히 총체적 난국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직면한 형국인 탓이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학제개편 정책의 졸속 추진으로 빚어진 사회적 혼란과 행정적 난맥상에 책임을 지고서 장관직에서 전격적으로 사퇴했지만 과연 그 정도 카드로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처해 있는 위기상황이 조기에 수습될지 의문이다. 많은 국민들은 다름 아닌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위기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일각에서는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3고 현상에서 비롯된 민생경제의 어려움으로
-보수의 에너지 소모한 2년의 부정선거론-차라리 부정선거 수사단 만들어 전모를 밝혀내자-선거의 진실과, 풍문의 진실 모두 조사해야-음모론 극복 못 하면 보수 담론 불가능-좌든 우든 각종 음모론이 장악한 상황-선동 유튜브들은 코인팔이까지-정치가 음모론에 휘둘려서야민경욱의 2년여 투쟁이 끝났다. 처음부터 무지의 투쟁이요 허수아비와의 투쟁이었다. 나는 민 의원이 왜 부정선거론에 매몰되어 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일부 유튜브들이 부정선거를 떠든 것은 확실히 ‘선거조작’이라는 테마가 보수시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었고, 코인과 조회수를 폭발적으로
가짜 이강석 사건을 아시나요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들에게 또다시 큰 웃음을 선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실세들의 등 뒤에 숨어 '호가호위'를 한다고 대정부질의에서 목청을 높였기 때문이다.사실, 호가호위(狐假虎威)가 읽고 쓰기에 무척이나 어려운 한자어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명색이 유수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다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사에서 오랫동안 아나운서로 근무했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자 전직 청와대 대변인이 그 뜻을 거꾸로 알고 있다는 건 개탄스럽다 못해 아예 신기할 정도다.호가호위
예수님도 죽은 브랜드는 못 살려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를 살려내는 부활의 기적을 창조함으로써 그가 여호와의 독생자가 아니라고 의심하는 불신자들을 일거에 회개시켰다. 그런데 예수님도 부활시키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죽은 브랜드이다.모토롤라와 노키아가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를 능가하는 편리하고 혁신적인 최첨단 성능의 스마트폰을 휴대전화 시장에 초저가로 야심차게 출시했다고 하여 예전의 명성과 영성을 재현하지는 못한다. 소비자의 인식 속에서 두 회사 모두 이미 죽은 브랜드인 탓이다.이는 오랜 공백 끝에 서비스를 재개한 미니홈피 싸
문재인 정권 종료 석달을 남기고 이루어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가 명백한 특혜였다는 것을 최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인정하는 발언을 해 귀추가 주목된다.조원태 회장은 지난 13일 한 언론사 주최로 열린 제13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과 대담 형식으로 ‘뉴노멀 시대 항공운송산업의 대전환’을 주제로 대한항공의 코로나 위기 대응과 비전 등을 소개했다. 조 회장이 국내 미디어 행사에 연사로 나선 것은 부친인 고(故) 조양호 회장을 이어 한진그룹 총수직에 오른 2019년 4월 이후 처음이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인천공항이 다시 해외 여행객들로 북적거리는 가운데 최근 여행업계에 작지않은 이슈가 생겼다.1988년 아시아나항공이 출범한 이래 미주지역을 비롯한 경쟁노선에서 아시아나 티켓이 대한항공 보다 비싼 적이 없었다. 후발주자인 아시아나의 숙명같은 것이었다.그런데 최근 곳곳에서 가격역전이 발생하고 있다. 오는 9월초 인천공항에서 뉴욕 JFK공항으로 가는 티켓 가격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아시아나가 더 비싼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경쟁의 효과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인천-뉴욕 노선은 대한항공
‘국적항공사’, 대한항공을 품고있는 한진그룹의 3세 경영자 조원태 회장은 요 몇 년사이 재계에서 ‘억수로 운좋은 사나이’로 통한다.최근 세계 메이저 항공사의 최대 이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문제다. 항공업계에 치명타를 안겨준 코로나19가 대한항공에는 되레 ‘효자’가 됐다.5공 신군부의 태생적 ‘업보’인 광주 5·18에 대한 ‘속죄’ 차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직전, 호남기업인 금호그룹에 ‘선물’한 아시아나 항공을 문재인 정권에서 손에 넣은 것이다.과거 30여년간 대한항공에 있어 아시아나항공은 그야말로 ‘눈에 가시’ 같
진행자: 전두환 대통령은 우리 현대사에서 두고두고 기억될 만한 기념비적인 업적을 쌓으셨죠. 저 앞에 전화기가 있는데, 우리나라 통신을 아주 세계 최첨단으로 올려놓으셨고, 반도체 하여간 곳곳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손길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이 여사: 여기 보시면은 이것이 계실 때 이뤄놓으신 업적들이라고 해서 2월 25일 나오셨는데 24일에 하얏트에서 리셉션을 했는데 그때 각 부처에서 (전화기는) 최신부에서, 우리나라 전화 자동화시켰다고 그날 줬고요. 이건 우리나라 IT 오늘날의 20년 후의 우리나라 먹거리를 뭐든지 20년은 과일나무도
진행자: 그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해외로 망명을 해라,그러다가 최종적으로 백담사로 정해지지 않았습니까. 백담사로 정해진 것은 전두환 대통령이 결심을 하신건가요."쓰러져 아프다고 하고 외국 나가라" 노태우측에서 요구이 여사: 네.본인이 결정한 거죠.해외로 망명기사도 나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우리 안현태 경호실장님이 박세직씨하고 만나서, 안 실장님한테, 쓰러져 아프다고 한 후 외국으로 나가라고 그랬다는 그런 이야기를 직접 안 실장이 듣고 와서 보고하는 거니까, 그건 뭐 거짓말이 없겠죠. 그렇지만 지금도 그 말을 그렇게 믿고 싶진 않아
진행자:전두환 대통령이 단임을 실천하겠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루겠다. 그 약속을 지키셨잖아요. 그에 따라 퇴임을 하셨고, 그리고 후임자도 전두환 대통령과 평생 동지였던 분이고, 그런데 이제 어떤 정치적인 상황에 의해서 전직 대통령을 지키지 못하고 백담사로 보냄으로써 우리 정치의 불행이 시작됐고, 그 불행이 영부인께 직접적으로 와서. 퇴임을 해서 연희동에 계시다가 어느날 갑자기 백담사로 가시게 될 때 그 심정이, 일반사람들이 보기에 야 이거 좀 어떠셨을까요."백담사 갈때 이야기는 너무 아픈 이야기,별로 하
"가는 곳 마다 역사적 사건벌어져""청와대 경비단장때,박격포 처음 설치...김신조 잡게돼"이 여사: 가는 데마다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었어요. 왜냐하면 30 경비단장 할때, 1·21사태 나서 했잖아요. 그것도 청와대 뒷산으로 청와대 앞에 바로 70미터까지 이북의 무장 공비가 온다,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죠.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인데 이 양반은 30사단에 가더니 경내를 돌아보더니 청와대 뒷산이 위험하다 이거에요. 그래가지고 그걸 대책을 강구한다고 하면서 거기다가 박격포를 그쪽으로 조명탄을 쏘는 걸, 근데 그걸 잘못하면 큰일나는거 아니에
진행자: 프로포즈는 어느 분이 먼저 하신 겁니까?"프로포즈라는 건 받아보지도 못해"이 여사: 근데 사실은 요즘으로 따지면 프로포즈라는 건 받아보지도 못한 것 같아요. 왜 그러냐 하면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고 남편이 사관학교 2학년 땐데, 저희 친정아버지가 사관학교 참모장이셨어요. 이 양반이 친구들하고 1학년 땐 외출이 안돼요. 2학년이 돼서 외출을 처음 나왔는데 점심 사먹을 돈, 딱히 찾아갈 곳도 없고 또 점심 사먹을 돈도 없고 이러니까 다들 이러고 있는데 자기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참모장님이 눈
진행자: 전두환 대통령 마지막 떠나보낼 때 어떠셨나요."내가 당신 기억못하면 요양병원보내라"...몸 불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순자 여사에게 요청이 여사: 근데 사실은요. 어... 내가 볼때는 이 양반이 나도 이제는 나이도 들고 했는데 제가 어딜 가는걸 싫어하시고 옆에 있기를 좋아하시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게 좀 미안하게 생각하셨나봐요. 그래서 이러셔요. 당신도 이제 늙고 힘들텐데, 나 수발하느라 그동안 너무나 힘들었다. 내가 기억이 있고 당신이란 존재를 기억하는 동안만 당신이 수고 좀 더 해라. 내가 만약에 기억 못하면 요양병원
펜앤드마이크는 제5공화국의 역사적 사실을 정리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를 인터뷰하였다. 이 여사가 언론에 나와 제5공화국과 가족들의 삶에 대해 증언을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한국 현대사의 한 복판에서 실제로 겪은 일들을 증언하는 이번 작업은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제5공화국을 정리하고 재평가하는 새로운 물꼬를 틀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펜앤드마이크는 이 여사와의 인터뷰를 펜앤드마이크 TV로 3차례에 나눠 방송하며,동시에 펜앤드마이크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도 증언의 전문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장남 이맹희가 아닌 3남 이건희를 후계자로 선택함으로써 형제는 원수보다 더 험한 사이가 됐고 두 집안 또한 멀어지게 된다. 이맹희가(家)는 이병철 회장 별세 6년 뒤인 1993년, 그나마 삼성의 알짜기업이었던 제일제당을 갖고 분가하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이재현 회장의 외가인 손씨 집안이 갖고있던 안국화재(삼성화재) 지분과 제일제당 지분을 맞바꾸는 형식으로 독립경영에 나서지만 제일제당이 전국 곳곳에 갖고있던 막대한 부동산을 둘러싸고 갈등이 많았다고 전해진다.실제 제일제당 독립과정에서 이건희 삼성회장은
CJ는 명실상부한 한류기업이다. 기생충 같은 K무비나 K드라마, 비빔밥 같은 K푸드 등 한류의 도약은 CJ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설립한 드림웍스에 투자했고, 1996년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를 설립했다, 설탕 만드는 회사에 불과했던 제일제당이 오늘날 유통-미디어-바이오 산업까지 영위하는 대규모 기업집단, 한류기업 CJ로 도약한 것이다.지난달 CJ가 투자·배급한 영화 두 편이 칸 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기생충'에 이어 세계의 이목을 집중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5월 발표한 2022년 재계순위(자산기준)를 보면 포스코와 농협, KT를제외한 사기업 중 상위 10대 기업에는 범(汎)삼성 그룹이 1위 삼성과 9위 신세계, 10위 CJ 등 3개, 범 현대가 3위 현대자동차, 8위 현대중공업으로 삼성과 현대 계열이 절반인 5개다.한국 기업사에서 이병철 정주영 두 사람이 차지하는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CJ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회장(2015년 작고)을 거쳐 장손인 이재현 회장이 이끌고 있는 혈통상 삼성가의 장자(長子)그룹이다.하지만 이병철 회장이 장남 이맹희
옛말에 “부자는 망해도 3대(代)를 간다”고 했지만 거대 기업, 재벌의 기준으로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최근 삼성가 3세인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이 별세했는데, 고인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남이자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작은형인 고 이창희 회장의 장남, 모친은 이 회장이 작고한 뒤 회장을 맡았던 일본인 이영자 전 회장이다.고 이창희 회장은 1967년 삼성그룹을 떠나 카세트테이프 등 기록매체 중심의 회사인 새한미디어를 세워 사업을 확장했지만 1991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회사를 물려받은 이 전 부회장은 제일합섬 지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