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전두환 대통령이 단임을 실천하겠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루겠다. 그 약속을 지키셨잖아요. 그에 따라 퇴임을 하셨고, 그리고 후임자도 전두환 대통령과 평생 동지였던 분이고, 그런데 이제 어떤 정치적인 상황에 의해서 전직 대통령을 지키지 못하고 백담사로 보냄으로써 우리 정치의 불행이 시작됐고, 그 불행이 영부인께 직접적으로 와서. 퇴임을 해서 연희동에 계시다가 어느날 갑자기 백담사로 가시게 될 때 그 심정이, 일반사람들이 보기에 야 이거 좀 어떠셨을까요.

"백담사 갈때 이야기는 너무 아픈 이야기,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노 대통령이 후임자가 됐을때 뿌듯하게 생각했어요"

"김옥숙 여사와는 영어공부 10년간 같이.서로 존대하는 사이"

이 여사: 사실 그런 이야기는 하면요, 맘이 너무 아픈 이야기에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부인이 지금 아파요. 그리고 지금 기억을 잘 못하고 계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하고 어떤 드라마에서 보면 아니 그 김옥숙 영부인께서 나보다 4살이나 많은데 나한테 언니언니 그랬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게 아니고, 서로가 존댓말하고 깎듯하게, 부인하고 나하고는 남편을 내조하는 데 열심이라든가, 애들을 잘 키우게 한다거나, 나의 자기 계발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 이런게 같아요. 그래서 영어공부를 10년간 같이 했어요. 근데 한번도 약속시간에 둘 다 늦은 적이 없어요. 그리고 예습복습을 안해본 적이 없어요. 둘이 쿵짝이 맞아요. 그래서 저는 그 노대통령이 각하의 후임자가 됐을 때, 청와대에 들어가셔서 단임을 한다 그럴 때도, 여자들 간에 우정을 큰 몫을 하리라 저는 뿌듯하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이게 2인자 어쩌고저쩌고 근처만 가도 견제가 엄청 들어와요. 우리나라에 전 대통령 전에 전임자들이 한번도 평화적인 정부이양을 못한 게 후임자를 못 정해서, 정해놓으면 들어와서 또 막 이렇게... 그러면 또 새로 어디 찾아봐야 되고 그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두 분의 우정이 하도 돈독해서,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동향 간에 불행했던 역사를 이 두 양반이 청산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사실은 많이 했어요. 그래서 재임중에도 견제가 올 때 옆에서 당신 흔들리면 못나가 우리,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진행자: 못나간다는 건?

이 여사: 후임자 못 구하다 보면 못나간다는... 있고 싶지 않아서.

진행자: 오히려 청와대를 떠나고 싶으셨던 건지?

"단임 약속 허투루 한게 아니다...50살에 청와대 들어가 58살에 나와"

이 여사: 그렇죠. 진짜 우리는 그랬어요. 왜냐하면 단임 약속을 한 것도 허투루 한게 아니잖아요, 사람들 다 뭐 무슨 저렇게 젊은, 왜냐하면 50살에 돼서 58살에 나갔으니까 누가 믿어요.

진행자: 영부인께서는 그 때 마흔 두 살에 청와대 가셔서..

이 여사: 들어가서 쉰 살에 나왔죠.

그러면 못 나온다. 저의 역할도 컸죠. 평화적 정부 이양 하게 된 건.

사실 그렇게 참 그랬는데, 역시나 우리도 권력은 더러운 것이다, 하는 걸로 끝마친게 너무 안타깝고 속상해요. 안그러고 좀 멋있게 했다면 역사적으로도 좋고, 얼마나 좋겠어요. 그 점이 참 아쉽거든요. 그런데 그 부인과 저는 아직도 그런 것이 보면...찾아오셔가지고 참 오늘날에 자기네들이 이런건 전 대통령 덕분인데, 여기서 은혜를 못 갚았던 건 내세에서라도 갚겠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구요, 또 노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문상 갔잖아요. 그 옆에 부인께서 지금 몸이, 근데 그 분도 스트레스가 많아가지고 병을 이것저것 많이 앓으셨더라고요.

진행자: 나중에는 같이 다 고생을 하셨으니까.

 

"백담사 갔을때는 진짜 욕 많이 했죠.지나놓고 보니까 정치가 더러운 것"

"노 대표,나를 밟고 올라가시오,5공청산,무슨 욕 다 받아들여주고,6.29도 네가 했다 그러라고 해서 (6공) 탄생시켰다"

"권력이라는게 쉽지 않은 물건이더라고요"

이 여사: 예, 그리고 이제 그 남편이 오랫동안 누워계셨으니 부인이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그래가지고 남편 돌보러 뛰어가다가 넘어져서 고관절을 다쳐서 휠체어를 타고 나오지 않았어요. 그죠. 그 병실 장례식 옆방에 이렇게 동생하고 둘이 앉아서 나를 안으로 안내해서, 고관절 때문에 못 일어나신 분이세요.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신거야. 그만큼 이 맘 속에 서로간에 우정은 있는 거거든요. 사실 그 당시야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얼마나 섭섭하고 말을 할 수가 없죠. 그러니까 백담사 갔을 때는 진짜 욕 많이 했죠. 근데, 이제 지나놓고 보면 그 정치가 더러운 것이고, 그 각하께서도 그런 말씀 하셨어요. 내가 나와서 이렇게 당한 건 내가 노태우를 잘못 뽑아서 그런게 아니고, 어쨌든간 선거에서 이겨볼려고 노대표, 나를 그냥 밟고 올라가시오, 나를 밟고 올라가서라도 당선되시오 그래서 그냥 5공 청산 뭐 무슨 욕하고 이런 것들 다 그냥 받아들여주고 6·29 그것도 네가 했다 그러라고 하고 이렇게 해서 탄생을 시켜 놨기 때문에 결론이 그렇게 나버렸다 이거죠. 그래서 내가 우리 둘이 정치만 안했으면 참 친한 친구로 남아서 같이 살려고 요기 집도 우리가 봐 가지고 이사오라고 (그랬을 텐데). 슬리퍼 신고 가서 바둑두고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이런거 보면 역시 권력이라는 게

진행자: 쉽지가 않은

"그래도 40년 우정은 위대하다.말려도 노 대통령 병문안"

이 여사: 네 쉽지가 않은 물건이더라고요. 이게. 근데 그래도 40년 우정은 위대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당했는데 이 양반은 노 대통령 편찮을 때 거길, 진짜 슬리퍼 신고는 아니지만, 한 사람 대동하고 거기 두 번이나 갔다 왔잖아요. 그리고 자꾸 가려 해서 제가 말렸죠. 왜냐하면 남편은 의식도 없고 부인만 있는데 자꾸 가시면 불편하지 않겠어요. 못 가게 말렸지만 마음 속에 40년 동안 쌓인 우정이라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 여러번 만났고 우리 막내 아들 결혼할 때 요 마당 앞에서 스몰 웨딩 했거든요. 그 때 두 분 초청해서, 초청했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다 이제 앙금을 풀었는데 이제 와서 그때 이렇게 섭섭했다, 그런 말을 해서 뭐 하겠어요. 5·18 특별법 만들어가지고, 세상에, 우리를 나락을 그냥 이렇게 지금까지도 고생시킨 김영삼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식장에 가셨잖아요. 근데 뭐 이 양반은 내가 쓸개가 없다고 돌아가시면 여기를 한 번 해보면 얼기가 다를 거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과장해버려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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