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상인 하멜 일행이 조선에 표류해온 것은 1653년 조선 효종 때였다. 그들은 그해 7월 30일 타이완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태풍을 만났다. 닷새 동안 태풍과 싸우고 표류한 끝에 제주도에 닿은 것은 8월 16일. 하멜 일행이 제주목사 이원진에 의해 심문을 받은 것은 양력 8월 22일이었다. 효종실록 1653년 9월 26일에는 그 심문에 대한 장계가 실려 있다. “배 한 척이 섬 남쪽 해안에 좌초했습니다. 대정 현감 권극중과 판관 노정에게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살펴보라고 했는데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단지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품위를 지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찌 보면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진정한 품위와는 관련 없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품위있는 일이라고 스스로 여겼던 일들을 지키려 많은 노력을 해왔다. 이를테면 이런 일들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도 비를 피하기 위해 신주머니를 머리 위에 얹고 뛰지 않았다. 아니 웬만한 비쯤에는 아예 뛰지도 않았다. 우산을 써도 학교에 도착하면 옷이 흠뻑
무엇보다 먼저 이태원 압사 사건 사망자들의 명복을 빈다. 11월 5일 자정을 기해 공식 애도 기간이 끝나면 우리 대부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또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날짜가 지났다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들을 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가기는 어렵다. 그들을 잃은 안타까움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아픔으로 새겨졌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70년 전 6‧25전쟁 때 한반도에 와서 공산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우리나라를 목숨 바쳐 지켜준 참전 용사들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얘들아, 본관으로 와! 본관에 오면 화장품 공구랑 게임도 하고 밤새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따뜻한 모포도 주고 아침 식사도 제공할 거야. 본관으로 꼭 놀러와. 다같이 본관으로 모이자.” 몇 년 전 서울의 어느 명문대 여자 화장실 문짝에서 발견한 문구이다. 변기에 앉으면 보기 싫어도 보게 되는 그 눈높이에 붙은 예쁘게 치장된 작은 벽보였다. 당시 그 학교 본관에서는 며칠째 학생들이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슈는 교육부에서 지원하는 평생교육원 사업에 그 학교가 선정되었는데 그 사업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여러 대학이 신청한
개척 시대, 미국 지역 사회의 질서 유지와 발전의 중심에는 가정과 학교, 교회가 있었다.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와 그를 돕는 어머니, 학교의 교사, 교회의 성직자가 주요한 역할을 하여 그 사회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가정과 학교,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한 지역 공동체의 힘이 오늘날 미국 번영의 기틀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당시의 그런 모습은 오래된 TV 드라마 ‘초원의 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로 육체 노동으로 이뤄진 하루 일과를 마친 가족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식탁에 둘러앉는다. 하루를 무사히 보내게 해주고 귀중한 양식을 내려준
2016년에 제작된 ‘아메리카 패스토럴’이라는 영화가 있다. ‘패스토럴(pastoral)’은 ‘목가, 목회’라는 뜻으로, 1960년대의 ‘아메리카 드림’을 완곡하게 비트는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부잣집 아들에 고교 시절부터 스포츠 스타였고 뛰어난 외모와 따뜻한 성품을 가진 남자 주인공. 미스 뉴저지 출신의 아름다운 여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메리라는 사랑스러운 외동딸을 얻는다. 이들은 한동안 정말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다니던 딸 메리가 반정부 단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이 가정에 불행의 그늘이 드
2019년 초 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저자는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 씨이다. 고 한상국 상사는 대한민국의 해상 경계선인 NLL을 지키려고 바다에서 격전을 치르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0년 넘게 ‘공무 중 순직’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마땅히 받아야 하는 상사라는 계급도 전사 후 13년이나 지난 2015년에나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이 ‘전사자’로 인정받은 것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2017년 연말에 이르러서였다. 하지만 법 적용의
조선 제16대 임금 인조는 자신의 아버지 정원군을 왕으로 추존하기까지 정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던 인조가 누구의 대통을 이은 것이냐 하는 정통성 문제는 만만하게 볼 문제가 아니었다. 1628년에는 이조판서 이귀와 최명길 등 반정 공신들이 정원군의 추숭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흔히 반정으로 왕이 되거나 어머니가 후궁인 왕은 왕위 계승의 정통성 문제 때문에 자신의 친부모를 추숭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지나친 추숭은 오히려 자신의 정통성을 훼손시키는 사례가 되기도 한다.세자는 물론 대군도 아니었던, 일개 왕자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케이블 TV 일본 방송에서 특이한 프로그램을 하나 만났다. ‘나의 첫 심부름’이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다. 말 그대로 유아들이 생애 ‘첫 심부름’을 하는 모습을 다룬 내용인데 놀랍게도 심부름 미션을 수행하는 아이 중에는 아직 자기 몸을 가누기도 힘든 두세 살짜리도 있었다.그 중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아이가 있었다.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였다. 그 아이가 해야 할 심부름은 아버지가 낚시로 잡은 생선 세 마리를 생선가게에 갖다 주고 그곳에서 회를 떠주면 그것을 다시 집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생선은 뚜껑
2006년에 발표되어 국내에서도 제법 화제가 되었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미국하고도 뉴욕 최고의 패션 매거진 〈런웨이〉에 새내기로 취업된 ‘앤드리아(앤 해서웨이 분)’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런웨이〉의 전설과도 같은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 분)’의 비서로 일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자리는 ‘달콤한 지옥’이었다. 일터에서 주인공 안드리아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선임 비서인 에밀리 찰튼(에밀리 블런트 분)의 구박에 가까운 닦달이다. 에밀리는 후임 비서를 딛고
대선까지 한 달을 남겨두고 있다. 언제나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대선 결과에는 정말 이 나라의 존망이 걸려 있는 듯하다. 힘겹게 선진국 문턱에 닿은 이 나라를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그 과정에서 이권을 차지하려는 사람이 이 땅에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이 나라를 망가뜨리는 데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그런 자들의 손에서 나라를 구하지 않으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나라가 질곡에 빠질 수 있다. 그러기에 이번 대선에서의 승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다.그런 분위기
얼마 전 유명 기업에서 엄청난 횡령 사건이 터졌다. 범인은 잡혔지만 그 횡령 액수가 사상 최대라 했다. 2천만 원 혹은 2억 원이라면 돈의 크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2천억 원에 가까운 돈은 얼마나 큰 돈인지 가늠이 잘 안 된다. 기사를 보고 드는 생각은 ‘참 간도 크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을까?’라는 생각뿐이다. 설사 누군가의 지시가 있었다 하더라도 회삿돈을 훔친 것을 용서받을 수는 없다. 그런 제의가 있었다면 목숨을 걸고 거부해야 했다. 우리 가족은 중국집에서 시킨 음식 덜어둘 작은 그릇 하나를 덜 보내고
1.내 생전 이런 일은 겪게 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인 60년을 넘게 살면서 이런 일은 정말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 차라리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21세기에 역병 때문에 3년째 발이, 아니 온몸이 꽁꽁 묶이고 있다니.내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콜레라나 장티푸스가 창궐하곤 했다.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법정 전염병’이라는 말의 무게로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전염병은 사라졌다.조선 시대 아니 그 이전에도 역병은 있었다.
얼마 전 대치동 학원에서 영어와 논술을 가르치는 친구와 어처구니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a book’의 품사가 명사라는 데서 시작된 얘기다.“‘a book’은 ‘관사+명사’ 아니에요?”“관사(article)는 명사의 부속품이기 때문에 명사로 봐요.”“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영어에서 관사의 역할이 얼마나 큰데. ㅋㅋㅋ”“그럼 a pretty girl의 품사는 뭘까?”“관사+형용사+명사.”“이건 국어가 아니라 영어에요. ‘A pretty girl is~’의 문장에서 ‘a pretty girl’은 주어죠. ‘관사+형용사+명사’
“제 종교는 샤머니즘입니다.”과학 발달이 정점을 향해 가고 AI가 인간을 찜쪄먹게 생긴 21세기에 샤머니즘이라는 원시 종교를 믿는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누가 아직도 그런 걸 믿느냐, 혹은 우리는 다른 종교를 믿기 때문에 그런 거 따지지 않는다고들 할 것이다.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많은 사람이 아직도 샤머니즘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조상의 묏자리 덕이나 탓을 이야기하는 것, 부적을 만들어 몸에 지니는 것, 손(損) 없는 날로 이삿날을 잡는 것 등이 우리가 쉽게 접하는 샤머니즘적 사고라 할 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6‧25전쟁을 겪은 분들한테는 이까짓 거 별 거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전후(戰後)에 태어나 60년 동안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온 내게는 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느닷없는 전염병이 창궐하더니 그게 2년째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메르스니 사스니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전염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제는 그깟 외국 여행 못 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 자체를 공격하고 있다. 천재(天災)인지 인재(人災)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 병이 삶의 뿌리를 송두
20대 중반,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 내 어머니께서 내게 해 주신 말씀이 있다.“직장 생활을 원만히 하려면 청소부, 운전기사, 수위 등 그 조직에서 궂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깍듯이 대해야 한다.”나의 첫 직장은 4층짜리 작은 건물을 소유한 직원 30명 정도의 조직으로, 그 30명 안에 청소부 아주머니, 수위 아저씨, 기사 아저씨도 있었다. 내가 아침에 출근할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내 상사가 아니라 그들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당부대로 건물의 현관문을 열면 곧바로 마주치는, 혹은 사무실로 오르는 계단에서
1.내 아버지는 은행원이었다. 부모님이 전라남도 목포에서 살던 때 6‧25전쟁이 일어났다. 아마 6‧25 때 가장 피해가 컸던 지역은 서울과 전라남도였던 것 같다. 북한에서 내려온 인민군도 문제였지만 남한에 있던 공산주의자, 그들에게 포섭되어 완장 찬 현지인들이 더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자본주의의 첨병이라 여겨졌던 은행원 아버지는 악질 부르주아 반동분자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국군이나 경찰관처럼 숙청 대상으로 꼽혔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다른 곳으로 몸을 피했다. 그 당시만 해도 아녀자나 어린아이들은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6‧25전쟁 참전국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정한 때는 지난해 가을이었다. 겨울이 시작되는 황량한 계절에 나는 사진 작가인 남편과 함께 취재 길에 나서기 시작했다. 기획 초기 우리 부부는 12년 전 첫 저서 작업을 시작할 때 나눴던 것과 똑같은 대화를 나눴다.“그 옛날 이야기에 사람들이 과연 새삼스럽게 흥미를 가질까? 모두 그 얘기가 그 얘기 아닐까?”물론 이 대화는 대부분의 저서를 기획할 때마다 나누는 대화였다. 대화 끝에 우리는 다음의 결론을 내리며 작업에 착수했다.“같은 콘텐츠라도 접근 방법, 그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 구성과 문
조선 시대 영조는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에게 시호를 올렸다. 이때 시호는 경혜(敬惠), 궁호는 저경(儲慶), 무덤은 순강원으로 정했다. 인빈 김씨가 세상을 떠난 지 140여 년 뒤인 1755년(영조 31)이었다.영조가, 왕비도 아니었던 일개 후궁을 죽은 지 100년 후까지 그렇게 받들어 모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빈 김씨가 인조(仁祖)의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인빈 김씨와 선조 사이에서 정원군이 태어났고 그 정원군의 아들이 인조이다. 선조의 또 다른 후궁 공빈 김씨의 아들인 광해군과 구분 지을 수 있는 영조의 조상은 인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