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1월 11일 오전 11시가 되면 전 세계가 부산을 향해 1분간 묵념을 한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6·25전쟁 유엔군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의 일환이다. 이는 전 세계 사람들이 아직도 6·25전쟁과 참전 용사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확실한 표시이다. 곧 다가오는 11월 11일, 참전 용사들의 도움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그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무엇보다 먼저 이태원 압사 사건 사망자들의 명복을 빈다. 115일 자정을 기해 공식 애도 기간이 끝나면 우리 대부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또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날짜가 지났다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들을 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가기는 어렵다. 그들을 잃은 안타까움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아픔으로 새겨졌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70년 전 625전쟁 때 한반도에 와서 공산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우리나라를 목숨 바쳐 지켜준 참전 용사들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유엔의 도움으로 세워진, 한반도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합법적인 국가로 유엔이 인정한 나라였다. 1950625일 북한이 대한민국을 침략하자 바로 다음 날 유엔은 긴급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를 개최했다. 안보리는 북한군에게 적대 행위를 즉각 중지할 것과 38도선 이북으로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북한이 그 권고를 무시하자 안보리는 28일에 다시 모여 세계 평화와 한반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공동 행동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결의는 유엔이 최초로 국제적으로 연합군을 조직하여 공동의 적을 무찌르겠다는 뜻이었다.

북한은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한 비합법적인 정부였다. 그런 북한이 유엔이 승인한 정부를 침략한 것은 유엔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여겨졌다. 628일의 결의로써 625전쟁은 북한과 대한민국의 전쟁에서 북한 대 유엔의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전쟁이 일어난 후 한 달만인 724유엔은 유엔군 사령부를 만들고 맥아더를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유엔의 결의에 호응한 자유 진영 열여섯 개 나라가 한국으로 군대를 보냈고 여섯 나라가 의료진을 파견했다. 38개 나라는 물자를 지원했다.

6‧25전쟁 때 군대나 의료진, 혹은 물자를 보내준 나라들. 얼마나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전쟁을 치렀는지 알 수 있다.
6‧25전쟁 때 군대나 의료진, 혹은 물자를 보내준 나라들. 얼마나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전쟁을 치렀는지 알 수 있다.

 

70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을 새삼스럽게 다시 꺼내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우리는 몇 번이라도 이 이야기를 나누고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야 하고 그 감사의 마음을 후손에게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625전쟁 때 유엔군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사는 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이들 참전국과 참전 용사들의 이야기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우리는 참전국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에 감사해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채 감사의 마음을 갖기는 어렵다. 셋째, 우리를 도와준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전달할지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서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 우리나라는 전쟁 피해를 복구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힘든 세월을 겪느라 감사의 뜻을 표현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는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제대로 전해야 할 것이다.

참전국들은 3년 동안 우리 땅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르고 수많은 작전을 수행했다. 승리한 전투도 있고 처절한 패배를 맛본 전투도 있다. 성공한 작전도 있고 눈물을 머금고 실패를 인정해야 했던 작전도 있다. 그 전사(戰史)들은 여러 자료를 통해 이미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물론 그 뒤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휴먼스토리가 있다.

 

미국 이외의 유엔 회원국 중 가장 먼저 군사 지원을 약속한 나라는 영연방 국가들이었다. 이후 다른 나라들이 속속 파병과 의료 지원을 약속하여 유엔 창설 이후 처음으로 스물두 개 나라가 유엔의 깃발 아래 모였다. 그들은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참전한 것이다. 이렇게 참전 목적은 같았지만 각 나라는 언어와 민족뿐만 아니라 풍속과 전통에 큰 차이가 있었다. 종교적 차이는 물론 식성마저 달라 보급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대부분 무슬림인 터키군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고, 의료 지원을 하러 온 힌두교 신자 인도군은 쇠고기 먹는 것을 금기시했다.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군은 미군보다 더 많은 빵과 감자를 원했고 태국군에게는 쌀과 매운 고추장을 제공해야 했다.

6·25전쟁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나 참전국 장병들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아군 스물두 나라, 적군 두 나라가 한반도에서 얽혀 싸운 국제 전쟁이었다. 우리 영해 밖 큰 바다도 수많은 병력과 군수 물자를 실어나르느라, 군함이 교대를 위해 오고 가느라 부산했다. 또 하늘길도 부상자를 병원으로 후송하느라 군수 물자 나르느라 비어 있을 틈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전세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바람에 전 세계가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날마다 귀를 기울여야 했다.

미국 가수 페티 페이지가 부른 ‘I Went To Your Wedding’이라는 유명한 노래 가사는 625전쟁에 참전한 한 미국 청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 청년은 한국에서 중상을 입고 기억을 잃었는데 고향에는 그가 전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여자 친구가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내자 그녀의 부모는 하루빨리 죽은 남자 친구를 잊고 다른 남자와 결혼할 것을 권했다. 얼마 후 기억을 되찾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청년은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사랑하는 여자의 결혼식에 참석한 청년을 보고 하객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이 노래에 담겨 있다. 이 노래 가사처럼 625전쟁은 참전 장병이 전사했든 살아남았든 그 가족과 주변 사람들, 그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 엄청난,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부산시에는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엔군 묘지인 재한 유엔기념공원이 있다. 면적은 133701로 축구장 열여덟 개를 합친 크기이다. 유엔기념공원은 19511, 전사자 매장을 위하여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한 것으로, 전쟁이 끝난 195511월에 대한민국 국회는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했다.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한 달 후 유엔총회에서는 이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한 결의문을 채택했고 1974년 이후부터는 11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가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검은 벽에 모든 전사자의 이름을 새긴 추모 명비. 유엔기념공원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검은 벽에 모든 전사자의 이름을 새긴 추모 명비. 유엔기념공원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625전쟁 기간 4896명의 유엔군이 희생되었다. 1951~1954년 사이에는 11,000여 구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되어 있었다. 그후 벨기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그리스, 룩셈부르크, 필리핀, 태국 등 7개국 장병들의 유해 전부와 그 외 국가의 일부 장병들의 유해가 그들의 조국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유엔군 부대에 파견 중 전사한 한국군 36명을 포함하여 11개국 2,300여 구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이는 부부 합장자 등 전후에 사망한 사람들을 포함한 숫자이다. 각 묘소의 작은 비석에는 국적, 이름, 소속, 생년월일, 전사 시기 등을 새긴, A4 용지보다 조금 큰 동판이 붙어 있다. 유엔기념공원에는 각 참전국의 위령탑과 기념비가 있다. 뉴질랜드는 그 나라의 상징 식물인 고사리 문양을 담은 석탑을 세웠고 캐나다는 병사가 한국 아이 두 명을 데리고 있는 동상을 세웠다. 동상 앞에는 우리는 용감한 캐나다의 아들들을 잊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 아이들은 스물한 개의 단풍잎과 무궁화를 들고 있는데 이는 스물한 명의 캐나다군 실종자를 의미한다.

유엔기념공원 중앙에는 검은 벽에 모든 전사자의 이름을 새긴 추모 명비가 있다. 공원 내 (녹지)과 죽음(묘역) 사이의 경계에는 도은트 수로라는 물길이 있는데 도은트는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최연소 참전 용사의 이름이다. 호주에서 와 17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소년을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최연소 참전 용사를 기리는 도은트 수로.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최연소 참전 용사를 기리는 도은트 수로.

 

해마다 1111일 오전 11시가 되면 전 세계가 부산을 향해 1분간 묵념을 한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6·25전쟁 유엔군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의 일환이다. 이는 전 세계 사람들이 아직도 6·25전쟁과 참전 용사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확실한 표시이다. 곧 다가오는 1111, 참전 용사들의 도움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그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경기도 연천에 있는 유엔군 화장장 시설. 6·25전쟁 때 이 시설 주변에서 고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수많은 유엔군이 전사했다.
경기도 연천에 있는 유엔군 화장장 시설. 6·25전쟁 때 이 시설 주변에서 고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수많은 유엔군이 전사했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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