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UAE정부, 정식협정化·국회 비준동의 요구 일관…임종석-칼둔 논의예정"
"2009년 400억$ 원전수주 때 맺은 MOU, 아크부대 파견·UAE 유사시 지원 내용"
"비준 수용시 중동 인근국가와 관계악화, 거절시 UAE 협력관계 파국 우려돼"
靑 "UAE 왕세제 訪韓 관련 소통 중"확인하면서도 "그간 상황 변한것 없다" 부인

'적폐 청산'을 내건 문재인 정권이 아랍에미리트(UAE)가 이명박 정부 때 한국과 체결했던 비공개 군사 양해각서(MOU)에 대해 수정을 요구했다가, 결국 커다란 역풍을 맞는 모양새다. UAE와의 외교적 마찰음이 8개월여 만에 재발했다는 정황이 28일 보도됐다.

앞서 지난해 12월9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교 단절설'이 돌던 UAE로 비밀리에 특사 파견된 지 하루 만에야 알려지고, 이듬해 연초 UAE 왕세제의 최측근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방한(訪韓)하는 외교적 사건이 있었지만 정부가 진상 확인을 꺼린 채로 일단락된 바 있다.

28일 조선일보 등에 따르면, UAE는 현재 이명박 정부와의 군사MOU를 '정식 군사협정'으로 전환하고 '국회 비준 동의'도 받아줄 것을 문재인 정권에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는 국회 비준동의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청와대 및 외교 채널을 통해 협의로 해결하자고 설득하고 있지만, UAE 측이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9일 오후 청와대에서 아랍에미리트 왕세제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9일 오후 청와대에서 아랍에미리트 왕세제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앞서 문재인 정권은 지난해 말 문제의 군사MOU를 수정하자고 요구했다가 UAE와 외교 마찰을 빚었다. 지난해 11월 송영무 국방장관이 UAE를 방문해서 군사 협약 수정을 제의한 것이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송영무 장관의 제의 이후 UAE 측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같은달 말부터 UAE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각종 사업에 제동이 걸리면서 '경고 신호'가 감지됐다. 그러자 임종석 비서실장이 12월 '몰래 특사' 방문했고, 이듬해 1월 문재인 대통령이 특사로 방한한 칼둔 청장과 면담 후 UAE 답방까지 해 갈등을 봉합한 듯했지만 재차 외교 마찰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는 400억달러(약 44조4000억원) 규모의 UAE 원전을 수주하면서 아크부대 파견을 포함해 유사시 한국군이 UAE를 지원하는 내용의 군사 MOU를 체결한 것으로 사후 드러났다.

UAE에 대한 군사 지원은 중동 인근국가들의 반발을 살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이라 비공개 MOU 형태로 이뤄졌다. 당시 군사협력을 추진했던 김태영 전 국방장관은 "국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MOU에 문제가 있다며 UAE에 수정을 요구했고, 결국 문 대통령까지 직접 UAE로 행차해 무함마드 왕세제와 양국 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탈(脫)원전 기조와 다른 '바라카 한국형 원전 찬양'으로 수습에 나서는 모습마저 보였다.

반면 UAE 정부는 이후 양국간 협의 과정에서 MOU를 구체적 군사협정으로 전환하고 국회 비준동의를 받을 것을 계속해서 요구했다고 한다. 비밀 협정 차원이 아닌 '국가 공인' 협정으로 격상시키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유사시 UAE에 대한 우리의 군사 지원과 개입 문제가 표면화될 경우 다른 중동 국가들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민적 동의를 받기도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월9일 오후 서울 성북동 가구박물관에서 방한 중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을 만나 면담을 마친 후 함께 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월9일 오후 서울 성북동 가구박물관에서 방한 중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을 만나 면담을 마친 후 함께 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임 실장은 UAE 2인자인 칼둔 아부다비 행정청장과 조만간 전화 통화를 갖고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칼둔 청장이 임 실장과 통화에서도 국회 비준 동의를 계속 요구할 경우 현 정권은 상당한 외교적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 

조선일보는 "국회가 이를 비준동의할 경우, UAE와 갈등 구도를 이뤄온 이란·카타르 등 다른 중동 국가와의 관계에 악영향이 초래될 위험성이 있다"며 "반면 UAE의 요구를 섣불리 거절할 경우 바라카 원전 수출과 아크부대 파병 등을 통해서 구축해 온 UAE와의 경제·국방 협력 관계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야권에선 "국익이 걸린 민감한 외교 문제를 '적폐 청산'으로 몰다가 부메랑을 맞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28일 청와대는 무하마드 UAE 왕세제 방한을 협의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문 대통령의 3월 UAE 방문 이후 협정 관련 새로운 상황은 없다며 조선일보 보도를 부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임 실장과 칼둔 청장의 소통은 3월 (문 대통령의 UAE) 방문 이후 수시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방문 당시 UAE 왕세제를 초청했다. 왕세제 방한과 관련된 소통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문 대통령이 앞서 1월10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UAE 관련 언급을 했던 것을 거론하며 "그 당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지난 3월 UAE 방문 이후 현재 새로운 상황은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간담회 당시 '한국-UAE 간 협정 부분을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공개되지 않은 협정이나 MOU의 내용 속에 흠결이 있을 수 있다면 앞으로 시간을 두고 UAE 측과 수정하거나 보완하는 문제를 협의해 나가겠다"고 보완 협상의 여지를 남긴 바 있다.

임 실장의 경우 이날 오전 현안점검회의에서 조선일보 보도를 접한 뒤 "기존 상황에서 변화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이런 기사가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전했다. 

김 대변인은 "이 문제와 관련해 지난 3월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한·UAE) 두 나라 간에 타결이 지어진 상황 이후로 문제 제기 혹은 논의가 일절 없었다"고 보도 내용을 거듭 부인했다.

다만 '지난 3월 이후 임 비서실장과 칼둔 청장이 따로 통화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두 분이 가까운 사이니 통화를 했을 수도 있다. 다만 통화 여부를 확인하지는 않았다"며 "앞서 (UAE 측) 장관들이 방문해 임 실장과 칼둔 청장 사이에 안부 인사를 전달하는 것은 목격했다"고 답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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