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권 칼럼] 만연하는 좌파적 경제인식
[현진권 칼럼] 만연하는 좌파적 경제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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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한국 국회의원 경제 인식은 좌파적...대한민국 경제정체성에 무지
개인에게 소중한 가치를 두는 체제가 시장체제고, 이를 사상적 관점에서 표현한 것이 ‘자유주의’
좌파적 사고는 집단에 가치를 두고 있어 집단 간 격차를 확대재생산하여 집단 간의 미움과 질시를 유도
소득주도성장의 근본철학은 나눔의 정책이지 경제성장을 이끌 수 없는 이론
현진권 객원 칼럼니스트
현진권 객원 칼럼니스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이른바 ‘삼성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발언내용의 핵심은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 협력업체 착취, 양극화, 사회적 책임 등이다. 기업과 시장경제에 대한 이 같은 반감은 홍 원내대표 개인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아마 여당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물론 자유한국당의 많은 의원들도 이러한 인식을 같이 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경제에 대해 ‘좌파적’ 인식 수준을 갖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경제 정체성에 대한 이해 역시 무지에 가깝다. 흔히들 우리의 경제체제를 ‘자본주의’라고 하지만, 이 용어는 본질을 왜곡하는 폐단이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체제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구분하지만, 이는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 경제체제의 기초사상의 출발은 ‘개인’과 ‘집단’에서 출발한다. 개인에게 소중한 가치를 두는 체제가 시장체제고, 이를 사상적 관점에서 표현한 것이 ‘자유주의’다. 자유는 개인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개념이다. 반면 사회주의는 ‘집단’에 가치를 둔다. 전체를 집단으로 나누는 것에서 사회주의 사상이 출발한다. 나눠진 집단은 협력과 타협의 대상이 아닌 미움과 투쟁의 대상이 된다. 자유주의 체제를 표현하는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사회를 자본편과 노동편으로 나누자는 의도다. 자본주의는 좌파진영에서 만들어낸 우파진영의 이름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권력우위라는 집단관계를 설명하는 것이지 우파진영의 핵심사상과는 무관하다. 

좌파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집단 간의 격차를 과대평가하고, 확대 재생산해서 집단 간의 미움과 질시를 유도해 낸다.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삼성의 영영이익이 20조원에 이른다는 수치를 통해 대기업의 경제횡포 행위를 사실화한다. 이런 ‘갑질’하는 대기업의 탐욕스러운 행위를 정부가 규제하는 것이 정의로운 정책으로 포장이 된다. 현 정부의 경제철학인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대기업과 부자들에겐 세금과 규제로서 경제행위를 억제하고, 상대적으로 약자계층에 복지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좌파적 인사들은 집단 간 격차만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전체 집단이 발전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있어도 애써 무시한다. 홍 원내대표는 국민총소득에서 기업소득에 비해 가계소득의 몫이 낮아진다는 수치를 통해 ‘대기업의 협력업체에 대한 착취’라는 개념을 끌어냈다. OECD 국가들의 1996년-2016년 기간 동안의 추세와 비교함으로써 우리의 기업소득 비중의 상대적으로 높은 증가속도를 통해 탐욕스런 기업 이미지도 만들어냈다. 그들은 20년 동안의 변화를 통해 오로지 상대적인 분배구조만을 보지, 20년 동안 우리의 국민총소득은 거의 3배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좌파적 사고에 빠진 사람들은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 현 정부도 소득주도성장을 주장하고 있지만, 소득주도성장의 근본철학은 나눔의 정책이지 경제성장을 이끌 수 없는 이론이다. 그래서 주류경제학에서 가르치지 않는 거다. 소득주도성장 이론이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는 이론이라면, 아마 이 세상에 못사는 국가는 없을 것이다. 대기업과 부자들에 세금과 규제를 통해서 경제약자들에게 복지를 확대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면, 아마 베네수엘라는 이미 경제 강국이 돼야 했다.

좌파인사들은 한 국가의 문명발전에 기업이 얼마나 소중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없다. 경제자유는 기업을 통해 구체화되고, 기업은 이윤창출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고, 끊임없는 이윤추구 행위로 인해, 그 국가가 경제발전하게 된다. 국가의 경제번영은 양적인 개념이 아니고, 질적인 개념이다. 한 집안에서 한 대의 전화기를 공유하는 세상에서, 이제 개인별로 스마트폰이란 컴퓨터를 한 대씩 가지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상은 기업의 이윤추구행위로 파생된 세상의 변화이고, 이것이 곧 문명의 발전이다. 

모든 기업이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삼성도 중소기업에서 출발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시련을 거치며 다행스럽게 전 세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우리가 삼성 같은 대기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먼저 시기와 질투를 유발해서 국가발전의 에너지원을 지우려고 한다. 

모든 게 시장경제와 기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발언이고, 정책이다. 국가의 흥망과정을 역사적인 실증자료로 규명한 유명한 경제서적인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국가의 경제발전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망한 국가는 착취적 제도를 선택한 반면, 흥한 국가는 포용적이고 건설적인 제도를 선택했다. 좌파적 사고를 바탕으로 삼성을 비판하고,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혁신해서 양극화를 해결하겠다는 정책은 착취적 제도이고, 이는 곧 한국의 경제를 망치는 길이다.

현진권 객원 칼럼니스트(前 자유경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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