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48억원을 들여 올해 연말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는 정율성(1914∼1976) 역사공원 조성 사업이 시민사회를 둘로 갈라놓고 있다. 광주 출신 작곡가로 평생 중국공산당원으로 활약했던 정율성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황해도 해주 노동당 선전부장, 보안간부훈련대대부 협주단 단장 등을 지냈다. 6.25전쟁 당시엔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에 맞선 북한 인민군 군가를 작곡했다. 이런 인물을 대한민국이 기념하는 게 온당한가라는 지적이 광주 시민사회에서도 나오는 가운데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22일 입장문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그를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기념한다는 것은 5.18 묘역에 잠들어 계신 민주주의 투사들을 욕보이는 일"이라고 반대하고 나서 파문은 더욱 커질 조짐이다.

배훈천 광주 시민회의 대표는 22일 페이스북 등에 게재한 글에서 "최근 광주시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에 속도를 내 연말께 완공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반공 인종주의자들의 비난이 준동하고 있다"며 "이들은 '공산주의자 정율성의 우상화'란 표현을 통해 광주라는 도시를 김일성을 우상화한 북한과 겹쳐 보이게 하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광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인상 깊게 비판해 지난 대선 전후로 큰 주목을 받기도 한 배 대표는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며, 14억 중국 인구 중 10억 명 이상이 그의 노래를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는 세계적인 음악가 정율성을 그의 고향에서 자랑스러워하며 기념하는 것이 왜 논란거리가 되는가?"라며 "독립운동가를 대함에 있어 국적과 사상으로 재단해서 배척하고 그 업적을 부정하는 것은 지극히 좌파적인 편협함이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 대표는 정율성이 6.25전쟁에 참전했고 전쟁 전후로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와 북한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만들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민족상잔의 비극에 군인으로 동원됐다는 사실만으로 죄를 논하면 이로부터 자유로운 이가 누가 있을까?"라고 강변하며 "케케묵은 냉전적 사고에서 한 걸음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정율성은 2개 국가의 공식 군가를 작곡한 세계적으로 유일한 작곡가라는 평가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를 가리켜 "중국의 인민 음악가 정율성을 기념하는 것이 국가 정체성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후 인종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주 대표는 지난 17일 자유일보 칼럼에서 "호남의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기업과 시장 질서를 거부하는 논리를 펼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국가 정체성의 왜곡은 더욱 위험하다. 광주광역시에는 중국의 인민 음악가 정율성을 기념하는 도로명과 조형물 등이 설치돼 있다. 광주 출신이라는 점을 이유로 꼽지만, 정율성은 공산주의자였고 6·25 당시 인민군의 일원으로 내려왔으며 중국 공산당에 충성하는 당원으로 살다가 죽었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반란군인 것"이라고 개탄했다.

배 대표는 주 대표의 이런 칼럼에 대해 "몸에서 팔과 다리를 떼어놓듯 이념 성향으로 호남과 대한민국을 분리해 대립구조로 몰아가는 논리가 공론의 장에서 버젓이 통용된다"며 "고향 출신임을 내세워 공공연히 고향을 비하하는 말과 글로 명망을 얻어 연명하는 자를 우리는 '매향노賣鄕奴'라 부른다.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을 키워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를 문명인은 '인종주의'라며 배척한다"고 맹비난했다. 

주 대표는 지난해 7월 11일자 펜앤드마이크 칼럼에서도 구체적 사례를 풍부히 활용해가면서 "호남 문제를 대개 지역 문제라고 판단한다. 지역감정, 지역갈등 등이 그 일반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호남의 문제는 지역이라는 외피 아래 숨어있는 전근대성과 좌파 이념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즉, 호남은 산업화 등 근대화 과정에서의 소외를 연원으로 하는, 반근대 반대한민국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광주와 호남도 민주당과 좌파의 정치에 대해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40% 정도의 불만 세력은 존재한다. 문제는 그 40%가 선거에서 직접적인 표심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파 정당에는 표를 줄 수 없다'는 금기 의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주 대표는 "광주에는 금기(taboo)가 많다. 5.18을 비판하는 것은 절대 금기고, 민주당 아닌 다른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종북세력이나 북한, 중국을 비판하는 것도 금기다. 얼마 전 우파 시민들이 광주의 중공 음악가 정율성 기념행사 등을 비판하자 지역언론이 여기에 대해 예민하게 반박한 것이 그런 사례"라며 "이승만 박정희를 옹호하는 것도, 기업 활동을 옹호하는 것도 금기이다. 복합 쇼핑몰 부재도 기업 활동에 대한 금기의식의 결과이다. 이런 금기의 총체적인 귀결이 반대한민국 정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필자는 호남 혐오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남들이 활동을 그만둘 나이에 새롭게 현실 참여와 발언에 나섰다. 현재의 의견과 생각은 그런 고민의 연장선"이라며 "호남이 혐오와 소외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호남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라고 했다.

광주시의 정율성 기념 사업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 과정에서 배 대표는 주 대표를 향해 "공공연한 호남 혐오 발언"이라며 "공공장소 흉기 난동과 같은 행위"라고 원색 비난하기까지 했다. 한쪽에선 호남 혐오를 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다른 한쪽에선 호남 혐오를 극복하자고 외치고 있는 형국인데, 배 대표는 정율성으로 대표되는 '호남 정신'을 자랑스러워하며 기념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주 대표는 반대한민국 정서에서 벗어나 '호남 혐오 현상'을 극복하자는 입장에 서있다.

22일 펜앤드마이크 취재에 응한 호남 출신 인사들은 "개인 입장으로선 정율성을 좋아하고 존경할 수 있다"면서도 "역사적 해석과 국가적 기념대상은 분리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적 해석의 영역은 자유롭게 열려있어야 하지만 6.25전쟁 때 중공군에서 선전활동했던 인물까지 국가 세금으로 기념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22일 "정율성은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다"라며 "민족의 비극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위문공연단을 조직해 중공군을 위로한 사람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민족을 저버리고 중국으로 귀화해 중국 공산당을 위한 작품을 쓰며 중국인으로 생애를 마쳤다"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조국의 산천과 부모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공산군 응원 대장이었던 사람이기에 그는 당연히 독립유공자로 인정될 수 없었다"며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자유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앞장섰던 사람을 우리 국민 세금으로 기념하려 하는 광주시의 계획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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