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 눈에 비친 한국전쟁.2021.06.25(사진=연합뉴스, 일부편집=조주형 기자)
종군기자 눈에 비친 한국전쟁.2021.06.25(사진=연합뉴스, 일부편집=조주형 기자)

지금으로부터 73년 전인 1950년 6월25일은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민족 최대의 비극이 시작된 이래로 그 상처를 일으킨 잊지 못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 전사자'(생사 불명의 '국군 포로'로 정부는 이들을 '국군전사자'로 지칭)는 무려 12만1879명(UN 산하 북한인권정보센터인 COI는 8만2000여명으로 추정)이다. 남은 가족들은 아직도 그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 지켜보는 이를 안타깝게 만든다. 

윤석열 정부는 이들 돌아오지 못한 국군 전사자들에 대하여 국가보훈부(신임 장관 박민식)를 통해 '끝까지 찾아야 할 121879 태극기'라고 보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했다. 그들을 위해  '끝까지 기억하는 국민, 끝까지 책임지는 나라'라는 슬로건도 내걸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북한에서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의 존재는 매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지난 1994년 조창호(故) 육군소위를 시작으로 북한에서 자력 탈출하여 돌아와 생존한 극소수의 국군용사들은 지난 6일 현충일 현재 13명에 불과하다. 

4년 전부터 기자는 그들 중 한사람인 유영복 씨를 통해  '국군포로 귀환용사'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로 작성하고 있다.

13명 가운데 대외활동이 가능한 용사는 8명이 채 되지 않고, 이들 중에서도 꾸준히 국군포로 귀환용사들의 이야기를 밝혀오던 이가 바로 1930년 서울 출생(호적상, 실제 1929년생)인 유영복 (劉永福) 씨다.  그는 강원도 김화 전투에서 육군 제5사단 28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번 6.25전쟁 73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이야기를 다시금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유 씨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기록하는 이유는 어쩌면 훗날 기사로 작성한 이같은 기록물이  '국군포로'로 북한에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소중한 사료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기자는 현충일 전날인 지난 6월5일, 수도권 도심지 외곽에 위치한 국군포로 귀환용사 유영복 씨의 집을 찾았다. 지난 4년 전부터 매해 그를 찾아가는 또다른 이유는, 그를 만날 때마다 다르게 변해가는 노령의 나이에 어쩌면 내년을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함 때문이기도 하다. 

유 씨는 이날 기자의 손을 붙잡으며 연신 "올해에도 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고맙다"라면서도 "이제 내 정신이 왔다갔다해서 하루하루가 정말 많이 다른데, 어쩌면 나에게도 남은 날이 길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도 "조국 방위에 힘써달라"면서 "지금, 어쩌면 이제 내게 남은 마지막 일은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용사들을 기억할 수 있는 작은 추모탑이라도 세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라는 말을 기자에게 남겼다.

기자는 지난 현충일 전날인 5일 수도권 일대 도심지 외곽에 위치한 국군포로 귀환용사 유영복 씨의 자택을 찾았다. 2023.06.06(사진=조주형 기자)
현충일 전날인 지난 5일 자택에서 만난 국군포로 귀환용사 유영복 씨. 2023.06.06(사진=조주형 기자)

그는 지난 1950년 서울 마포일대에서 조선인민군에 의하여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국군에 입대, 육군5사단 소속 소총병(군번9395049)으로 전투를 치렀다. 그리고 격전지였던 강원도 김화전투에서 중공군에 의해 억류되었다.

북한에 포로신세로 끌려가서는 검덕광산에서 탄광 광부로 억류되었다가 2000년 여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북한군에 의하여 찢어진 그의 가족 역시 찢어졌고, 어머니는 북한에서 사망했다. 어머니와 생이별한 그의 아버지는 서울에서 내리 50년 동안 그를 기다리다 그의 귀환을 확인하고서 불과 몇달만에 눈을 감고 말았다. 그같은 그의 이야기는 <펜앤드마이크>에 여러 편에 걸쳐 소개되었다.

6.25 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이 코앞에 다가와서인지 유 씨는 기자에게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 초청을 받아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으며 마지막 남은 그의 추모탑에 대한 이야기를 박민식 보훈부장관(당시 보훈처장)이 직접 챙기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동안 여러 대통령들을 만나봤지만, 그때만큼 고마웠던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또 지난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정부로부터 초청을 받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와 나눴던 이야기로, 그 일부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그동안 잘지내셨습니까?
▲내 정신이 이제는 온전치가 못해서 그런지 이제 하루하루가 많이 다르다. 올해에는 다리까지 아파서 아예 꼼짝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재밌는 이야기들은 많이 썼는가? 그러잖아도 궁금했다오. 혹시, 우리 국군포로 용사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되가고 있나...했지. 참, 내가 지난해 6월24일 경, 유엔 참전용사들과 국군 용사들을 정부가 초대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갔단 말이지. 거기에 (윤석열)대통령이 있더라고.

-윤석열 대통령이 어떻게, 알아보던가요?
▲정부 사람들이 나를 (윤석열)대통령이 앉은 원탁에다가 앉혀 주었어. 나도 그렇게 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그동안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여러 대통령과 만나는 봤지만 이렇게 직접 그 옆에 앉게 될 줄은 몰랐어. 이 자리에는 국방부장관(이종섭 장관)하고 보훈처장(오늘의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있었지. 다른 분들은 또 다른 원탁에 앉았는데, 이때 대통령이 먼저 질문하시더라고. 

-윤석열 대통령과는 무슨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그게, 나도 처음에는 좀 놀랬는데 그때 그 초청행사가 국군용사 관련한 것이다보니 1953년 6월 강원도 김화전투 이야기를 하게 됐어. 그때 중공군이 쳐들어와서 많이 죽고(전사) 다치고 그랬던 우리 전우들 이야기...그러다가 내가 기억하는게, 대통령께서 국방부 장관에게 뭔 이야기를 했었는데...전쟁기념관 앞에서 국군포로 유가족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그걸 들어주면 안되겠느냐는 내용 같았지. 나는, 국군용사로 참전했는데 북한에 억류되어 지금은 억울하게 죽었는지 어떻게 됐는지도 알길이 없는 우리 국군포로 용사들, 그들에 대한 추모 관련비 등을 하나 세워주시면 안되겠느냐고 말했어.

-국군포로 추모 관련 이야기를 말씀하신 것이군요?
▲그랬던 것 같아. 그랬지...그러니까 그때 박민식 보훈처장(현 국가보훈부장관)이 수첩을 직접 꺼내서 그걸 적더라구.  그때 그가 '참고를 하겠습니다'라고 했던 것 같아. 역대 정부 관계자들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렇게 펜을 꺼내서 수첩에 쓰는 분이 거의 없으셨는데...아무튼 그때 세번째(이야기)로는 그때 원탁에서 이런 이야기도 있었어. 전쟁기념관 관리를 누가 하느냐, 그런 것이었어. 어느 장관이 하느냐, 그런 이야기였고, 그때 옆에 같이 갔던 직원이 놀랐는지 멈칫멈칫 하더라고. 내가 언제 대통령이나 보훈처장 만날 기회가 있겠어. 이럴때 이야기를...아니, 북한 당국이 국군포로는 한명도 없다고 주장하는데, 말이 안되는 억지이지. 그러니까 귀환 용사로서 북한에 억류되었던 국군포로가 있었다는 걸 알려야 하지 않겠어?

기자는 지난 5일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씨를 통해 그의 귀환 신고 사진을 확인했다. 2021.06.19(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씨의 귀환 신고 사진. 2021.06.19(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관가 소식을 들어보니, 전쟁기념관 그러니까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에서 국군포로 관련 사업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기관이 자체적인 예산을 편성해서 6.25전쟁 중 있었던 국군포로 기념전시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내가 그때, 이게 국군포로 문제를 국방부 군비통제과인가에서 하는데, 사람이 부족 맨날. 이번에는 새로 사람이 와서 만나본지 며칠이 안됐어. 며칠 전에도 만나서 이야기들 또 들어보고 그랬는데, 전쟁기념관에 우리 국군포로 관련해서 그런 걸 하나 만든다고 하는데 그게 그건가봐.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한테 들어보니까 국가보훈처에서는 나름대로 현충원 등에 국군포로 추모탑을 세우겠다는, 그렇게 말하더라구. 그래서 '그렇구나' 했는데...이게 언제 세우는지 모르겠는데, 이게 성사가 되고 있는가봐. 나는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고만 있지.

-최근 실시한 한미연합 합동화력격멸훈련이나 평택 한미연합사령부(CFC) 등에 대해 정부 초청도 있었을 법 한데요.                                                                                             ▲내가 최근에, 국방부에서 모임이 있었어. 그러니까 평택에 미군 기지를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그때 귀환용사들을 초청했더라고. 그런데 이게, 귀환용사들이 8명 밖에 안왔어요. 이제 다 돌아가서(돌아가셔서) 13명 밖에 안남아 있잖아? 생존자가 13명인데, 그 중에서도 그나마 온 사람들이 8명인거지. 이제 남은 사람들은 움직이도 못하고 하니까 인근부대에서 도와줬지만...이번 15일(6월15일)에는 북부 어디에서 무슨 포 사격? 그런 걸 한다는데, 대통령(윤석열)도 오시는 것 같다데요. 내가 그래서 그날 또 가게 됐단 말이야. 이쪽 부대에서 데리고 갔는데. 그런데 그것도 그렇지만, 추모비(추모탑) 관련해서 그건 몇번 이야기를 해서 성사가 될 것으로 정부사람들이 이야기 하더란말이야.

-국군포로 추모비 말씀이십니까? 그, 보훈처장이 원탁에서 수첩에 적어갔다는...
▲맞아. 그게 성사되는가 하고 있는거지 나는. 그게 왜 자꾸 기억에 나느냐면 말이지. 그동안 전직 대통령들은 참전 용사를 초청해도 뒷자리에 앉혔는데 이번(지난해 6월 초청행사)에는 원탁에다가 떡하니 앉혀서 대통령(윤석열)이 직접 참전 용사들에게 이야기도 하고, 또 정부 사람들이 귀환 용사들을 직접 소개도 해주고, 그러더란 말이야. 그때 국군포로 귀환용사가 나 포함 세사람이 초대가 됐어.  그때 김00이라는 사람하고, 이00이라는 용사하고 나하고 초대가 되었는데, 자리 배치부터 아주 인상깊었어.

-대통령 옆에 계시니 조금 떨리셨을 것 같은데...어떠셨는지요?
▲나는 그때 겸손하게 가만히 앉아 있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대통령(윤석열)이 먼저 들더라고(식사를 청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놀랬는데, 그때 이야기가 그렇게 됐었어요. 그때 옆에 있던 박민식 처장이 수첩을 꺼내서 이야기들을 적으시고, 그 다음 국방부장관(이종섭)으로, 이렇게...그때 이야기 나온게, 전쟁기념관에 우리 국군포로 귀환용사 그러니까 국군포로에 관한 관련 전시칸, 이런걸 하나 만든다고 말을 하더라고. 그러고서 또 국군포로 추모탑 현충원 등 관련해서도 보훈처장하고 해서 '성사시키자' 이렇게 이야기가 되더라고.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되는가...하고 있었는데. 아무튼 언제 어떻게 될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리됐어 이야기가.

-그런데, 이제 국군포로 귀환용사 분들이 8명만이 남아계신건가요? 그동안 많이...
▲이제 다 돌아가시고 13명 남았는데 그나마도 8명만이 이번 행사에 나왔어. 그나마도 저하고 남은 김00은 겨우 걸어다닐 수 있는 정도야. 나머지는 휠체어를 타야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지.  그래서, 내 생각에 이제 앞으로 1년, 길면 2년...이제 국군포로 귀환용사들의 생명이 한계점에 온 것 같아. 북한에서 사라져간 국군포로들의 남은 유가족들이 마음을 좀 뭉쳤으면 좋겠어. 지금 잘 단합이 안되는데, 마음이 아프다오. 우리가 떠나고 나면 남은 가족들이 국군포로 귀환용사에 대한 정부의 추모비나 추모탑 이런걸 통해서 마음을 좀 추스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

-북한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국군 용사들을 UN에서는 8만2000명으로 대략 추산하는데, 아직 거의 대부분이 못돌아왔습니다.
▲그게, 6.25전쟁을 북한이 일으킨게 1950년 6월이야. 그때부터 거의 73년이 지났는데, 선생. 그동안 흘러간 시간만 따지더라도 북한에 생존자가 얼마나 남아 있겠어. 생존자가 있더라도 노령이고 하니 움직이기가 쉽잖겠지. 나도 이번에 무릎이 많이 아파서 병원을 가야 되는데 가기가 힘들어. 그래서 구급차를 불러야 하고... 주사도 맞고 그랬는데도 낫지를 못해. 병원에 가는 사람도 이제 국군포로 귀환 용사 중에는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야.  그만큼 많은 분들이 이제 떠나갈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지. 나도 어쩌면 내년, 길면 내후년...그러겠지. 글쎄, 조 기자 그러니까 조 선생은 활동하면서 우리 문제 어떻게 될거라고 보시는가?

2022년 6월24일 일자. 윤석열 대통령이 6·25전쟁 72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묵념하고 있다. 2022.6.24(사진=연합뉴스, 일부편집=조주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6·25전쟁 72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해 6월 2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묵념하고 있다. 2022.6.24(사진=연합뉴스, 일부편집=조주형 기자)

-제 일 자체가 글을 쓰는 것이니, 일단 열심히 기록으로 남기려 합니다. 
▲그래요. 사실 기자라는 게 글씨로 남기는 일 아니겠어? 어떻게 보셨나 모르겠네. 몇년 전에 문재인 정부 있었을 때하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서 국군포로 관련 문제에 대해 이번에 취임식에도 대통령이 초청을 해주시고 지난해 6월에도 초대해주시고 하는 거 보니 내가 고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대통령(윤석열)께서 그 자체로 관심을 가져주시니까 이 노인 입장에서는 정말 고맙지. 다들 노병들이고 한데, 잊혀가는 것 같은 이 전쟁에 대해 그래도 국가원수(윤석열 대통령)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지. 정말 많이 관심이 있으시다고 생각이 되는데... 다만 우리 전우들, 그때 싸우다 북한이라는 타지에서 사라져갔던 우리 전우들, 그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나지. 나도 이제 때가 오고 있나봐.

-그때(북한에 억류되던 시점) 함께 했던 전우들 생각이 요즘에도 많이 떠오르십니까?
▲아무렴. 벽동에 있었던 포로수용소, 그때 그놈들(북한군)이 우리 국군용사들을 잡아다가 강제로 인민군대에 편입을 시키고서 광산에 보냈어. 이리저리 탄광에 보내고 지하 깊은 곳 햇비도 안드는 곳에 보내고서 저들대로 '해방전사'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포장했어. 아예 이들은 처음부터 우리 국군용사들을 대한민국 정부에 넘길 생각이 없었단 말이지. 이 세월을 생각하면 좀 그래. 얼마나 많은 우리 용사들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김대중 정부 때 비전향 장기수들은 보내더니 정작 나라를 위해 싸웠던 우리 전우들은 고향도 아닌 타지에서 돌아가지도 못하고...그렇지 않겠소? 어쨌든 이번에도 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고마워.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없어. 이미 말했겠지만 어쩌면 내년이 될 수도, 그 내년이 될지 모르겠어...내가 갑자기 가더라도, 우리 국군포로 귀환용사들 부디 잊지 말아주시게.

유영복 씨는 이날도 기자에게 지난 2000년 여름 귀환 신고를 했었던 그때의 사진과 최근까지의 근황이 담긴 사진, 그리고 북한에서 가족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한번더 꺼내어 보여줬다. 그와의 이야기를 마친 후 내려가는 길, 그는 신발도 채 신고 않고서 떠나가는 기자에게 "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고맙다"라며 연신 손을 흔들기도 했다.

한편, 국군포로 귀환용사 유영복 씨에 관하여 <펜앤드마이크>가 그동안 연재해온 심층·단독 기사는 위 관련 기사 항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국가보훈처가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이하여 준비한 121879배지. 2023.06.02.(사진=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가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이하여 준비한 121879배지. 2023.06.02.(사진=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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