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특집③] 北억류 국군포로 귀환용사 단독 인터뷰 "추모탑 세워 우릴 잊지 말아달라"
[6·25특집③] 北억류 국군포로 귀환용사 단독 인터뷰 "추모탑 세워 우릴 잊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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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기자 눈에 비친 한국전쟁.2021.06.25(사진=연합뉴스)
종군기자 눈에 비친 한국전쟁.2021.06.25(사진=연합뉴스)

지금으로부터 72년 전인 1950년 6월25일은,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건국 이래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시작된 날이다.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으로부터 나라를 지켰지만, 전쟁의 참화 속에 무려 4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오는 등 아직도 그 아픔은 72년이 됐지만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쟁의 아픔은 그대로다. 사라져간 이들을 기억하는 일 또한 희미해져 가고 있어서다.

수많은 국군 장병들이 나라를 지키다 이름없는 산과 들이 되어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어떤 이들은 북한군에 억류돼 살아있는 것인지 그 행적조차 묘연하다.

바로 8만여명의 달하는 국군포로의 존재다. 지난 1994년 조창호(故) 소위를 시작으로 북한에서 자력 탈출한 이들 국군 포로 귀환 용사들은 어느덧 아흔 노인이 됐지만, 현재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이들은 불과 15명 남짓에 불과하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지금껏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은 무려 8만여명이지만, 북한은 이들의 존재를 모두 지웠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나라 정부 또한 이들의 귀환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시도하거나 성공시키지 못했고, 그러는 와중에 수많은 국군 포로들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채 북한 어느 이름없는 곳에서 잊혀져 갔다.

기자는 지난 5일, 수도권 도심지 외곽에 위치한 국군포로 귀환용사 유영복(1929년생, 호적상 1930년) 씨의 집을 찾았다. 앞서 지난해 6월7일, 20일, 25일자 기사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남긴 바 있다. 유 씨는 오랜만에 찾아온 기자에게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다"라며 연신 손을 잡았다.

기자는 지난 2019년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씨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2021.06.0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기자는 지난 2019년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씨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2021.06.06(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간략히 소개한다면, 유영복 씨는 1950년 서울 마포 일대에서 북한군에 의해 의용군으로 잡혀갔다가 간신히 탈출해 돌아와 국군으로 재입대해 육군 제5사단28연대 소속(군번9395049)으로 강원 김화 전투에서 중공군과 싸우다 억류됐다. 50년간 북한 검덕광산에 있다가 2000년 여름 국내로 돌아왔다.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은 그는 돌아와 헤어졌던 가족을 만났지만, 북한에서의 가족들은 고난 속에 세상을 떠나야 했다.

기자가 이날 만난 유영복 씨는 "이제 내게도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면서 "조국 방위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는 언론인이 되어주십시오"라고 거듭 말했다. 매해 만날때마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던 그는 이날도 "내게 마지막 남은 소원이 하나 있다면, 비록 돌아오지 못한 우리 국군포로들을 위해서라도 국방부나 전쟁기념관에 작은 추모탑이라도, 돌아오지 못한 자기들 아버지들 모시라는 명절의 작은 행사라도 그런 걸 해주시면 고맙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에 <펜앤드마이크>는 지난해부터 줄곧 국군포로 귀환용사들의 이야기를 실어왔다. 조국을 위해 싸웠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해 귀환신고를 하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인데도 72년 동안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점, 남은 이들의 흔적이라도 기록으로, 글씨로 남겨 그 존재가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다음은 지난 5일 기자가 국군포로 귀환용사 유영복 씨와 나눴던 대화 일부를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오랜만이에요. 그간 건강히 잘 지내셨습니까?
▲이제 아주 한해 한해가 달라요. 조 기자가 언제 왔더라...가만 보자. 아 맞다, 그때 왔었지 참. 잘 왔어요.

-일찍 미리미리 찾아뵈어야 하는데, 제가 많이 늦었습니다.
▲그래, 그때 가을에 한번, 겨울에 한번, 여름에도 오고 가을에 한번 또 오고 이번 겨울에는 왔었나. 그래. 그랬지 참. 아무튼. 그러면 그동안 많은 걸 좀 했었나. 그래 이번에는 뭘 쓰실 생각이신가.

기자는 지난 5일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씨를 통해 그의 귀환 신고 사진을 확인했다. 2021.06.19(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기자는 지난 5일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씨를 통해 그의 귀환 신고 사진을 확인했다. 2021.06.19(사진편집=조주형 기자)

유영복 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은 그전에도 있었지만, 그는 지난 해 코로나19 여파로 국방부가 챙겨왔던 여러가지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고 언급했다. 그나마도 박근혜 정부 때에는 사정이 괜찮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초대됐던 청와대에서 쓴소리를 한 이후 공교롭게도 코로나19 여파를 맞이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 이후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22년 5월)에 초대됐고, 국방부 행사도 시작될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에는 그의 이야기 중 '국군포로의 가족'에 대해서다.

-혹시 새 정부에 바라는, 그러니까 윤석열 정부에서 이것 정도는 추진했으면 하는 점이 있습니까.
▲내가 이미 조 기자한테도 이야기 했던 것이지만, 추모탑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우리 국군 용사들이 북한에 얼마나 많아요. 누구는 탈북을 하고서도 해외 대사관에 전화를 했는데 못도와주겠다는 답변을 듣지를 않나, 누구는 정보가 구멍이나서(새서) 잡혀가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그 때 우리나라 정부가 도와주지를 않았다고. 그때 우리 억류됐던 용사들 중에는 장교도 있었는데, 억류되어서도 살아나오기 위해 적진을 부수려다가 험한일을 당하기도 했는데, 벌써 70년이 지났다고요. 72년이지 참... 아무튼.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에서 억울하게 생을 잃은 사람들, 우리 용사들을 추모하는 그런 것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기, 그런 용사분들의 남은 유가족들이 우리나라에 100명이 넘어요. 추석이나 설날 명절 때 추모탑이라도 만들어주면 거기서 아버지 생각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예전에 말씀하셨던 그 전쟁기념관의 추모탑 설치 등도 마찬가지인지.
▲전쟁 기념관에 국군포로에 관한 한 칸만이라도 작게 만들어서 억울하게, 여기 이 사람들도 나라를 지켰던 사람들인데 북한에 억류됐다고. 이렇게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그런 역사를 국민들께...그런데 솔직히 2년 전인가, 최근 근래 5년 중에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에서 처음으로 제기를 했었어요. 그때 시계를 받아오고 그랬는데, 우리 국군포로 용사들 2명을 초대를 했었어요. 그런데 정작 북한에다가 이 문제를 제기하는 그런 모습은 없으니까 아쉬울 뿐이죠.

기자는 지난 5일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씨를 그의 자택에서 직접 만났다.2021.06.19(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기자는 지난 5일 국군귀환용사 유영복 씨를 그의 자택에서 직접 만났다.사진은 지난 2021년06월19일자 자료.(사진편집=조주형 기자)

- 예전에,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했을 당시 비전향 장기수 64명 이야기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만.
▲그때, 그게 벌써 잘못된 거죠. 그때 무슨 좌경적인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만났으니까 말은 해봐야 될거 아니오? 참... 그런데 아예 한마디도 담기지기 않았으니 원통해서 이거 어디. 이미 알겠지만, 그 때가 내 불쌍한 아내가 죽은지 6년이 되던 해였어요. 평생 죽는 날까지 변변한 옥수수 죽 한 그릇도 시원하게 먹이지 못했는데, 그 때 왜 아직도 나는 살아있나...그랬었는데, 그게 70이오. 이제 살만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때 얼마나 실망이 컸던지 몸이 아팠고...그때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와서 국군포로 말을 하나도 안담으시더라고. 아니글쎄, 남한 대통령이 와서 우리 국군포로 용사들, 한마디라도 해주시길 그토록 바랬건만...정말 대한민국 국민과 군대를 통솔하는 사람이 맞나 싶었어요. 이제 남은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 죽음의 땅에서...

- 힘들게 돌아오셨는데, 꼭 하고 싶으신 일이 있다면 말씀주십시오.
▲우리 국군포로들은 북한군과 싸우다 억류돼 온갖 고초를 겪으며 노역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살아생전에 늙어서라도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고대하고 모진 그간의 시련을 다 참아내면서 지냈건만...많은 사람들이 고향도 아닌 북한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중 일부는 죽은 후에라도 자기 자신을 조국 땅에 묻어달라고 했어요. 아직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의 유해, 꼭 조국의 품으로 모셔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많은 생을 어둠속에서 지낸 그들의 남은 가족들도 정부가 따뜻하게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정말로 목숨을 다바친 우리 국군 장병들을 나라가 끝까지 책임져야지 않겠습니까.

그와의 대화는 어느덧 여름날 저녁별을 보고서야 마무리됐다. 6.25전쟁이 시작된 날로부터 72년이 지났고, 그가 돌아온지도 햇수로 22년이다. 매년 볼때마다 달라져가는 그의 모습을 뒤로하면서, 그의 이야기는 계속 되겠지만, 그와의 생전 대화는 "조국 방위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는 언론인이 되어달라"던 목소리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직감도 느껴졌다.

한편, <펜앤드마이크>의 돌아오지 못한 국군 포로 심층 취재기를 비롯해 귀환 용사 유영복 씨와의 단독 인터뷰는 위 관련기사 항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영복 씨는 지난 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메모를 남겼다. 2022.06.05(사진=조주형 기자)
유영복 씨는 지난 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메모를 남겼다. 2022.06.05(사진=조주형 기자)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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