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장동 사건의 핵심 인물 김만배 씨와 각종 금전 거래를 한 중앙일보·한국일보·한겨레신문의 간부들이 각각 사표를 제출하거나 해고당했다. 그런데 이중 중앙의 조치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을 대표하는 일간지 중 하나인 중앙은 '김만배 금전거래 의혹'에 유일하게 연루된 메이저 언론이란 오명을 쓰게 됐음에도, 문제의 간부를 과감하게 해고하는 등의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표를 수리하는 데 그치는 등 미온적 태도만을 보이고 있다.

한겨레가 지난 10일 지면 1면에 "대표이사·편집국장 사퇴를 알려드립니다"란 제목으로 장문의 대국민사과문을 게재한 데 이어, 한국일보와 중앙도 13일 지면에 각각 입장표명적 성격의 사과문을 실었다. 그런데 한국일보는 한겨레와 마찬가지로 1면에 "독자와 국민께 깊이 사과드립니다"란 제목으로 실은 반면 중앙은 2면에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란 제목으로 게재했다.

신문의 1면과 후속 면의 화제성·집중도·편의성 차이를 고려했을 때, 중앙이 과연 김만배 금전거래 의혹에 자사 소속 간부가 연루됐다는 사실을 자신있게 '마주할 결심'을 굳히고 사과문을 게재했는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단 지적이다. 이에 반해 한겨레 및 한국일보는 사과문을 1면에 실었는데, 이로 인해 이 사건이 더 회자되고 회사의 단기적 이미지가 더욱 추락할 수 있음에도 김만배 금전거래 의혹과 '마주할 결심'을 굳히고 인정할 건 과감하게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일보는 해당 간부가 김만배 씨와 한 번 거래했음에도 1면에 사과문을 실었다. 하지만 중앙의 간부는 김만배 씨와 두 번이나 거래를 했음에도 2면에 사과문이 게재됐다. 이 간부는 2018년 8000만원을 김만배 씨에게 빌려줬다 이자 1000만원이 추가된 9000만원으로 되돌려 받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 간부가 김만배 씨로부터 1000만원을 그냥 받은 것과 다름이 없다. 이에 더해 2020년엔 김만배 씨로부터 1억원을 빌리기까지 했다. 중앙일보의 간부가 금전거래의 횟수와 규모가 더 큼에도 중앙은 2면에 사과문을 게재한 것이다. 중앙이 다소 비겁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중앙의 지면 크기는 299*432mm로 한국일보의 340*495mm보다 작다. 또한 다른 일간지들과 비교해서도 작은 편이다. 중앙은 작은 지면 크기 때문에 2면에 사과문을 실었다는 해명을 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 중앙은 1면에 299*125mm 크기의 4단 광고를 포함시켰다. 4단 광고는 기본 광고 규격으로 중앙의 총 6개 광고 형식 중 크기로는 4번째이지만 절대적인 넓이로 봤을 땐 결코 작지 않다. 김만배 금전거래 의혹 사건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중앙은 기존의 광고 크기를 줄이거나 빼서라도 1면에 사과문을 넣었어야 한단 지적이다.

또한 중앙이 해당 간부를 해고하거나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등의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표를 수리한 것도 문제란 평가다. 중앙은 사과문에서 "해당 간부는 조사 과정에서 도의적 책임을 진다며 11일 사표를 제출했고, 회사는 이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이는 문제의 간부를 해고 조치했던 한국일보와 한겨레와 비교했을 때 매우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로 비춰질 법하다.
아울러 재발 방지 대책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중앙은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한겨레가 입장문에서 '김현대 대표이사의 조기 퇴진, 류이근 편집국장의 보직 사퇴, 사내 진상조사위원회에 외부 인사를 포함시키겠다'라는 과감한 조치를 내놨고 한국일보는 "향후 윤리강령 정비와 이해충돌방지 교육 등 재발방지 대책을 충실히 마련하겠다"며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 반면, 중앙일보는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겠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신뢰받는 언론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만 적은 것이다.
중앙은 소위 '조·중·동' 트리오로 불리는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신문사이며 정치적 성향을 떼어 놓고 보더라도 전 언론계에서 손꼽히는 대형 언론사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봤듯 이번 김만배 금전거래 의혹에 대한 대응으로 한정했을 때 한겨레와 한국일보만도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앙이 치욕스러운 현실과 '마주할 결심'을 할 때만이 현재와는 다른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단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