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 SNS에 "내가 北 가게 되면 납치로 알고 구출해달라"
탈북 자체를 '기획'이라는 좌파 방송보도 직후 통일부 태도 바꿔 물의
탈북운동가들 "정치적 목적 위해 적국에 떠밀어 죽으라는 말"
"비릿한 피냄새나는 평화타령…탈북민들은 살기 위해 SNS 글올려"

지난 2016년 4월 집단 탈출했다고 알려진 북한 여종업원들이 중국 저장성 닝보의 북한식당 '류경'에서 근무할 당시 찍은 사진. 집단 탈북 후 2년여 만에 정권이 바뀐 가운데 통일부에서 "자유의사에 의한 탈북"을 부정하고 북송 가능성을 검토하는 듯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016년 4월 집단 탈출했다고 알려진 북한 여종업원들이 중국 저장성 닝보의 북한식당 '류경'에서 근무할 당시 찍은 사진. 집단 탈북 후 2년여 만에 정권이 바뀐 가운데 통일부에서 "자유의사에 의한 탈북"을 부정하고 북송 가능성을 검토하는 듯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16년 4월 중국 북한식당에서 집단 탈북한 종업원 등 13명에 대한 정부가 2년 지나 갑자기 "자유의사로 탈북했다"는 입장을 번복하고 북송 가능성까지 열어놓자, 공포심이 섞인 반발 여론이 일고 있다. 통일부는 최근 탈북 자체를 "국정원의 기획"이었다는 한 좌파 방송 보도가 나오자 마자, 북송 여부 등을 "면밀히 검토"할 대상으로 언급했다.

미국은 북한 억류 자국민 3명 송환을 관철시켜 '축제 분위기'인 가운데, 한국 정부는 북측과 접촉하면서 억류 국민 6명 송환을 공개 촉구하지도 않은 것은 물론 '국민'으로 정착한 탈북민을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는 설까지 제기되면서 파문이 더욱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 10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2016년 4월 중국 저장성 북한 류경식당에서 일하던 지배인과 종업원 13명의 탈북이 국정원의 기획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방송에서는 류경식당의 지배인이었던 허강일씨가 '목적지를 모른 채 국가정보원을 따라왔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12일 보도에서 ▲이 사건에 밝은 전직 공안기관 관계자가 "12명 중 1~2명이 한국행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따라왔을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도착 이후엔 한국에 정착해 살겠다는 뜻이 분명했다"고 말했다 ▲종업원 전원을 면담한 국정원 인권보호관(변호사)도 "13명 가운데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해당 종업원들은 경찰과 국정원의 협조 없이는 소재 파악이 힘들다", "언론을 피해온 이들이 갑자기 방송에서 '기획 탈북'을 주장하는 건 잘 납득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북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지배인 허씨가 '국정원이 약속한 탈북 대가를 주지 않는다'며 여러 차례 불만을 표시했고, '민변'을 중심으로 종업원 일부를 북송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꽤 오래전부터 가동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등 언급을 인용해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측 기류는 심상치 않다. 당초 좌파진영 '민변'의 국정원에 대한 '탈북 종업원 변호인 접견'(탈북민 신원 공개가 수반됨) 신청이 대법원에서 각하된 지난해 8월,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해외식당 종업원은 자유의사에 따라 입국했고 우리 국민을 북송할 근거는 없다"고 못박았다가 올해 문제의 JTBC 보도 직후 말을 바꿨다.

11일 백 대변인은 "입국 경위, 자유의사 등에 대한 지배인과 일부 종업원의 새로운 주장이 있다"면서 "그동안 종업원들이 면담에 응하지 않아 사실관계 파악에 한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북송 가능성 질문엔 "방송과 관련해 여러 가지 내용들이 있다. 그런 부분들을 저희가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날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탈북 종업원과 북한에 억류 중인 국민을 '교환'할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받고 "진전이 되면 말씀드리겠다"고 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논란이 확산되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억류 한국인 석방과 탈북 종업원 송환 문제는 연관된 문제가 아니고 그럴 계획도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12일 통일부는 "'탈북 종업원 북송 가능성 내비친 통일부'제하 보도는 잘못된 보도"라며 부인하고 나섰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 일부 캡처

13일 오후 1시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 내 '탈북자 식당 종업원 북송 검토를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북한은 세계최악의 인권말살 국가입니다!'라는 글에는 청원 게재 후 이틀이 지나 7600여명이 찬성했다. 복수의 탈북자 및 관련 단체 사람들은 '탈북 종업원'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이들의 신변에 중대한 위협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북한이 '체제 안전'을 위해 강경한 제재를 취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12일 "(종업원들이 북송되면) 단지 위험에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호랑이 굴에다가 넣는 격이다. 죽으라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탈북자들이 사형을 당해도 괜찮다는 것이냐"며 "한국에 도착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끌려간 탈북자도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는데 그들은 서울까지 왔으니 공개 처형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최정훈 자유수호연합 대표도 "(종업원들이 남한 사회는)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다'라고 하는 말 한 마디가 북한 주민들에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북한이 12명 모두 죽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탈북 가수 한옥정씨는 "왔다가 다시 (북으로) 돌아간다고 피해를 안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피해는 당연하게 받는다"고 지적했고, 탈북민 출신 여성 박사 1호 이애란씨는 "북한에는 아직도 정치범수용소가 있고 남한에 관련된 것은 반역으로 여겨진다"며 "(한국에서) 2년이나 살다가 왔는데 어떻게 대접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태희 자유인권탈북자연대 대표는 "이전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탈북 종업원들의 북송 문제를 대북)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말을 했다"며 "당시 탈북자 사이에서 상당한 파장이 있었다"고 했다. 탈북민-억류 국민 교환설이 나오는 데 대해 "억류 국민도 탈북 중업원도 모두 우리 국민"이라고 상기시켰다.

탈북민 출신 뮤지컬 감독 정성산씨는 "(탈북민 북송은) 국민을 어떻게 보면 적국인 북한에 떠밀어버리는 것"이라며 "기본권을 말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밖에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탈북민들이 미리 '북송 거부 선언'을 하는 등 친북적인 문재인 정부 하에서 북송 압력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드러내는 상황마저 조성되고 있다.

탈북민 출신 웹툰작가 최성국씨는 "만약 제가 제 의사에 따라 북으로 갔다는 뉴스를 접한다면 구출운동 꼭 좀 벌여달라. 저는 절대로 북한 갈 마음이 추호도 없다. 만약 있다면 여기 페북으로 먼저 가고싶다고 밝힐 것"이라며 "우리는 지금 언제 납치돼 북송될지 모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두려움을 호소했다.

"저주의 땅 북한을 떠나 2010년도 자유대한민국에 입국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탈북민 김신예씨는 "북한은 인간생존이 아닌 독재체제를 위한 살인마 집단"이라며 "(북송 검토설) 기사를 보고 같은 탈북민으로서 너무도 화가 나고 불안함에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저도, 아니 탈북민 전체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모르며 생각도 하기 싫은 납치나 끔찍한 일이 저한테 생겼을 경우 만약을 생각해 제 의지를 간단히 남기고자 한다"며 "사선을 헤쳐 내가 선택한 이 길이기에 쉽게 자유의 땅을 버리고 제 스스로가 절대 북으로 다시 가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납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북한 살인마 독재체제를 저주한다고 저는 소리쳐 말하고 싶다"며 "만약 저를 북한 방송선전매체나 기자회견에서 보시게 된다면, 입북(入北)이 아닌 납북(拉北)이라는 것을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그 어떤 회유나 강요 협박에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자유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북으로 갈 수가 없다"고 재강조했다.

사진=우원재 자유한국당 청년부대변인 페이스북 글 일부 캡처

이와 관련 우원재 자유한국당 청년부대변인은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탈북민들이 SNS에 글과 영상을 올리고 있다. 만약 본인이 본인의 의사에 따라 북으로 돌아갔다는 뉴스가 나온다면 꼭 구출운동을 해달라는 게시글이다. 본인은 절대로 북한에 돌아가고 싶지 않으며, 대한민국을 스스로의 의지로 떠날 일은 추호도 없으니, 혹시나 북송되게 되면 본인을 꼭 좀 구해달라는 절절한 호소"라고 밝혔다.

우원재 부대변인은 "탈북민들은 '기획탈북설'이라는 말도 '억지'라고 한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보낸 사람들이 단체로 망명을 하려는 경우 '국정원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재조사 운운하고 있고, 북송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니 황당하고, 또 두려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릿한 피냄새가 나는 이 '평화 타령'에 마냥 환호하는 대한민국에서, 그 어떤 시위도 비판도 김정은에게 호감이 간다며 보내는 대중의 박수갈채 속에 사라지는 이 상황에서, 탈북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SNS에 글을 올리는 것 뿐"이라고 참담한 심경을 드러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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