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경찰서, 집회 관련 민원인들에게 ‘편의’ 제공한답시고 지난 2012년부터 ‘불법가설물’ 설치해 운용
민원인 대기실로 사용돼 온 ‘불법가설물’ 내부, 벽면과 천정에서 물 새고 누전 위험 있는 등 안전상의 문제 많아 시민들은 ‘불편’ 토로
“대기실이 없어지면 불편해지는 것은 당신들뿐”...종로署 관계자들, 문제 제기한 시민들에 협박 아닌 협박 늘어놓기도 해

서울 종로경찰서(서장 박규석·총경)가 지난 8년여 간 불법가설물을 운영해 온 사실이 펜앤드마이크의 취재 결과 드러났다.

12일 펜앤드마이크와의 전화 통화에서 종로경찰서 측이 집회 신고자 대기장소로 쓰일 수 있도록 민원인들에게 제공해 온 가설물이 가설 건축물 신고 절차가 이뤄져 있지 않은 ‘불법가설물’임을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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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경찰서 민원봉사실. 사진 왼편에 지난 2012년 5월 종로경찰서 측이 임의로 설치한 ‘불법가설물’이 보인다.(사진=박순종 기자)

서울 종로구 안국동 소재 서울지방경찰청(청장 이용표·치안정감) 산하 종로경찰서 본청(本廳)에 딸린 민원봉사실의 정문을 바라보고 왼편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면 한두 사람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 면적의 작은 가설물이 설치돼 있다. 종로경찰서 동측 담장에 덧대는 방식으로 지난 2012년 5월4일 설치된 기역자(字) 모양의 해당 철제 구조물은 집회 신고를 기다리는 민원인들의 대기 장소로 사용돼 왔다. 당시 종로경찰서는 198만원의 예산을 들여 해당 가설물을 설치했다.

이 가설물과 관련해 시비가 붙은 것은 지난 5월26일로, 자유·우파 시민단체인 자유연대(대표 이희범) 측이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대변자 역할을 자임해 온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또는 약칭 ‘정대협’)가 지난 30여년 동안 집회를 개최해 온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 ‘일본군 위안부’ 동상(소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의 집회 개최 우선권을 획득해 앞으로 ‘정의기억연대’가 해당 장소에서 집회를 여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전한 펜앤드마이크의 단독 보도가 나간 바로 다음 날이었다.

민원인 대기실을 지켜온 시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전 종로경찰서에서 고용한 것으로 보이는 잡부(雜夫) 수 명이 가설물을 찾아와 가설물 유리창과 문 등에 붙어 있던 방한용(防寒用) 에어캡 등을 전부 떼어갔다.

제보를 받고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시민들은 “‘정의기억연대’에 대해 우리가 집회 개최 우선권을 확보한 데 대한 종로경찰서 측의 ‘정치 보복’이 틀림없다”며 “우리 활동을 경찰서가 방해하고자 한다”고 하소연했다. 잡부들이 철거한 에어캡 등은, 이전에 다른 민원인들이 붙여놓은 것으로, 대기실 내부가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종로경찰서 측의 조치는 대기실 내부 상황이 외부에 노출되게 함으로써 종로경찰서 지킴이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자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시민들의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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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신고자 대기실로 사용되고 있는 ‘불법가설물’의 내부 모습. 형광등이 설치됐던 것으로 보이는 천정의 구멍으로부터 새는 물을 흘려 내보내기 위한 대롱이 설치돼 있다. 그 옆으로 전선이 지나고 있다.(사진=박순종 기자)

이들은 또 “밤이면 수시로 좌파 측 관계자들이 대기실을 찾아와 정황을 살피고 간다”면서 “그때는 주로 여성 자원봉사자들이 대기실을 지키고 있는데, 저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려움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펜앤드마이크가 해당 가설물의 합법성 여부를 조사해 본 결과, 집회 신고 민원인 대기실로 사용돼 온 해당 가설물이 관할인 종로구 건축과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가설물’임이 드러난 것.

이같은 사실이 확인되자 종로경찰서 측은 해당 가설물에 대해 가설 건축물 신고 절차에 따라 신고를 준비하고 있다는 공식 답변을 내놨다. 지난 8년여 동안 어느 누구 하나 신경을 쓰지 않은 ‘불법가설물’이었지만, 문제가 제기되자 부랴부랴 대응책을 내놓은 셈이었다. 하지만 집회 신고를 위해 해당 대기실을 이용하고 있는 시민들은 대기 장소를 본청 청사 내부로 옮겨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펜앤드마이크에 제보를 한 시민들은 한결같이 “얼마 전 종로경찰서 서장(박규석 총경)이 현장을 다녀갔지만, 정작 이 대기실을 지키고 있는 민원인들에게는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았다”면서 “종로경찰서 직원들이 와서 ‘대기실은 철거가 예정돼 있으며, 이것이 없어지면 불편해지는 것은 당신들뿐’이라는 식으로 협박 아닌 협박도 늘어놓고 갔는데, 민원인을 이렇게 대우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등의 표현으로 종로경찰서 측에 가진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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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경찰서 서장 박규석 총경.(사진=종로경찰서)

그러면서 이들은 “벽면과 천정에서 물이 새고 있는 등 누전 위험이 있어 안전상 문제가 적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문제인 점은, 감시하는 인원도 없이 이렇게 비좁은 공간에 성향이 다른 이들을 몰아놓는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며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우리와 좌파 측 사람들을 그렇게 떼어놓으려 하는 종로경찰서가, 역설적이게도, 집회 신고 장소는 한 장소를 사용하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처사라고밖에 못 하겠다”고 했다.

한편, 종로구 건설과는 해당 ‘불법가설물’과 관련해 종로경찰서 측으로부터 어떤 공문도 접수한 바 없으며, 종로경찰서로부터 공문을 접수하면 실사(實査) 후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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