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때와 180도 달라진 현 여당 일각의 책임 전가
여권 일각 '홍준표 책임론', '색깔론·정쟁 자제 촉구'
문 대통령 "안전불감증은 청산할 적폐...모두 공동 책임 통감"
"과거 자신들의 무리한 정쟁몰이부터 사과해야" 여론 높아

지난해 12월21일 충북 제천에 있는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올해 1월 26일에는 경남 밀양의 세종병원에서 큰 불이 일어나 38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하는 대형 안전사고가 터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밀양 병원에 간 사이에는 서울 문래동에서 화재가 일어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직전인 4월 13일 대선후보로서 “안전 때문에 눈물 짓는 국민이 단 한명도 없게 만들겠습니다”고 다짐했다. 현 정권 출범 후 영흥도 낚싯배 전복, 제천 화재, 밀양 화재 등 대규모 인명희생을 동반한 대형 안전사고가 잇달아 발생한데 대해 청와대도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與圈) 일각에서 밀양 병원 화재참사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전 경남도지사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 야권에 책임을 돌리고 있어 눈총을 사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6일 밀양 병원 화재사고와 관련해 “(경남의) 직전 행정 최고 책임자가 누구였는지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 경남도지사를 사퇴한 홍준표 한국당 대표를 겨냥한 것이다. “우선 화재 원인을 밝혀야 한다”며 이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도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화재 예방에 꼭 필요한 경남지사를 뽑지도 못하게 꼼수 사퇴를 한 게 누구냐"고 비판했다. 민주당 표창원 의원과 최민희 전 의원 역시 '밀양 병원 화재'의 책임이 한국당에 있다는 식의 주장에 가세했다.

민주당은 또 잇달은 안전사고와 관련해 "정쟁으로 가서는 안된다"고도 강조했다. 박완주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8일 "밀양 화재 참사마저 색깔론 공세를 퍼붓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한국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제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국민들에게 이어진 참사가 야당에게는 정쟁의 수단일 뿐인지 묻고 싶다"며 "사고의 원인과 대처에 대해 정부를 향해 합리적인 비판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것 이상의 정치적 공격은 삼가야 한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연이어 발생한 대형 안전사고에 국정의 컨트롤타워로서 책임을 느낀다"고 밝히면서도 "누적된 관행이 단시간에 개선되지 않은 면이 있지만, 앞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 더욱 만전을 기하겠다"며 '누적된 관행'을 언급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9일 '안전불감증은 청산할 적폐'라고 언급하며 오늘날 실태에 대해 "모두 공동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근본 원인을 따지면 압축성장 과정에서 외형 성장에 치우치며 안전을 도외시한 과거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룩한 고도성장 그늘"이라며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안전한 나라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대두한 후에도 안전을 강화하는 데 마음을 모으지 못했고 속도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으며, 정부·지자체·국회 모두 공동 책임을 통감하며 지금부터라도 안전 한국을 만드는 데 마음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이어 "화재안전은 청와대에 화재안전대책 특별 태스크포스(TF) 구성을 논의해달라"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 수석보좌관회의 주재
문 대통령, 수석보좌관회의 주재

그러나 안전사고가 발생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정부 책임으로 몰아가거나 정쟁으로 불거져서는 안된다는 의견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과거 자신들이 야당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현 여권의 행태에 비판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현 여권이 안타까운 재난을 정략적으로 활용했던 모습과 비교하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한 네티즌은 “세월호, 제천화재, 밀양화재 등 모두 사고일뿐이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럼 현 여권이 야당이었던 이전 정권에 이런 사고들이 발생했으면 어떻게 말했을거냐”며 과거 세월호 사고에 대해 여론의 감정과잉을 부추기고 그러한 여론에 편승하여 정치적인 이득을 도모한 행태를 비판했다. 

여당 일부에서 제기한 ‘홍준표 책임론’에 대해서도 ‘무리한 책임전가’, ‘그럼 물러난 지 얼마가 지나고 나서부터야 남탓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거냐’는 비판도 나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8월 경남지사 권한대행에 한경호 세종시 행정부시장을 임명했다. 현 여권은 또 작년 12월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 때도 충청북도 도지사를 탓하지 않았다. 이시종 현 충북지사는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낸 여권 인사다.

일부 시민은 “세월호 침몰 때의 전남지사는 이낙연 현 국무총리였고 인천시장은 송영길 현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상기시킨 뒤  여권 일각에서 밀양 화재 참사의 책임을 경남지사에서 물러난지 1년 가까운 야당 대표에게 돌리는 식의 태도에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궤변"이라고 꼬집었다. 또 “국정의 책임을 져야하는 집권여당 정치인들이 무고한 인명희생을 동반한 대형 안전사고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도 시원찮을 판에 무조건 남의 탓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해 분노심과 적개심이 치밀어 오른다”거나 “비겁하다. 과거 행태에 비추어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무한책임을 스스로 느껴주기 바란다”는 지적도 잇달아 나왔다.

안전사고와 관련한 정치권의 정쟁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대표 겸 주필은 26일 정규재TV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밀양 화재와 관련해 “어찌 문 대통령 때문에 그렇겠나”라며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안전의식과 안전에 투입하는 낮은 비용부담율이 사고를 부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그러나 “세월호 부풀리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정권 잡은 다음 제일먼저 세월호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휘갈기던 행태 때문에 이런 사고들에 대해서조차 곱지않은 정치적 논평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문재인 정권은 세월호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에 대해 먼저 진지한 사과부터 내놔야 이런 후진국형 사고가 그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세월호를 정치에 끌어들인 교활한 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3월 10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팽목항을 방문해 방명록에 ‘고맙다’는 문구를 남겼다. 논란이 되자 이에 대해 문 후보자측은 “자신을 되돌아 볼 때마다 희생된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참 미안하고 정치인으로서 참 아프면서도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3월 10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팽목항을 방문해 방명록에 ‘고맙다’는 문구를 남겼다. 논란이 되자 문 후보자측은 "고마운 것은 그들의 가슴 아픈 죽음이 우리사회가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새로 깨닫고 거듭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고맙다는 말은 아무리 들어도 싫지 않은 아름다운 말 중에서도 으뜸으로, 상대에 대한 깊은 배려를 표현할 때 고맙다고 한다”며 “그 안에는 미안한 마음, 애틋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 도와주고 싶은 마음, 빚진 마음…수없이 다양한 좋은 마음이 녹아들어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등 현 집권세력이) 보수를 불태우겠다더니 대한민국을 불태우고 있다”고 비판한다. 현 여권이 과거 세월호 사건을 과도하게 정쟁화시켰던 행태가 집권 후 부메랑으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은 2016년 11월 26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하여 “경제 망치고 안보 망쳐온 가짜 보수 정치세력을 거대한 횃불로 모두 불태워 버리자”고 주장한 바 있다.

정치권의 정쟁과 관련해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번 밀양참사도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치권에서 서로 상대의 탓이라는 정쟁만 난무해 제대로된 원인분석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정치꾼들의 입에 국민들이 가볍게 몰려 다니는 것이 걱정.”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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