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법 김영아 판사, 1심서 심 前제독 등에 '재물 손괴죄' 벌금 100만원 선고
공소권남용-정당행위 불인정…'朴 인격권 침해' 항변에 "(개인의) 부정적인 견해" 치부
심 前제독 "더러운 잠을 건 게 잘못인가? 뗀 게 잘못인가?" 1심 불복 항소장 제출
재판에선 "文 국회 전시 유감표명, 표창원 징계도 있었다" "구체적 손괴는 타인이 했다"
민사 손배소에도 불리할듯…'더러운 잠' 작가가 원고, '통진당 이정희 남편' 등 변호인단

예비역 해군 준장인 심동보 전 제독(해사31기)이 '탄핵 정변'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2017년 1월 국회에 '버젓이' 걸려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성적(性的) 비하 논란을 낳은 풍자 누드화를 철거한 것 때문에 1심에서 벌금형 유죄를 선고받았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10단독 김영아 판사는 10일 심동보 전 제독에 대해 검찰의 벌금 100만원 구형을 그대로 받아 재물손괴죄로 벌금형 약식명령을 내렸다. 심 전 제독과 함께 행동했던 A씨(60)에게도 벌금 100만원형을 선고했다.

심 전 제독은 지난 2017년 1월24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용인시정·초선)이 같은달 20~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1층에서 주최한 '시국풍자 전시회-곧, BYE! 展'에 출품된 그림 '더러운 잠'을 벽면에서 떼어내 던졌다. 

법원에 따르면 '더러운 잠'을 4차례 바닥에 던져 액자를 부순 혐의를 받는다. 이어 같은 자리에 있던 A씨는 그림과 액자를 떼어낸 뒤 손으로 그림을 잡아 구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그림을 그린 이구영씨와 전시회를 주최한 표창원 의원의 무책임한 태도가 분노를 유발했다며 그림을 파손한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공소권 남용'이라고 주장해 왔다.

심동보 예비역 해군 제독이 지난 2017년 1월24일 국회 의원회관 1층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 전시회에 출품된 박근혜 당시 대통령 성적 비하 논란을 일으킨 '더러운 잠'을 벽면에서 떼어내 던지는 모습.(사진=TV조선, 연합뉴스)
심동보 예비역 해군 제독이 지난 2017년 1월24일 국회 의원회관 1층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 전시회에 출품된 박근혜 당시 대통령 성적 비하 논란을 일으킨 '더러운 잠'을 벽면에서 떼어내 던지는 모습.(사진=TV조선 캡처, 연합뉴스)

'더러운 잠'은 박 전 대통령의 얼굴을 '올랭피아'에 접목시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나체로 잠든 것으로 해석될 만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박 전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괴하게 묘사한 인형과 탄도미사일 모형, 청와대에서 기르던 진돗개들 등이 그려져 있다. 특히 이른바 '국정농단'설의 핵심 인물이던 최순실씨가 꽃다발 대신 마약·미용주사로 보이는 주사다발을 박 전 대통령에게 안겨주려는 듯한 자세로 지근거리에 서 있고, 태극기의 중심에 최씨 얼굴사진이 그려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동안 약에 취해 잠들었다거나, 미용시술을 하고 있었다거나, 현존하지도 않는 장소에서 밀회를 가졌다는 등 이른바 '세월호 7시간' 낭설에 기반한 비하 의도가 농후하게 깔려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철거 전날(2017년 1월23일) 한 인터넷언론에서 해당 그림이 국회에 버젓이 전시된 상황을 보도하자 당일부터 파문이 일었지만, 국회 측은 이를 철거하지 않았다. 이에 분개한 심 전 제독은 이튿날 국회 의원회관을 찾아가 '더러운 잠'을 걷어냈던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은 "'더러운 잠'은 예술적 가치가 전혀 없거나 음란한 도화에 불과하다"며 "해당 그림이 박 대통령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성적수치심을 유발하기에 자신들의 행위는 정당했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다.

하지만 김영아 판사는 공소권 남용 주장과 관련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불법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검사의 기소가 재량권을 일탈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논란의 대상이 된 그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고 해서 개인이 폭력적 방법으로 그 견해를 관철하는 것은 법이 허용하는 바가 아니다"라며 이들의 행동을 정당방위나 정당행위로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 1월 논란 소지가 다분한 '더러운 잠' 출품 사실을 알고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시회를 그대로 열고, 사전 홍보를 했던 정황이 트위터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 1월 논란 소지가 다분한 '더러운 잠' 출품 사실을 알고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시회를 그대로 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전 홍보를 했던 정황이 트위터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심 전 제독은 앞서 지난해 12월4일 열린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선 '더러운 잠' 국회 전시에 대해 "미혼의 여성 대통령을 발가벗긴 그림을 국회의원회관 로비에 전시하여 국군통수권자의 권위와 인격을 짓밟고, 자랑스러운 문명 선진국인 조국 대한민국의 국격을 추락시켰을 뿐만 아니라 뭇 여성을 혐오하고 차별한 이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그림을 우연히 보고 분개한 나머지 오랜 군 복무 중 습관화된 정의감이 조건반사적으로 발현되어 국회에 걸린 이 사건 그림을 내려서 던진 것인데 기소되어 이렇게 재판까지 받게 될 줄은 솔직히 잘 몰랐다"며 "오히려 이 사건 그림을 민의를 대변하는 대표적 공공장소에 내걸어 지탄을 받은 행위가 죄가 되어 벌을 받는 줄 알았다"고 항변했다.

또한 "어떤 사람이든 어머니나 아내나 딸의 나체 그림이 공공장소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그냥 지나치는 가족이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2017년 1월 일명 '더러운 잠'을 그린 작가 이구영씨가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 국회 의원회관 전시회에 출품한 자신의 그림이 심동보 예비역 해군 제독 등에 의해 훼손됐다며 언론을 향해 들어보인 모습.(사진=연합뉴스)

심 전 제독은 그림의 손괴 상태에 대해선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 이 사건 그림의 뒷면 상태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었다"며 "그림을 떼어내어 던진 후 바닥에 뒤집어진 상태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이 사건 그림은 손상 없이 온전한 상태에서 뒷면의 보조 지지대 1개의 한쪽이 액자 틀에서 빠져 돌아간 상태였는데, 저의 행위로 인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회상했다.

그는 "제가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사건현장을 떠난 후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구체적인 손괴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저의 행위로 인해 전시회가 중단되기 전에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누드그림이 국회에 전시된 것은 대단히 민망하고 유감스런 일입니다. 국회에서 정치인 주최로 전시된 것은 적절치 않았습니다'라고 했고, 제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글과 성관계 합성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혐의로 기소된 현직 경찰관에 대해 인천지방법원이 2017년 12월 28일 명예훼손 등 혐의로 벌금 800만원을 선고하기도 하였다"고 재판부에 상기시켰다.
  
심 전 제독은 "뿐만 아니라 이 사건 그림 전시회를 주최한 표창원 의원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소속 정당에서 정직 6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였는데, ('더러운 잠'을 모사한) 표창원 의원 부부 음란사진을 합성한 그림 현수막을 국회 정문 앞에 내건 사람은 고소되어 기소된 반면, 풍자 누드화로 박근혜 대통령을 모욕한 작가는 유사한 혐의로 고발되었으나 검찰에서 무혐의(증거불충분) 처분을 받았고, 문성근·김여진 나체 합성사진을 만들어 유포한 사람은 구속되어 법 적용의 형평성에 강한 의문을 남기기도 하였다"며 공정한 재판을 촉구했었다.

심동보 예비역 해군 제독(사진=연합뉴스TV)

하지만 올해 1월10일 별도의 공판 없이 벌금 100만원형 약식명령이 내려지면서, 심 전 제독은 당일 자신의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1심 선고에 불복하여 항소장을 제출하고 무거운 걸음으로 귀가하는 길이 한없이 멀기만 했다"며 "집에서 기다리던 아내가 결과를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걸 보니 측은지심이 교차했다. 미안한 마음에 내가 한 행위를 돌아보았다. '더러운 잠'을 건 게 잘못인가, 뗀 게 잘못인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더러운 잠'을 그린 이구영씨는 심 전 제독의 철거 시도 다음날(2017년 1월25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명예훼손 내지는 성희롱'이라는 비판 여론에 "지나치게 악의적인 확대해석"이라며 "한 나라의 수반인 대통령같은 경우는 당연히 그런 풍자 대상이 된다"는 식으로 부인했다. "적절성이라든가 표현의 수위에 대한 논의는 있을 수 있지만 '인격살인' '테러'라고 얘기하는 건 좀 지나치게 해석한 부분"이라며 "(여성비하가 아니라) 정확하게 풍자를 한 작품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심 전 제독에 따르면 이씨 측은 심 전 제독을 상대로 작품 손괴에 대해 3000여만원의 민사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 원고 측 변호인 10여명 가운데에는 친북성향 이정희 전 구(舊) 통합진보당 대표의 남편인 심재환 변호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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