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33 回. “領導者의 어쭙잖은 辯明” 1. “사진 한 장 없다!” 스탈린의 대숙청(1936-38)이 시작되기 3-4년 전이었다. 우크라이나와 남러시아에선 7백만에서 1천만에 달하는 농민들이 아사(餓死)했다. 소련공산당의 강제이주와 과도한 집산화 정책이 빚은 참상이었다. 홀로도모르(holodomor)라 명명된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참상은 그러나 소련연방이 해체되기 1년 전인 1990년에야 세상에야 알려졌다. 그때서야 우크라이나 기근의 참상을 고발하는 350장의 생생한 현장의 이미지들이 사진첩으로 묶여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31回. “체어맨의 外交術”1. 외교는 싸움이다.2017년 12월 13-17일 방중(訪中)한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 열 끼니 중에서 여덟 끼니를 중국 측 고관들과 마주 앉지 못한 채 이른바 “혼밥”을 먹어야만 했다. 한국 매체에선 거센 홀대논란이 일었다. 문대통령은 이른 아침 서민 식당을 깜짝 방문해 밀가루 튀김 유조(油條, youtiao)를 먹는 외교쇼를 연출했건만 홀대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기대했던 중공 서열 2위 이극강(李克强, Li Keqiang, 1955- )과의 오찬 식사도 무산됐기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9회. “빅브라더의 精神世界” 20세기 세계사에서 인간평등을 모토로 삼은 대부분의 공산주의 정권들은 일인독재와 인격숭배의 디스토피아(dystopia)로 귀결되고 말았다. 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수백, 수천만, 혹은 10억 이상의 인간집단이 단 한 명의 영도자를 그토록 흠모하고, 추종하고, 숭배하게 되는 걸까? 영웅적 카리스마 때문일까? 매스미디아의 선전선동 때문일까? 계급투쟁, 인민해방, 민족주의 등등의 이념들 때문일까? 세뇌교육 때문일까? 감시와 처벌 때문일까? 억압과 통제 때문일까? 대체 그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8回. “人民民主獨裁의 悲劇" 1. 문혁(文革)의 기원 왜 우리는 “문혁”을 탐구하기 위해 부득이 1940년대 국공내전까지 거슬러 올라야만 했나? 중화인민공화국은 국공내전의 승리를 통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중국헌법에 따르면,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의 승리는 “모택동 영도 아래 중국의 인민들이 장시간의 무장 투쟁을 통해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를 무너뜨린” 위대한 “신민주주의혁명”이다. 헌법 전문(前文, 서언)은 “중국의 인민이 국가의 독립, 민족해방 및 민주자유를 위해 간단없이 영웅적
1. 소동파의 간지(奸智) 11세기 후반 송(宋, 960-1279)나라에 파견됐던 고려 사신들은 수도 개봉(開封)의 국자감에서 다양한 서적을 마구 사 모았다. 당시 송나라 정부는 상서성 조령(條令)으로 서적의 국외반출을 엄격히 관리했다. 역대 제왕(帝王)의 통치술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 태학(太學)의 칙령(勅令)과 세칙(細則), 그리고 역대(歷代)의 역사서(歷史書)들은 고려 사신들에겐 금지된 서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고려의 사신들은 국자감의 관리들과 개인적 친분을 터서 슬그머니 역사서를 사들였다. 적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