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시민
부산地法에서 국민참여재판 배제키로 했으나 부산高法이 뒤집어
"경찰관이 먼저 때려 밀어냈을 뿐"...부산 시민들 지켜보는 앞에서 진실 공방 펼쳐진다

‘112 신고자인 내게 폭력을 행사한 경찰관에게 저항한 게 죄란 말인가?’

부산 동구에 사는 장 모 씨는 지난해 사건 발생 때부터 지금까지 이 물음이 머리에서 뱅뱅 맴돌았다. 그런 장 씨가 부산 주민들 앞에서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를 갖게 됐다. 장 씨가 기소된 사건에 대해 법원이 국민참여재판을 열기로 지난 14일 결정한 것이다(부산고등법원 2023로10).

지난해 6월 부산역 맞은편에 있는 유흥가인 텍사스 거리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 씨. 장 씨는 지난 2020년 부산 소재 일본총영사관 인근 ‘일본군 위안부’ 동상(소위 ‘평화의 소녀상’)에 자전거를 묶어놨다가 언론을 탄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사연은 이렇다.

술집 앞에서 러시아 국적으로 보이는 외국인 남성이 여성을 붙잡고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목격한 장 씨는 곧장 112 긴급신고를 통해 경찰관을 호출했다. 장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 현장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장 씨는 자리를 뜨려 했는데, 갑자기 출동 경찰관 중 한 사람인 배 모 경위가 장 씨 뒤에서 장 씨를 덮치며 장 씨의 팔을 내리쳤다.

지난해 6월4일, 신고를 받고 출동한 부산 동부경찰서 초량지구대 소속 배 모 경위(당시)가 신고자인 부산 동구 주민 장 모 씨의 팔을 내리치는 장면. [사진=제보]

장 씨 설명에 따르면 장 씨 주거 지역 관할 파출소에 근무하던 배 경위가 평소 장 씨와의 감정 다툼을 해 장 씨에 대한 악감정이 갖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날 배 경위가 출동한 것이라고 한다.

경찰관으로부터 난데없이 공격을 당한 장 씨는 배 경위의 팔을 몇 차례 밀쳐냈다. 그러자 배 경위는 장 씨가 경찰관의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며 장 씨를 현행범 체포하고 근무지인 부산 동부경찰서 초량지구대로 압송했다.

장 씨는 경찰 조사 단계에서부터 현장 출동 경찰관 배 모 경위가 자신에게 먼저 폭행을 행사했고 그에 대해 소극적으로 저항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경찰관을 밀쳐낸 행위는 정당방위 또는 정당행위는 정당방위 또는 정당행위에 해당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사 과정에서는 경찰관이 단독으로 장 씨를 신문(訊問)하는 등 절차상 위법도 발생했다. 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신문할 때에는 사법경찰관 또는 사법경찰리를 참여하게 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제243조(피의자신문과 참여자)의 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장 씨를 조사한 부산 동부경찰서는 장 씨를 검찰로 송치했다. 부산지방검찰청은 그해 11월 장 씨를 벌금 30만 원으로 약식 기소했다.

장 씨는 수긍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피고 사건에 대해 정식 재판을 청구하면서 동시에 국민참여재판도 신청했다(부산지방법원 2023고합88). 그러나 장 씨 사건을 맡은 부산지방법원 형사6부(부장 김태업)는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리 공방을 하는 데 있어서 국민참여재판은 부적절하다고 보고 장 씨 사건을 통상의 공판 절차로 진행하기로 했다. 피고인의 행위가 정당방위 또는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수사절차상 위법으로 인한 증거의 사용 여부 등의 법률적 평가와 같은 법리적 측면의 공방은 통상의 공판 절차에 의하더라도 충실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취지였다.

부산고등법원. [사진=연합뉴스]
부산고등법원. [사진=연합뉴스]

이에 장 씨는 법원의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에 불복하고 항고했다. 자신의 억울함을 동료 시민들 앞에서 해소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한 것 것이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항고 사건을 심리한 부산고등법원 형사1부(부장 박준용)는 장 씨의 항고를 인용하기로 했다.

부산고법 형사6부는 “누구든지 법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므로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사건은 물론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사건 역시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사건보다 부인하는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볼 여지도 많다”며 “범의(犯意)나 위법성조각사유의 존부(存否)가 쟁점인 사건이 국민참여재판보다 통상의 공판 절차로 진행하기에 더 적절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또 경찰관이 단독으로 장 씨를 신문하고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 능력과 관련한 공방도 국민참여재판이라고 해서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기도 했다.

증거 조사 및 증인 신문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단 한 번의 기일로 재판을 마쳐야 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장 씨 사건을 진행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검사의 주장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장 씨는 “평소 경찰관들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를 비판해 왔는데, 그 때문에 관할 경찰서 소속 경찰관들로부터 미움을 받아왔다”며 “사건 발생 직후 나를 먼저 폭행한 배 경위를 고소했는데, 경찰은 배 경위 건은 불송치하고 나만 검찰로 송치하는 등 ‘제 식구 감싸기’ 식(式) 수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장 씨는 “검찰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사건을 면밀히 보지도 않고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서류에 도장을 찍어 나를 기소했다”며 수사기관에 대한 총체적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장 씨를 먼저 폭행한 배 경위도 마찬가지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부산지방법원 2023고단1553). 애초 경찰에서 배 경위 건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했으나, 고소인인 장 씨의 이의신청을 접수한 검찰이 보완수사를 거쳐 배 경위를 폭행 혐의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배 경위는 지난달 14일 열린 첫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 경위를 고소한 장 씨는 배 경위가 ‘폭행’이 아니라 ‘독직폭행’으로 의율돼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배 경위 담당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펜앤드마이크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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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4일 부산역 맞은편 텍사스거리에서 발생한 사건이 기록된 폐쇄회로(CC)TV 영상. 경찰관이 뒤로 돌아선 장 모 씨를 먼저 공격하는 장면이 확인된다. [영상=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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