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호스텔(City Hostel)’은 히틀러가 사랑한 최고급 ‘카이저호프 호텔’과 비교가 되지 않는, ‘침대보에 소변 자국이 있고, 베개에는 핏자국이 있는’ 싸구려 숙박시설에 불과했지만, 장사는 꽤 잘 됐다... 아들을 잃은 미국인 부모가 복수에 나서기 전까지는...

베를린 북한대사관 로비에 침대 매트리스가 쌓여있다.(사진=양연희 기자, 2022.11.25)
베를린 북한대사관 로비에 침대 매트리스가 쌓여있다.(사진=양연희 기자, 2022.11.25)

“영국 런던에 사는 학생입니다. 학교 여행으로 시티 호스텔에 묵었습니다. 베를린의 역사적 유적지들 가운데 위치해 접근성이 좋지만 호스텔 자체는 평범했고 사실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죠. 그러나 침대보에 소변 자국이 있었고 베개에는 핏자국이 있었습니다.

호스텔 음식이 별로 좋지 않고 종류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 아침을 드시는 것을 추천 드려요. 저녁은 절대로 호스텔에서 드시지 마세요...이 호스텔은 곧 문을 닫는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리뷰가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어쨌든 알려드립니다(2017. 10. 21. 인터넷 여행전문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er)에 올라온 글)“

시티 호스텔(City Hostel)은 히틀러가 사랑한 최고급 카이저호프 호텔과 비교가 되지 않는, ‘침대보에 소변 자국이 있고, 베개에는 핏자국이 있는’ 싸구려 숙박시설에 불과했지만, 장사는 꽤 잘 됐다.

베를린 북한대사관에 있던 '시티호스텔 베를린'
베를린 북한대사관에 있던 '시티호스텔 베를린'

시티 호스텔을 소유한 터키 회사 ‘EGI GmbH’은 2007년 베를린 북한대사관 건물 남쪽 반절 4개 층을 임대해 총 34개의 객실을 운영했다. 4명 또는 8명이 함께 방을 사용하는 ‘도미토리’의 경우 하루 숙박비가 약 17유로밖에 되지 않아 배낭여행객들과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가장 큰 장점은 탁월한 ‘위치’였다. 관광객들로 늘 붐비는 브란덴브루크 문(Brandenburg Gate)과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동서독 검문소) 사이에 위치했고, 독일 의회와 유대인학살추모공원 등과도 가까운 거리였다. 전쟁 전 베를린 관공서 구역의 수상관저 바로 옆, 당대 최고의 ‘카이저호프 호텔’이 있던 곳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대사관의 불법 임대업은 외교 공관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한 비엔나 협약에 위배된다. 그러나 베를린 북한대사관은 불법임대로 매월 상당한 수익을 벌어들였다.

2018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연례보고서와 독일 법원에 따르면 베를린 북한대사관과 EGI GmbH가 체결한 임대차 계약은 월 38,000유로(약 42,000달러, 5,222만 원)였다. 북한대사관은 또 대사관 내 연회장을 ‘포 엑스 페스티벌(ForX Festival)’에 임대해 부가수입도 챙겼다.

전 세계 약 40개국에 위치한 북한대사관은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1992년 이후 불법 임대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국으로부터 송금이 끊겼기 때문이다. 북한대사관은 대사관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스스로 벌어 충당해야 했고, 김씨 일가에게 송금도 해야 했다. 그러나 북한대사관이 불법사업에 관여한 것은 그보다 훨씬 전으로 추정된다. 북한정권의 불법 무기 판매처로 알려진 중국 베이징 북한대사관은 최소 1976년부터 사업을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르웨이 경찰은 그해 오슬로 북한대사관이 1만 병의 증류주와 10만 보루의 담배를 불법수입해 판매한 것을 적발해냈다.

‘자본주의의 맛’을 즐기던 베를린 북한대사관에 본격적인 철퇴가 가해진 것은 2017년이었다. 2016년 11월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대북제재 결의 2321호를 채택하고 “북한이 소유한 해외공관을 외교 및 영사 활동 이외 목적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규정했다.

2017년 유엔 안보리 결의 2321호가 채택된 후 북한대사관의 불법 임대업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북제재 위반 논란이 일자 베를린 당국은 2018년 11월 시티 호스텔에 영업 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호스텔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업을 이어갔다. EGI측은 북한대사관이 퇴거 조치에 필요한 비용을 내지 않기 때문에 사업을 철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2017년 이래 북한대사관에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북제재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6년 북한에 억류됐다가 17개월 만에 석방된 버지니아대 학생 오토 웜비어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렁큰공항에 도착했다. 석방 당시 혼수 상태였던 웜비어가 의료진에 의해 비행기에서 앰뷸런스로 옮겨지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2016년 북한에 억류됐다가 17개월 만에 석방된 버지니아대 학생 오토 웜비어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렁큰공항에 도착했다. 석방 당시 혼수 상태였던 웜비어가 의료진에 의해 비행기에서 앰뷸런스로 옮겨지고 있다./AP=연합뉴스

베를린 북한대사관의 불법 임대업이 또 한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오토 웜비어의 죽음 때문이었다.

2015년 12월 미국의 대학생 오토 웜비어는 북한 여행에 나섰다 북한정권에 의해 억류됐다. 북한당국은 그에게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억류된 지 17개월이 지나 2017년 6월 13일 그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오토는 더 이상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20대 젊은이가 혼수상태로 축 늘어진 채 이송되는 모습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오토는 집으로 돌아온 지 불과 엿새 후인 6월 19일 사망했다. 2018년 12월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은 의료진의 소견을 바탕으로 웜비어가 전기충격, 펜치 가격, 물고문 등으로 추정되는 산소공급 중단 등의 고문을 당해 식물인간 상태를 거쳐 사망에 이르렀다는 증거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북한정권에 웜비어의 억류, 고문,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물어 그의 가족에게 5억 113만 달러(약 6559억 8천만 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판결문을 북한 외무성으로 송달했다.

아들을 잃은 웜비어 부부는 ‘불법적인’ 북한정권 상대로 ‘합법적인’ 복수를 가하는데 착수했다.

2019년 11월 한국을 방문했던 웜비어 부모는 전 세계에 숨겨진 북한의 자산의 찾아내 책임을 묻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며 베를린 북한 대사관의 시티 호스텔을 지목했다. 

당시 웜비어 부부는 ‘거짓말쟁이’ 북한과 대화는 불가능하며 오직 ‘행동’만이 북한정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레드 윔비어 씨는 “북한은 지금도 전 세계 특히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불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며 “김씨 일가의 스위스 은혜 계좌에는 수십 억 달러가 있고 독일 베를린에는 이전에 히틀러가 사무실로 쓰던 공간에서 유스호스텔을 운영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마약, 매춘, 사이버 테러 등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북한이 법치주의를 따르도록 만들 생각”이라며 “북한이 국외에서 불법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알려서 중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했다. 어머니 신디 웜비어 씨는 “북한은 아이를 잘못 골랐다”며 “나는 죽을 때까지 북한정권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했다.

2020년 1월 28일(현지시간) 베를린 행정법원은 시티 호스텔에 영업을 중단할 것을 판결했다. 이날 재판은 시티 호스텔의 운영업체인 EGI가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열렸다. 베를린 당국이 대북제재 위반이라며 영업을 중단시키자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법원은 “숙박영업으로 벌어들인 자금이 북한으로 넘어가며, 이는 유엔 안보리 결의 등에 대한 위반이기 때문에 영업 중단 결정은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특히 재판부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세계에 위협이 된다”며 베를린 당국의 영업 중단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티 호스텔은 대북제재 위반 논란이 불거진 2017년 4월 이후 북한 대사관에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은 만큼 대북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행정법원 판결 이후 베를린시 미테 구청은 시티 호스텔에 2주 안에 영업을 중단할 것을 통보했다.

2020년 베를린 북한대사관이 외화획득을 위해 여전히 불법으로 호스텔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자 대사관 건물 앞에 높이 2m의 강철 울타리가 새롭게 세워졌다.
2020년 베를린 북한대사관이 외화획득을 위해 여전히 불법으로 호스텔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자 대사관 건물 앞에 높이 2m의 강철 울타리가 새롭게 세워졌다.

스페판 폰 다셀 베를린시 미테지구장은 2020년 5월 독일의 매체 ‘DPA’와의 인터뷰에서 시티 호스텔이 영구 폐쇄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대사관이 외화획득을 위해 여전히 호스텔 건물을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은 계속됐다. 

지난달 하순 기자는 베를린 북한대사관 로비에 침대 매트리스가 쌓여있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티 호스텔이 사용했던 매트리스로 보이는데, 아직도 완전히 철거되지 않은 것이 의심스러웠다. 마치 북한대사관이 못다 이룬 불법외화벌이의 꿈이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현재 북한 대사관은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폴란드, 파키스탄 4개 국가에서 여전히 불법임대업을 이어가고 있다.

 

폴란드 주재 북한 대사관은 30년째 불법 임대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북한은 1966년 폴란드 정부와 협정을 맺고 축구장 두 개 정도의 크기에 해당하는 15500공관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은 6층 높이의 1개동과 2층 높이의 건물 2개동, 3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최소 2곳이 음악 녹음실과 광고 대행업체에 불법 임대 중이다.

 

불가리아 주재 북한대사관도 불법 임대를 하고 있다. ‘테라테크놀로지카두 업체가 여전히 북한대사관 건물을 임대 중이다. ‘테라테라레지던스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위치한 북한대사관에서 예식과 기업 행사 등 각종 이벤트를 위한 장소를 대관해주고 있다. 테라레지던스는 테라 볼룸, 볼룸 소피아, 아스타나 홀 등 3개 공간에 최대 2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며 홈페이지에서 예약 문의를 받고 있다. 불가리아 당국은 해당 업체가 2017년 초반 이후 북한대사관에 임대료를 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베를린의 시티 호스텔과 마찬가지로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은 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소재 북한대사관도 2001년과 2011년 이래 두 업체와 각각 임대계약을 맺었다. 한 업체는 북한대사관과 월 46천 달러의 임대계약을 맺었지만 제재 위반 논란이 불거진 뒤 20174월부터 임대료를 북한대사관에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패널에 보고했다.

 

파키스탄 주재 북한대사관도 불법 임대업에 관여했지만 현재 상황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