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독 북한 대사관(사진=양연희 기자. 2022.11.25)
주독 북한 대사관(사진=양연희 기자. 2022.11.25)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위치한 주독일 북한 대사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11월의 태양이 벌써 힘을 잃어가던 오후 2시 무렵.

높이 약 2미터의 강철 울타리 너머 회색빛 5층 건물이 나타났다. 오른쪽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인공기가 힘없이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대사관’ 명패 옆, 한복 차림의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인 젊은 김정은이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에 촬영된 20대 후반의 김정은을 가리켜 ‘조선의 아버지’라고 선전했다.

한낮이었지만 북한 대사관의 거의 모든 창문들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통창을 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게 만든 베를린의 다른 건물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느낌이었다.

다만 4층에는 커튼이 쳐진 창문들이 보였는데,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근무 중인 곳으로 추측됐다. 창문이 조금 열려있는 곳은 화장실이 아닐까 싶었다.

화단은 제대로 관리가 안 돼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대사관 앞 보도블록에는 잡초마저 무성했다.

마구 자라난 잡목들 너머로 대사관 현관 로비 내부가 살짝 들여다보였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침대 매트리스가 쌓여있었다. 북한 대사관에 왜 침대 매트리스가 있는 것일까.

베를린 북한 대사관 로비에는 침대 매트리스가 수북이 쌓여있다(사진=양연희 기자. 2022.11.25)
베를린 북한 대사관 로비에는 침대 매트리스가 수북이 쌓여있다(사진=양연희 기자. 2022.11.25)

나치 히틀러가 애용했던 ‘카이저호프 호텔’

현 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 건물은 1975년에 지어졌다. 이전에는 그 자리에 카이저호프 호텔(Hotel Kaiserhof)이 있었다.

1875년 10월에 개장한 카이저호프 호텔은 당대 최고의 고급 호텔이었다. 호텔은 당시 베를린 관공서 구역의 수상관저(Reich Chancellery) 바로 옆에 위치했다.

카이저호프 호텔은 현대적이고 고급스럽게 꾸며진 260개 이상의 객실을 갖추고 있었다. 방마다 전기가 공급됐고, 화장실과 전화기도 있었다. 베를린 최초였다. 또한 호텔은 스팀난방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엘리베이터를 운용했다.

1933년 히틀러가 카이저호프 호텔 앞에서 군중의 환호를 받고 있다. 
카이저호프 호텔 앞에서 군중으로부터 환영을 받는 히틀러
수상으로 임명된 후 카이저호프 호텔 앞에서 군중으로부터 환영을 받는 히틀러

1878년 독일을 방문했던 영국의 벤자민 디즈레일리 수상은 이 호텔에서 묵었다. 그러나 이곳은 나치 지도부, 특히 히틀러가 애용한 호텔로 더욱 유명하다.

1932년 나치 지도부는 카이저호프 호텔에서 히틀러의 집권 음모를 꾸몄다. 그해 8월 히틀러는 이 호텔로 아예 이사를 왔다. 히틀러는 1932년 8월부터 1933년 1월 수상으로 임명될 때까지 이곳에 살면서 호텔 맨 꼭대기층 전체를 그의 ‘베를린 본부’로 사용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932년에 독일인으로 귀화했던 히틀러는 자신의 귀화식도 이 호텔에서 열었다.

1933년 1월 파울 폰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히틀러를 독일정부의 수장인 수상으로 임명한 직후 파울 요제프 괴벨스(나치 독일 제국선전부 장관으로 탁월한 선동능력으로 인해 선전 및 선동의 제왕으로 평가되는 인물)와 에른스트 룀(히틀러의 친구로 히틀러를 위한 돌격대를 조직했다) 등 나치 지도부는 이 호텔에서 히틀러를 만나 그 소식을 직접 전해 들었다.

3년 뒤 1936년 헤르만 괴링(나치 독일의 공군 총사령관이자 원수. 히틀러 다음가는 나치의 지도자)은 자신의 결혼식을 이 호텔에서 열었다.

카이저호프 호텔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공식 호텔로 선정됐다. 그해 히틀러는 이곳에서 국내외 올림픽 위원들과 지도자급 스포츠 관계자들을 위해 올림픽 전야 만찬을 주최했다.

나치 지도부의 사랑을 받으며 당대 최고의 현대식 호텔로 군림했던 카이저호프 호텔은, 그러나 1943년 11월 22일 영국의 폭격으로 인해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전후 1945년 완전히 철거된 후 다시는 재건되지 않았다.

전쟁 기간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카이저호프 호텔
전쟁 기간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카이저호프 호텔

카이저호프 호텔이 있던 자리에 북한 대사관이 들어선 것은 1974년이었다. 냉전 시대 독일민주공화국(동독) 관할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에는 약 100여 명의 외교관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 동독이 붕괴되자 북한 대사관도 문을 닫았다. 그러나 2002년 독일정부가 북한과 외교관계를 재개함에 따라 북한 대사관은 다시 이 건물로 돌아왔다. 몰락한 카이저호프 호텔의 유령이 되살아난 것일까. 북한대사관은 2007년부터 싸구려 여행자 숙소인 ‘시티 호스텔’에 대사관 건물 남쪽 절반을 임차하기 시작한다.

베를린=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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