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 김주애 공개와 맞물려 주독 북한 대사관 정문 게시판엔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김정은 사진과 함께 “조선의 모든 자녀들은 사랑하는 김정은 동지를 아버지로 부르며 따르게 된다” 설명 내걸어

주독 북한 대사관(사진=양연희)
주독 북한 대사관(사진=양연희 기자, 2022.11.25)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자 김정은이 최근 둘째 딸 김주애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현지지도 현장에 동행하는 등 전격 공개한 것과 맞물려 독일 주재 북한 대사관이 김정은을 ‘조선의 아버지’로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하순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 정문 게시판에는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인 김정은의 사진이 내걸렸다. 주독 북한 대사관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도 관광객들로 늘 붐비는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체크 포인트 찰리(옛 동서베를린 국경 검문소) 사이에 위치해 있다. 냉전 시대에는 동독 관할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에 100여 명의 외교관들이 거주하기도 했었으나 동서독 통일 이후에는 10명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베를린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 정면 게시판(사진=양연희)
베를린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 정면 게시판(사진=양연희)

게시판 상단에는 김정은이 2013년 6월 회사 탁아소를 방문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린이들의 환영을 받는 사진과 평양소년원을 방문한 사진이 걸렸다(그해 12월 김정은은 고모부이자 후견인이었던 장성택을 반역죄로 몰아 총살했다). 하단에는 북한 어린이들이 자연사 박물관을 관람하는 사진과 6월 1일 국제 어린이날을 맞아 축제를 벌이는 사진이 걸렸다.

게시판 중앙에는 “조선의 모든 자녀들은 사랑하는 김정은 동지를 아버지로 부르며 따르게 된다”는 설명이 독일어로 붙었다. 김정은을 ‘조선의 아버지’로 선전하는 것.

설명문은 “김정은은 가장 중요한 일을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며 “조국의 미래인 그들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들의 보살핌과 영양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항상 온 마음을 다하고 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온 마음을 다해 아이들을 감싸고 사랑의 힘으로 미래를 만들어 간다”며 김정은의 이른바 ‘후대 사랑’을 강조했다.

또한 “그(김정은)의 숭고한 의지 덕분에 조선의 아이들은 계절에 따라 정기적으로 새 옷과 학용품, 각종 영양식을 공급받으며 행복하게 자라고 있다”며 “그들은 그를 아버지와 다름없다 여긴다”고 거듭 강조했다.

주독 북한 대사관 게시판(사진=양연희)
주독 북한 대사관 게시판(사진=양연희)

북한정권은 북한 사회 전체를 하나의 ‘가정’으로 보는 ‘사회주의 대가정론’에 기초한다. 수령은 은덕을 베풀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수령을 향해 충성과 효성을 바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수령-당-인민의 관계를 아버지-어머니-자녀의 관계로 치환해 세습독재를 정당화하고 인민들에게 대를 이어 김씨 일가에 충성할 것을 강요한다.

김일성은 1962년 신년사에서 사회를 화목하고 단합된 하나의 대가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대중들이 애국적 헌신성과 대중적 영웅주의를 발휘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대가정론이 본격적으로 강조된 것은 1990년대 중반 김일성의 사망과 대량 아사사태를 겪으며 북한주민들의 동요와 이완을 막고 수령의 떨어진 권위를 회복해 지배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북한정권은 사회주의 대가정론을 통해 혁명의 최고 영도자인 ‘수령’이 각 가정에서 육체적 생명을 준 부모보다 더 중요한 구심점의 역할을 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북한은 이러한 ‘국가의 가정화’를 통해 수령의 대중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수령에 대한 대중의 한없는 충성과 효성을 강조한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수령에 대한 ‘충성동이’와 ‘효자동이’로 자라나야 한다는 것을 교육의 목표이자 공산주의 도덕의 규범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각 가정의 가장 좋은 벽면에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을 정성껏 모시는 생활방식을 통해 수령을 ‘진정한 어버이’로 인식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김정은은 2021년 11월경부터 ‘수령’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의 관영선전매체들은 2021년 10월 하순을 기해 국무위원장인 김정은을 ‘수령’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노동신문은 9월 22일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 보살펴 주시는 어버이를 수령으로’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김정은을 세 번이나 ‘수령’으로 지칭했다. 조선중앙TV도 “위대한 어버이를 수령으로 높이 모신 인민의 영광 끝었다”고 했다. 노동신문은 11월 11일 장문의 기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인민적 수령’ ‘혁명의 수령’으로 불렀다.

북한에서 수령은 신격화된 김일성 주석에게만 사용하는 호칭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생전에 ‘장군님’ 또는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불렸고 사후에야 ‘선대 수령’이란 호칭이 주어졌다. 따라서 김정은의 ‘수령’ 호칭 사용은 김정은이 스스로 우상숭배와 권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김정은 집권 이후 지금까지 아이들의 학용품을 하나하나 세어주시며 안겨주시었다고 선전하고, 아이들의 젖제품(우유) 생산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육아정책까지 제시했다고 자랑하는 등 ‘후대사랑, 청년중시’ 사상을 강조해왔다”며 “‘후대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사상을 강화하고 충성심을 키워 북한의 다음세대를 김씨 일가의 친위대로 키우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어버이’ 수령을 강조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세뇌교육을 통해 북한 정권에 대한 충성심과 ‘우리국가 제일주의’를 심어주기 위한 교묘한 정치적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유별난 ‘후대사랑’은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감추기 위한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북한의 어린이 영양 섭취 문제는 지난 2000년부터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심각하다. 세계 주요 정부와 국제기구, 시민단체 등 100여 개 기관이 공동으로 매년 발간하는 ‘2021 세계 영양 보고서(Global Nutrition Report)’에 따르면 북한의 5세 미만 어린이 발육부진 비율은 19.1%에 달한다. 2000년 51%, 2004년 42.1%, 2009년 32.4%에 비하면 크게 개선된 것이지만 5세 미만 저체중 비율은 2.5%로 전 세계 평균 2.0%보다 높다.

북한의 성인들도 심각한 만성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북한 주민의 영양 부족 비율은 47.6%에 달한다. 2001년 35.7%. 2010년 40.7%, 2015년 44.5% 등 점차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 산하 경제연구소가 지난 8월 발간한 '국제 식량안보 평가 2021-31(International Food Security Assessment 2021-31)'에 따르면 북한에서 식량 부족을 겪은 주민은 1,63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63%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1,530만 명(60%)보다도 100만 명 늘어난 것이다. 미국 농무부가 제시한 건강한 성인에게 필요한 하루 기본 열량은 2,100kcal였지만, 북한 주민들의 평균 일일 섭취 열량은 1,654kcal에 불과했다.

베를린=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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