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결론 정해 놓고 수사 진행한 것이라면 '정치 개입' 논란 자초한 것"

소위 ‘고발 사주’ 의혹의 당사자 중 한 사람인 손준성 대구고등검찰청 인권보호관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사전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다. 이런 가운데 공수처가 작성한 구속영장청구서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윤석열 전(前) 검찰총장에 관한 것으로 돼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만일 공수처가 결론을 정해 놓고 수사를 진행한 것이라면 공수처는 ‘정치 개입’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서울중앙지방법원 이세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손준성 검사에 대한 공수처의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손 검사는 지난해 실시된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으로 근무하면서 당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現 국민의힘)으로 하여금 여권(與圈) 주요 인사들을 고발케 한 혐의(직권남용 등)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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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성 대구고등검찰청 인권보호관.(사진=연합뉴스)

그런데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해 법원에 제출한 구속영장청구서의 주요 내용이 손 검사가 아니라 윤석열 전 총장에 관한 것이어서 ‘윤 전 총장에 대한 구속영장청구서’를 방불(彷佛)케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위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의 배경을 설명한 청구서 앞부분 6~7쪽에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나 여권 주요 인사들이 윤 전 총장을 공격하며 주장한 내용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청구서 도입부에 해당하는 ‘사건의 배경’ 항목은 총 20쪽 분량에 달하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압수수색 이후 상황 등’으로 시작한다. 2019년 9월 윤석열 검찰이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범(汎)여권에서 ‘검찰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뒤에도 조 전 장관 본인 및 가족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를 벌였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공수처는 또 청구서에 “손준성, 성명불상의 상급(上級) 검찰 간부들이 불상(不詳)의 장소에서 성명불상의 검찰 공무원에게 고발장 작성 등을 지시하고, 김웅과 성명불상의 야당 인사와 공모했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불상’이라는 표현은 말 그대로 ‘알지 못하다’라는 뜻으로써 손 검사의 혐의가 어느 정도 구체화하지도 못했음을 의미한다.

공수처에 앞서 손 검사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공수사1부(부장 최창민)는 지난달 30일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하면서 “수사 결과 현직 검사의 관여 사실과 정황이 확인됐다”며 “그밖의 피고소인들도 중복 수사 방지 등을 고려해 함께 이첩했다”고 밝혔다. 대검 진상조사 자료나 소위 ‘고발 사주’ 의혹의 원 제보자인 조성은 씨가 제출한 휴대전화 등을 분석한 결과 조 씨가 제시한 텔레그램상 ‘손준성 보냄’ 표시가 조작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공수처는 청구서에 ‘판사 사찰 문건 작성 및 배포’ ‘윤석열 장모 대응 문건 작성’ ‘채널A 사건 감찰 및 수사 방해’ ‘윤석열 징계에 대한 법원의 판단’ 등 그간 여권이 윤 전 총장을 공격할 때 활용한 몇 가지 사안들에 대한 내용도 자세히 기재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수처는 윤 전 총장이 이같은 지시 사항의 위법성을 알고도 자신의 부하 직원들에게 지시한 근거를 대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추 전 장관과 친(親)정권 성향 검사들이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며 “공수처가 이미 결론을 정해 놓고 이번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면 ‘징치 개입’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만일 법원이 손 검사에 대한 영장을 발부했다면, 내달 초로 예정된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전 윤 전 총장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한 영장 청구를 하기에 앞서 지난 20일 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그럼에도 공수처는 손 검사에게 이같은 사실을 숨기고 손 검사와 조사를 위한 출석 일정을 조율하면서 “대선 후보 경선 일정 등을 고려하면 조속한 출석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SMS 문자를 손 검사에게 보낸 사실이 확인돼 ‘피의자의 방어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비판이 나왔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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