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북핵 시간끌기'에 악용되지 않고 실질성과 거둘 수 있을까
對北 특사단 귀국 후 對언론발표문 통해 공개
김대중-김정일, 노무현-김정일 회담 이어 세번째…사전 핫라인 통화
"한미훈련 성격 이해했다…미북대화 비핵화 의제 제외 안해"
회담 조건유무는 불투명, 시간벌기?…남북간 1·2차 퍼주기 전례
이번주 중 미국, 이어 중·러·일 순 방문할듯…뚜렷한 날짜는 아직
한국당 "北핵보유국 인정하나…北 약속파기 대책 全無한 합의문"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사진=연합뉴스)

남북은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오는 4월 말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열기로 하고 이를 위한 실무협의를 진행키로 했다. '문재인-김정은 회담'이  개최되면 2000년 김대중-김정일, 2007년 노무현-김정일 회담에 이어 역대 세 번째의 남북 정상회담이다.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찾았다가 6일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수석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북측과 협상한 결과 이같이 합의했다고 6일 저녁 언론발표문을 통해 밝혔다. 청와대는 앞서 제1·2차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연 것에 비해 회담 장소를 판문점 남쪽 평화의 집으로 결정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남북은 또 정상회담 실시 이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간 핫라인을 설치하고 첫 통화를 갖기로 했다. 김정은 정권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비핵화 문제 협의'를 위한 대화 가능성도 열어두고, 미북 대화가 진행되는 중이라면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으로도 알려졌다.

출입기자단과의 추가 질의 답변에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김정은 위원장(이하 김정은)이 북측은 평창 올림픽을 위해 연기된 한미 연합훈련에 관해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훈련이 '연례적 방어적 성격'이라는 것도 이해했다는 전언이다.

김 대변인은 '김정은이 미북대화에 복귀하겠다고 한 구체적인 언급을 알려달라'는 질문에는 "김정은의 언급 내용을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은 뒤 "발표드린 것처럼 '북미(미북)대화에 적극 임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고 북미(미북)대화의 의제로 비핵화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주목할만한 것은 (김정은이) '비핵화 목표는 선대(김일성 김정일)의 유훈이며 유훈에 변함이 없다'고 분명히 밝힌 것이며 '미북관계 정상화 같은 것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대화의 조건으로 김정은이 요구한 것을 알려달라'는 물음에는 "우리나 또는 다른 국가에 요구한 것을 특정한 것은 없고, '대화 상대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의사밖에 없다"고 답했다.

서울이 아닌 판문점 회담 개최 이유에 관해서는 "판문점은 우리 분단의 상징이다. 또 그간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이번 3차 회담이 판문점 남측 구역인 평화의 집에서 개최된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라고 설명했다.

당초 '연내 정상회담설'과 개최시기 예상이 나온 것에 비해 4월말은 매우 이르다는 지적에는 "양측이 합의할 수만 있다면 가급적 조기에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남북의 공통적 입장이고, 일정 조율 과정에서 4월말이 가장 적절한 것으로 판단돼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김정은이 어떻게 평가했느냐'는 질문에는 "문 대통령에 대해 상당히 신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언급했다"고 에둘러 정황을 전했다.

그는 "(김정은이) 1월1일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획기적 제안을 한 이후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지난 60일 동안 남북간 관계는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고 저희는 평가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친서도 교환하고 특사도 교환하면서 두 정상간 신뢰가 많이 쌓였다고 믿고 있다"고 부연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북핵 문제 유관국 방문 일정에 관해서는 "미국은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갈 예정이다. 이번 주 중으로 가게 될 것 같다"면서 "중국, 러시아 방문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도 방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방북 전부터 '핵폐기 약속을 받아오라'고 주문하던 자유한국당은 이날 밤 홍지만 대변인이 '특사를 보냈더니 핵보유국 인정하고 온 건가'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이번 방문이 비핵화가 아닌 정상회담 논의를 위한 자리가 돼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했음에도 그 걱정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홍 대변인은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보장이 되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 대화가 지속되는 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 시기에도 있었다"고 지적한 뒤 "진정한 체제 보장의 길은 김정은이 북한 주민을 억압하고 기만하며 착취하는 한 불가능하다. 북한이 약속을 어길 수 있는 카드를 쥐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화 지속 중 모라토리엄' 약속에 관해서는 "온갖 이유로 약속을 어길 경우에 대한 대책도 합의문에 하나도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가장 어이없는 부분은 핵과 재래식을 남(南)에 사용하지 않을 것이란 말"이라며 "방향만 남쪽으로 틀면 우리를 파멸로 이끌 것이 북한의 핵무기다. 그 말을 곧이 듣고 공식 발표를 하다니 어이가 없다"고 쏘아붙였다. 이어 한국당 차원에서 "위장된 평화는 피눈물 나는 대가를 요구할 것임을 가르쳐 줄 것"이라며 "홍준표 대표는 7일 (청와대 5당 대표) 회담에서 이를 낱낱이 따질 것이며 우리 당도 국회에서 엄중하게 이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예고했다.

'4월 남북정상 회담 개최 합의' 어떻게 봐야 하나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전언을 종합하면 김정은은 일단은 별다른 조건 없이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20년도 더 이전부터 전자와 후자 모두 제법 긴밀히 진행되는 듯 했다가 결렬되면서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강변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까지 온 것이 북핵 문제의 현주소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또다시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고 북핵 폐기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이번에 정상회담에 응하면서 과거 1,2차 때와 달리 한국에 '대가'를 요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커지면서 북한이 그만큼 상황을 절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남북 대화로 도출하겠다는 미북대화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온 가운데 성사되더라도 내용 면에서 진척되리라고 보기 어려운 전례가 있다. 미-북간 제1차 북핵 합의였던 1994년 '제네바 합의'는 2002년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개발에 나서면서 결렬됐다. 6자회담에서 2005년 합의된 '9·19 공동성명'은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라는 후속조치까지 합의했지만, 2008년 12월 북한이 핵 검증에 난색을 표하면서 좌초됐다. 

미-북은 2011년에도 '2·29 합의'를 도출해냈지만, UEP 개발 중단과 핵·미사일 시험 유예(모라토리엄)를 약속했던 북한은 한달 보름도 안 된 같은해 4월13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이보다 앞서 2007년에는 6자회담 복귀를 카드로 활용해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동결돼 있던 자산 2500만 달러를 찾아갔다. 2008년 6월 영변의 냉각탑 폭파를 통해서는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얻어냈다.

남북 정상회담의 경우도 1·2차 회담이 단순히 성과 부재를 넘어 북한에 대한 '퍼주기'로 끝난 채 핵개발을 허용했다는 게 역사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에 의거해 설립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건설을 통해 기술과 장비를 얻었다. 당시 한국전력공사가 KEDO 기자재에 투입한 비용은 2006년 사업 종료 시까지 총 7억~8억 달러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한·미 등으로부터 수십만 톤의 중유도 제공받았다.

특히 남북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6월 1차 정상회담에서 6·15 공동선언을 도출해 관계 진전을 선보이는 듯했으나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사실상 회담 개최의 대가로 대북송금을 했다는 '이면 거래'가 노출됐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이 도입된 뒤, 1차 정상회담에 앞서 현대그룹이 4억5000만 달러를 국가정보원 계좌를 통해 북에 지원했고 이 중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금 1억 달러가 포함됐다는 수사 결과가 나왔다.

10.4 선언을 이끌어낸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도 퍼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차 때와 같은 이면 지원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10.4 선언 합의 이행 사업 자체가 쟁점이 됐다. 8개항의 합의 가운데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경의선 화물철도 개통과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같은 경제협력 사업에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는 통일부 자료가 논란의 핵이 됐다. 당시 야당이 공개한 통일부 추산 비용은 14조4000억여 원이었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강행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 현금·현물지원과 민간 투자를 아우르면 8조원대에 육박하며, 개성공단으로 흘러들어간 돈까지 포함해 이는 지난해 9월까지 자행한 6차례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자금으로 전용됐다는 의혹은 여전히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특사단 귀국 당일까지 영변 핵시설 원자로 가동 가능성이 보도되고, 관영매체를 통해 "핵 보검"을 운운하는 북한이 '얻을 것 없는'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대북특사단이 지난 5일 북한 조선노동당 본관에서 김정은(왼쪽에서 세번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특사단 수석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정은,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 2차장.(사진=청와대)
대북특사단이 지난 5일 북한 조선노동당 본관에서 김정은(왼쪽에서 세번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특사단 수석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정은,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 2차장. 특사단은 6일 오후 5시58분쯤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 결과를 보고하고 청와대에서 언론발표를 진행했다.(사진=청와대)

다음은 대북 특사단이 6일 귀국, 문 대통령에게 협상 내용을 보고한 후 공개한 언론발표문 전문.

1. 남과 북은 4월말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이를 위해 구체적 실무협의를 진행해나가기로 하였음

2.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완화와 긴밀한 협의를 위해 정상간 Hot Line을 설치하기로 하였으며,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첫통화를 실시키로 하였음

3.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음

4. 북측은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하였음

5.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하였음

이와 함께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하였음

6. 북측은 평창올림픽을 위해 조성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남측 태권도시범단과 예술단의 평양 방문을 초청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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