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 명의의 '특별사목서한' 내고 정의구현사제단도 공식 사과문 발표...형식적 메시지 그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한만삼 신부가 과거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 이틀만에 해당 신부가 소속된 천주교 수원교구가 입장문을 내고 공개 사과했다. 

천주교 수원교구는 25일 교구장인 이용훈 주교 명의의 '수원 교구민에게 보내는 교구장 특별 사목 서한'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수원 교구민에게 보내는 교구장 특별 사목 서한' (사진=천주교 수원교구 홈페이지 캡처) 

이 주교는 서한을 통해 “사제단을 잘 이끌지 못한 부덕의 소치로 이러한 사태가 벌어져 그동안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피해 자매님과 가족들 그리고 교구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국내외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인권과 존엄에 심각한 훼손을 일으킨 성폭력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고발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에 대한 부도덕한 행위가 밝혀지고 있다"며 부도덕한 행위가 밝혀진 것이 긍정적이라는 메시지를 보냈으며, “그들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에 맞서, 여성에 대한 그릇된 사회의식을 바로잡고자 용기를 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여성의 존엄과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고귀한 여성의 품위를 파괴하는 이러한 그릇된 행위는 교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이 주교는 또한 "이번 일을 거울삼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릇된 것들을 바로 잡아 나아갈 것"이라면서 "여성 인권과 품위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고 그에 걸맞은 합당한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며, 모든 사제들이 이 교육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해 사제단을 쇄신하겠다고 약속했다..

발표한 서한을 보면,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 문제로 확장시키며 교단이 앞으로 여성 차별적 문제를 개선시키는데 힘을 싣는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폭력 문제를 고귀한 여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뿌리깊은 사회문제로 치환하며, 정작 가해자 신부에 대한 사제직 박탈 등 추가 징계에 대한 언급과 피해자가 요구한 교구 내 성폭력 피해 전수 조사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없이, 가해자와 선을 그은 형식적인 메시지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편, 한만삼 신부가 소속된 정의구현사제단 모임 또한 25일 "그의 폭력은 저희 사제단이 함께 매 맞고 벌 받을 일임을 인정하고, 기나긴 세월 남모르는 고통을 겪으신 피해 여성께 삼가 용서를 청한다."며 "아울러 한 모 신부는 엄연히 사제단의 일원이며 형제이기에 그의 죄는 고스란히 우리의 죄임을 고백한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제다운 도리인지 심사숙고하겠다. 우선 지극히 부끄럽고 불행한 일이지만 이를 본분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고 수덕이라는 본연의 사명에 더욱 힘쓸 것과 교회 쇄신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사제단도 작은 힘이나마 보탤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전까지 정치ㆍ사회 문제에 ‘저항과 정의’를 줄곧 외치며 교단 내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을 표방하는 정의구현사제단 모임으로서는 다소 미진한 목소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구현사제단이 '그의 죄는 우리의 죄임을 고백한다'고 밝힌 것이 식구 감싸기라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교회 쇄신'에 힘쓰겠다는 형식적인 메시지보다는 구체적인 사실 확인과 징계조치가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다.

정의구현사제단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는 사과문은 25일 오후 9시 30분 현재,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이고 언론보도를 통해서만 전해지고 있다.
 

앞서 지난 23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한만삼 신부가 7년 전 해외 선교지(아프리카 남수단)에서 활동하던 중 여성 신도를 성폭행하려고 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피해자는 “한 신부는 '내가 내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달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성폭행을 시도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피해자는 당시 그 사실을 다음날 선교지에 있던 신부들에게 말했는데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동료 신부들의 암묵적인 묵인 속에 성폭력 사건은 수면아래 묻힌 것이다.

한 신부는 성폭행 이후 시점인 2013년에도 ▲쌍용차 사태 ▲세월호 사고 등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해 ‘정의’를 높이 부르짖고, ‘저항’, ‘위선자들을 꾸짖는다’, ‘거짓과 폭행을 일삼고 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들’, ‘양심’ 등의 표현을 써왔던 만큼, 국민들은 함께 '정의'를 외쳤던 이가 보인 위선에 충격과 배신감이 느껴진다는 날선 비판이 나온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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