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中 외교부장, 공식 일정에 없던 ‘오찬 행사’...이틀 전에야 통보
중국과의 사업 관계 있는 기업인들에게 ‘압박 아닌 압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어
2010년 방한한 다이빙궈 中 국무위원, “오후 3시 서울 도착하니 공항 비워라” 前例도
우리 정부의 대처 내용에 따라서는 ‘굴종 외교’ 논란 배제 못 해

서로 악수하는 강경화 외교부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오른쪽).(사진=연합뉴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방한하는 가운데 ‘우호 인사’ 100여명에게 오는 5일 왕이 부장과의 오찬 일정을 무리하게 통보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조선일보>의 4일 단독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장의 오찬에 한국 주요 인사 100명을 사나흘 만에 소집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중국이) 한국을 하대하는 시각을 보여준다”며 “중국 측이 의도했든 안 했든 모욕적인 줄 세우기로 비칠 수 있다”고 한 어느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주한(駐韓) 중국대사관 측이 오는 5일 왕이 부장과의 오찬에 참석을 권유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초청 대상자들에게 ‘통지’한 것은 지난 3일의 일이었다고 한다. 즉, 중국 측이 한국의 주요 인사들에게 행사 이틀 전에야 비로소 해당 사실을 알리고 ‘초청 아닌 초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중국 측의 태도는 곧 ‘결례’ 논란으로 이어졌다.

왕이 외교부장의 5일 오찬에 ‘초청 아닌 초청’을 받은 이들 가운데에는 중국과의 사업 관계가 있는 기업인들도 대거 포함돼 있어 중국 대사관의 갑작스러운 행사 통보에 대상자들이 ‘압박 아닌 압박’을 받고 있는 사실도 전해졌다. 한 기업 대표의 비서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잡아 놓은 대표님의 한 달치 일정을 변경해야 해 난감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또 4일 같은 기사에서 왕이 부장의 무리한 일정 추진을 두고 지난 2010년 11월 다이빙궈(載秉國) 당시 외교 담당 국무위원의 방한을 전례(前例)로 소개했다.

다이빙궈는 지난 2010년 11월27일 ‘한미 서해 연합훈련’을 하루 앞두고 방한했다. 당시 다이빙궈 일행은 한국 입국 당일 “오후 3시에 한국에 갈 테니 서울공항을 비워 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15분 뒤 중국 공항을 이륙, 도착 직후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여기에 더해 이 전 대통령과의 면담에 임한 다이빙궈는 한 시간 동안 역사 등 외교 현안과는 무관한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불쑥 ‘북핵 6자 회담 재개’를 제안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외교부의 11월28일 보도자료에 따르면 당초 왕이 외교부장은 4일 입국해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면담을 하고 5일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후 중국으로 귀국하는 일정으로 방한 계획을 수립했다. 또 외교부는 해당 보도자료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강경화 장관 취임 이래 양 장관은 8차례의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하는 등 수시 소통 중”이라는 보충 설명을 달기도 했다. 그렇다면 왕이 외교부장의 5일 오찬 일정을 우리 외교부가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조선일보>의 보도에 주한 중국대사관 측은 “오해할 여지가 있다”며 즉각 해명을 내놓았다. 대사관 측 주장에 따르면 “이번 일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 탓”이라면서 “중국 정부는 이번 오찬과 비슷한 행사를 준비할 때 통상적으로는 보름 전부터 일정을 조율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뉴데일리>는 4일 관련 기사에서 지난 2016년 한국을 찾아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는가”라고 한 천하이(陳海) 중국 외교부 아주국(亞洲局) 과장 발언의 패러디물과 함께 “예의상 하는 말에 불과하다”는 모 중국 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하면서 중국대사관 측 해명의 허를 찔렀다.

왕이 외교부장의 방한 목적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일정을 협의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수 매체가 시진핑 방한에 더해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을 거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왕이 부장의 방한 내용 가운데에는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한국 배치’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전달도 포함돼 있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돼, 우리 정부의 대처 내용에 따라서는 ‘굴종 외교’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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